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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Aug 15. 2023

여름 거짓말

1. 오늘은 어떤 책 함께 읽어봅니까?

여름과 잘 어울리는 소설집 《여름 거짓말》입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라는 유명한 독일 작가의 소설집인데요. 슐링크는 영화로도 개봉된 동명의 원작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여름 거짓말》은 여름을 배경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7명의 이야기를 각각 담아낸 7편의 소설들을 엮은 책입니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어보고 싶으셨거나 또는 많이 들어본 이 작가의 소설들을 뭐든 하나는 읽고 싶은데 전쟁이나 역사의식 등을 다루는 등 내용이 하나같이 무거워 엄두가 안 났던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해요, 상대적으로 아주 가볍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2 계절과 잘 어울리는 소설집이네요. 어떤 소설들이 담겨 있습니까?

일곱 편이나 되어 시간 관계상 다 소개해드리긴 어렵고요. 몇 편만 간략히 훑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소설은 <성수기가 끝나고>인데요. 성수기가 끝나고 사람들의 왕래도 잦아든 휴가지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된 남녀가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또 남자에게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사정들이 있어요. 그들의 인연이 더 깊어질지 그렇지 않을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숲 속의 집>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은 유명 작가인 아내를 정말로 사랑하지만 세상에는 그 말고도 그녀를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게 문제인데요. 언론을 피해 시골로 숨어든 남자는 이곳까지 아내의 수상 소식이 전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밤의 이방인>에서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사건의 장본인과 나란히 앉아 비행하게 된 남자가 등장하고요. <뤼겐 섬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라는 작품에서는 자신을 사랑하는지 알 수 없는 아버지와 바흐를 사랑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바흐 콘서트 여행을 떠나게 된 아들의 어색한 여행이 그려집니다.     



 

3. 7편의 소설들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은요?  

마지막 작품인 <남국 여행>인데요. 어떤 할머니가 있습니다. 남편은 다른 아내를 구했고, 자식들도 저마다의 가정을 꾸린 상황 속에서 할머니는 너무 외롭고 자신의 인생이 다 후회스럽게만 느껴지는 거예요. 자식들이 말쑥하게 차려입고 공들여 준비해 준 생일파티도 부질없게만 느껴집니다. 그때 가족들이 여름방학을 맞은 할머니의 손녀에게 방학 동안 할머니를 돌봐주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대학 시절 그녀를 갑작스레 떠나버렸던 첫사랑 얘기를 털어놓고 첫사랑을 만났던 고향에 가 보고 싶다고 말해요. 손녀와 할머니는 여행을 떠나고, 실행력이 엄청난 손녀딸은 할머니의 첫사랑과 약속까지 잡아둡니다. 그렇게 해서 할머니는 첫사랑을 만나는데 첫사랑이 할머니와의 이별 이후 너무 힘들었지만 다른 여자를 만나서 지금은 그 여자를 너무 사랑한다고 하는 거예요. 질투가 난 할머니는 “만약 그때 당신이 날 떠나지 않았다면 우리 사이가 어떻게 됐을까?” 묻는데요. 첫사랑은 전혀 다른 대답을 합니다. 첫사랑이 할머니를 떠난 게 아니라 할머니가 떠났다고요. 그 시절, 진짜로 이별을 고한 것은 누구였을지 알아보는 재미가 있는 소설입니다.   

   

4. 흥미로운데요. 7편의 소설들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요?

이 책 속 주인공들은 살아가면서 삶의 중요한 순간들에 거짓말을 하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속입니다. 슐링크는 법률가이자 학자인 그의 직업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객관적 시선으로, 그런 주인공들의 의식 표면뿐 아니라 무의식 안쪽에 자리 잡은 욕망과 소망을 냉철하고 세밀하게 파헤쳐내는데요. 이러한 7편의 소설들을 통해서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우리가 하는 거짓말들, 사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짓말일 텐데요- 과연 그게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지 되묻고 있습니다.      


5. 그러네요. 살아가면서 답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하며 도피해버릴 때가 간혹 있잖아요?

맞습니다. 일종의 정신 승리처럼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갈 때가 있는데요. 그런 순간들을 그렸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삶을 돌아보며 내가 나를 속이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남국 여행> 역시 여름방학을 맞은 손녀가 할머니와 같이 여행을 가서 할머니의 첫사랑을 찾아주고 다시 돌아오는 스토리인데, 그 속에서 할머니의 거짓말이 드러나고, 거짓말임을 몰랐던 때가 나은가, 아니면 아프지만 거짓말이라는 진실을 알았을 때가 나은가,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입니다. 작가가 다루는 감정선과 질문이 굉장히 섬세하고, 여름을 배경으로 읽으면 더없이 좋은 소설이라 시-원한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3년 8월10일(목) KBS 라디오 <생방송 오늘 원주입니다> '책과 함께 떠나는 산책' 코너 진행 원고입니다

생방송오늘 원주입니다 | 디지털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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