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시민을 위한 동물 지리와 환경 이야기》
한준호 외 지음 l 출판사 롤러코스터 l 가격 1만7600원
동물과 환경을 주제로 한 ‘동물지리책’이에요. 동물을 소재로 환경 이야기를 하는 책들은 많지만, 그걸 여섯 명의 지리교사들이 지리적인 시각에서 풀어낸다는 게 이 책의 차별점이죠.
대대로 인류는 어떤 지역에서는 사람과 짐을 이동시키는 데에, 어떤 곳에서는 농사를 짓는 데에 동물을 이용해 왔어요. 이 책을 통해 이렇게 인류와 밀접하게 살아온 동물들이 왜 특정 지역에 서식하는지, 그들의 생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지리적 시각으로 알 수 있어 흥미로워요. 알고 보면 동물이 지구의 변화에 적응해 온 과정들이 모두 지리와 연관되어 있거든요.
저자들은 홍학, 아마존강돌고래, 캥거루, 북극곰, 백로, 청어, 유럽들소, 해달, 양, 돼지, 야크, 산호, 바다소, 큰됫부리도요, 반달가슴곰, 사자, 라쿤, 낙타처럼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부터,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환경에 사는 동물들까지 총 18종 동물들의 역사를 통해 이들이 기후변화 시대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생존했는지 알려줘요.
예를 들어 북극곰의 생존 전략, 아마존강돌고래의 강으로의 이동, 백로의 도시 생활 적응 등은 기존에 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지요. 우리가 광고를 통해 보는 북극곰은 귀여운 이미지이지만 사실 북극권의 바다표범, 바다코끼리까지 사냥해서 먹는 맹수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 북극권의 해빙 면적이 감소하고, 북극곰은 바다표범을 사냥할 먹이 터전이 감소하게 돼 북극곰이 이후 어떻게 기후변화에 적응할지 귀추가 주목돼요.
어쩌면 새로운 잡종의 모습으로 변화해 갈 수도 있어요.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곰은 갈색, 검은색이죠. 북극곰의 경우엔 달라요. 북극곰의 조상인 불곰이 툰트라 기후 지역으로 진출한 이후, 살아남기 위해 털의 색을 눈과 얼음처럼 속이 텅 빈 투명색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진화했거든요. 일종의 보호색인 셈이지요. 진화의 흔적이 남아 있어 북극곰 털의 안쪽 피부는 여전히 검은색이랍니다.
이처럼 흥미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돼 있어요. 사진과 지도, 도표가 많이 삽입돼 있어 지루하지 않아요. 1장에서는 홍학과 캥거루, 아마존강돌고래 등을 통해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물들의 생김새와 이들의 습성에 영향을 준 요인, 지역적 특색을 알아봐요.
‘돌고래’ 하면 보통 푸른색이나 회색을 떠올리게 되는데 특이하게도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아마존강돌고래는 분홍색이에요. 놀라거나 흥분할 때 피부 표면의 모세혈관이 비치기 때문인데요. 아직 아마존강돌고래의 생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더 밝혀져야 할 게 많아요. 색깔도 독특하지만 바다가 아니라 강과 같은 하천에 산다는 점 또한 특이한데요. 본래 강 하구에서 태평양으로 들락거리던 돌고래가 남아메리카 지형이 500만 년에 걸쳐 달라지는 동안 아마존 분지 내륙에 고립돼 강돌고래로 진화한 거예요. 강 주변 나뭇가지에 걸릴 위험이 적도록 바다 돌고래와 달리 등지느러미의 높이가 낮아지기도 했지요.
2장에서는 기후변화로 고통받으면서도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해 온 북극곰, 유럽들소 등을 살펴요. 유럽들소는 스텝들소와 오록스의 교배로 새롭게 탄생한 종이에요. 기온이 점차 온난해지면서 초지였던 곳이 숲으로 변하던 시기, 스텝들소는 일반적인 초식 동물이 소화할 수 없는 나무껍질을 먹으면서 식생의 변화에 적응해 갔어요. 이런 기후변화에서 살아남은 스텝들소와 오록스 간의 잡종이 유럽들소이며, 일반적으로 이종 간의 잡종이 생식 능력이 없어 번성하기 힘들다는 생명과학의 법칙을 넘어선 사례입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으며 들판과 숲이 농경지로 변화하며 이들은 또 한번 멸종 위기를 맞게 돼요. 다행히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가 동물원에서 보호하던 유럽들소를 숲으로 돌려보내 야생화하면서 개체 수가 6500마리에 이를 수 있게 됐어요.
3장에서는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인간의 무분별한 이용으로 인해 해달, 야크, 양 등이 겪고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 들려줘요. 해달 하면 떠오르는 건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 귀여운 ‘보노보노’입니다. 그러나 18세기 러시아의 모피상이었던 알렉산드르 바라노프는 이 귀여운 해달들의 모피를 벗겨 판매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어요. 모피를 얻기 위한 과도한 해달 사냥은 해달의 서식지 축소와 개체 수 감소를 가져왔죠. 모피 무역 시작 전 약 30만 마리였던 해달이 20세기 초에는 2000마리로 줄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됐어요. 해안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인 해달이 줄어들자 해달을 제외한 다른 동물이 잘 먹지 않는 성게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해 성게의 먹이인 해조류가 사라져 바다의 사막화 현상인 ‘갯녹음’이 가속화됐어요. 해달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종’이었던 거죠. 그래서 해달의 개체 수가 급감하거나 부분적으로 멸종된 미국, 캐나다의 태평양 연안 지역에서는 해달을 다시 도입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어요.
4장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한 산호와 바다소 등을 생존위기로 몰고 간 환경의 심각성을 알려줘요.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반달가슴곰 복원사업과 도심까지 서식지를 넓히고 있는 라쿤의 최신 소식 등을 전하며,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삶에 대한 고민을 던져요.
우리와 삶을 함께하는 반려동물이 늘어나면서 동물에 대한 관심도 이전보다 더욱 높아지고 있어요. 인류는 멸종위기종을 지정해 관리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등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죠. ‘생태시민’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 또한 이러한 활동에 포함돼요.
생태시민이란 자연을 지배하려 드는 게 아니라 자연의 생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들을 말해요. 인간을 포함해 자연에 속한 모든 생물들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존중하는 자세를 지니는 거죠.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되는 키워드이기도 해요. 이 책이 인간만을 위해 일방적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것을 넘어 생태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출발점이 되어 줄 거예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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