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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Aug 21. 2023

만약 평화에 대해 논하라는
논술 문제가 나온다면?


《너무나 많은 여름이》ㅣ 김연수 지음 l 출판사 레제 l 가격 16000원



제목과 시원한 표지가 여름과 잘 어울리는 소설집이에요. 김연수 소설가의 신작으로, 20편의 소설들이 묶여 있어요. 


이 20편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건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읽거나 볼 때 읽고 보는 그 순간의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뒷이야기, ‘비하인드 스토리’도 궁금하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지요. 이 소설집 역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게 되면 여기에 담긴 20편의 소설들이 달리 보이는데요.


‘작가의 말’을 보면 2021년 10월 제주도에서 2023년 6월 창원까지, 여러 도서관과 서점에서 독자들을 만나 낭독하는 과정을 통해 이 소설들이 쓰였고, 읽고 듣는 과정을 통해 또 ‘다시’ 쓰였다고 해요. 그 시발점은 2021년 10월 제주의 낭독회였는데요. 그때 작가는 소설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해요. 그래서 산문보다 소설을 더 많이 쓰게 됐고, 강연회보다는 짧은 소설을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낭독회를 더 자주 하게 됐다고요. 팬데믹 이후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기 때문에요. 


<첫여름>, <여름의 마지막 숨결> 같은, 요즘 계절감에 맞는 소설들이 여럿 있지만, 작가의 자전소설로 보이는 표제작이 인상 깊어요. 어머니의 임종을 앞둔 화자가 구보 씨처럼 걸으면서 어머니와 얽힌 추억을 돌아보고, 두려워했지만 오히려 평화를 선물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잘못 일어나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일이 그려져 있어요. 화자는 만약 평화에 대해 논하라는 논술 문제가 나온다면 “하루 종일 실컷 놀다가 허기지고 지친 몸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듣는, 멀고도 둥근 종소리”라고 쓸 거라고 해요. “그렇게 종소리를 듣고 들어가면 엄마가 차린 저녁밥이 있는” 곳, 그게 화자에겐 “집”이라고요.  


줄거리만 들으면 어두운 얘기 아닌가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이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문장이 매우 섬세하고 다정해 무겁지 않아요. 글을 쓴다는 건 곧 어떤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느냐 하는 건데요. 김연수 작가는 다정함의 프레임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니 소설 역시 다정할 수밖에요. 


낭독회에서 읽기 좋게 쓰인 소설들이라 각 작품들의 분량이 짧아서 부담 없이 읽기 좋아요. 유튜브에서 '너무나 많은 여름이 플레이 리스트‘를 검색해 재생시키고 이 소설을 읽으면 독서 경험을 더욱 확장할 수 있어요. 이 책에 얽힌 소설들을 읽고 나면 올여름을 “좋은 여름”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거예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3년 8월 21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nie/2023/08/21/NDNIXWAXHVBIHOG24QFZE3Q2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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