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사랑에 대하여
사근사근한 태도에 소녀 같은 면이 있고, 늘 남을 생각하고 불평 없이 얘기도 잘 들어 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몸을 움직여 일하고 자신의 시간을 타인에게 할애하는 일이 많았다.
- P. 19
요시모토 바나나의 <서커스 나이트>를 읽기 시작했는데 이치로의 어머니에 대한 묘사가 꼭 우리 엄마와 닮았다. 이번에 아빠랑 남편이랑 아주아주 어릴 적부터 아홉 살 때까지 살았던 동네엘 가 봤다. 그곳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 비슷하기도 했고 다르기도 했다. 어릴 적에 과자를 사 먹던 구멍가게가 그대로 있었는데 내 생각보다 집과 가까워서 놀랐다. 아빠가 우리가 살던 곳이라고 일러준 집은 이제는 터만 남고 다른 집으로 바뀌어버려서 생경하기만 했다. 아빠가 배를 타고 엄마가 그물을 손질하던 때가 아득했다. 그물에서 생선들을 빼낼 때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우리 엄마는 늘 아팠다. 그래도 엄마는 나와 동생을 키워냈다. 젊은 엄마는 여러 일을 했다. 엄마가 어판장에 앉아 성게알을 보석처럼 빼낼 때마다 어린 나는 입을 벌렸다. 엄마가 성게 까는 일을 했던 곳도 그대로 있었다. 그건 사진처럼 장면으로 기억날 뿐이거나 또는 아예 실제로 보지 못한 일일 수도 있지만, 엄마가 그물에서 생선을 꺼낼 때마다 햇볕이 생선 등에 튀기는 걸 놀라듯이 바라본 것 같다. 아빠 친구들 배는 모두 신식으로 바뀌어 있어서 바다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말고는 그저 낯설었다. 그래도 엄마 손 잡고 시장을 다녀오던 길목이나 독사진을 찍고 싶다는 동생 뒤에서 입을 크게 벌린 채 장난을 쳤던 골목의 풍경은 내게 크게 다가왔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거나 2학년일 무렵 엄마는 학교 옆 냉면집에서 서빙을 했다. 매번 홀로 가는 하굣길을 엄마와 함께 가려고 나는 학교가 파하면 쪼르르 냉면집을 찾아갔다. 일하는 엄마가 신기했고 엄마 손 잡고 집 가는 길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한번은 엄마와 아빠가 부부싸움을 크게 한 적이 있었다. 아빠가 발로 차서 집 안의 유리문이 깨졌다. 아빠 발등에서 피가 철철 흘렀지만 나는 무서워서 아무 소리도 못 냈다. 엄마는 아마 심하게 맞고 난 뒤였을 것이다. 엄마는 집을 떠났고 나는 울면서 엄마를 따라갔다. 엄마는 혼자서도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일 정도 엄마는 진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매일매일 전화를 해 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왔다. 할머니가 고아원에 나랑 동생을 맡기고 가 버리라고 막말을 했지만 엄마는 끝끝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어릴 적의 몇 년은 성인 시절의 몇 년보다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내게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뭐든지 스스로 고르게 했고 그렇게 고른 것은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꼭 사 주었다. 내 물건을 마음대로 처리한 적도 없어서 모든 결정의 처음부터 끝을 모두 내가 하게 했다. 막내삼촌은 여러 가지 부침 속에서도 내가 이렇게 잘 자란 게 신기하다고 했지만 삼촌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오늘따라 삼촌 가르치고 싶네). 엄마의 온전한 지지와 양육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음을.
어쩐지 엄마가 보고 싶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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