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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Aug 19. 2023

다정한 공감의 서사

- '여름이었다' 갬성 그 잡채 소설

《고요한 우연》김수빈 지음 l 출판사 문학동네 l 가격 1만2500원



마이클 콜린스를 아나요?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과 함께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닐 암스트롱이나 버즈 올드린과는 달리 마이클 콜린스는 좀처럼 주목받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마이클 콜린스는 달에 착륙하지 못했거든요. “조종사였던 마이클 콜린스는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에 발자국을 남기는 동안 우주선에 홀로 남아 달의 궤도를 비행했”어요. 이 책에 따르면 “그는 48분 동안 지구와도 교신이 끊긴 채, 오롯이 혼자서 달의 뒷면을 바라보았다”고 해요.


책에 대한 소개도 하기 전에 왜 무턱대고 마이클 콜린스 얘기부터 하냐고요? 이 장편소설에서 “달을 눈앞에 두고도 발을 내디딜 수 없었던 마이클 콜린스”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소설은 학생부장 선생님과의 면담으로 시작돼요. 학생부장 선생님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그 애'와 이 책 속 주인공인 '수현'과의 관계를 물어요. ‘그 애'는 누구일까, 도대체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궁금해 빨리 책장을 넘기게 돼요.


‘수현’은 모든 게 평범한 소녀입니다. 심지어는 이름까지 평범해 한 반에 꼭 한 명 이상씩 같은 이름이 있어 ‘이수현B’라고 불릴 때도 있었지요. 그런 수현은 반장인 ‘정후’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어요. 또 따돌림을 당하는 ‘고요’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요. 어느 날 꿈에 늘 반에 존재하고 있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없는 듯한 존재로 느껴지는 ‘우연’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우연을 관찰하기 시작해요.


수현의 레이더망에 잡힌 정후, 고요, 우연. 그 셋을 지켜보던 수현은 떨어진 우연의 핸드폰을 주워주다가  그 애가 보고 있던 ‘고요의바다’라는 SNS 계정을 발견하게 돼요. 그 공간은 온통 달과 관련된 피드로 가득했지요. 우연의 계정인지 고요의 계정인지 모를 그 공간에서 수현은 ‘the_eagle_has_landed’, 그러니까 달 착륙선 이글이 무사히 착륙했을 때 닐 암스트롱이 인류에게 전했던 말을 계정 아이디로 만들어 관계를 맺기 시작해요.


‘고요의 바다’의 팔로워를 살펴보던 수현은 ‘아폴로’라는 이름의 검은 고양이 사진을 포스팅하는 ‘moon_of_michael_collins’를 발견해요. 수현은 이 계정이 우연의 계정이 아닐까 추측해요. 그저 친구들을 바라만 보았던 학교에서와 달리 익명성이 보장되는 SNS 공간에서 수현은 적극적으로 고요, 우연, 정후와 소통해요. 물론 자신을 감춘 채로요.  


도입부에 언급했던 마이클 콜린스는 달에 착륙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이내 그런 마음이 모두 사라졌다고 해요. 마이클 콜린스에게는 달을 탐사하는 것만큼이나 무사히 탐사를 마친 동료들과 함께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에요.


소설의 줄거리가 달의 뒷면을 바라보기만 했던 마이클 콜린스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며 읽으면 소설의 감동이 확장돼요. 책 속에 숨은 깨알 디테일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워요. 우리가 자주 쓰는 메신저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는 목차가 사랑스러움을 더해요. 여름이라는 계절과 잘 어울리는, 풋사과 같은 소설이에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3년 8월 14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8/14/20230814000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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