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거미

by 김뭉치

버스 안의 전자시계를 보니 어느덧 두 시 오십구 분이었다.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중요한 그 어떤 것이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황급히 버스에서 뛰어 내렸다. 오후 세 시의 정류장은 텅텅 비어 있었고 뽀얀 햇살 사이로 투명한 눈송이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분명 아까까진 맑았는데.

나는 팔을 뻗어 거짓말처럼 내리는 눈송이를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손바닥 안에서 그것은 마치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았고, 그 느낌은 차갑고도 따뜻했다.

나는 녹진한 기분에 사로잡혀 손에서 녹아내리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햇빛 속에서 그것은 한순간 찬란히 반짝이는 듯싶었는데, 그제서야 나는 내가 두고 온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

엄마는 하루의 대부분을 베란다 앞에서 지냈다. 통유리로 되어 있는 베란다에 맑은 햇볕이 부서지면, 엄마는 온몸으로 그 햇살을 맞았다. 그럴 때 엄마는 비에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는 엄마. 이윽고 엄마는 조용히 흐느낀다. 가녀린 엄마의 어깨가 날갯죽지에 상처를 잎은 새처럼 파드득 떨린다. 엄마의 등뼈로 청결한 햇살이 분진粉塵처럼 내려앉는다.

때때로 엄마는 고개를 든다. 곁에서 바라본 엄마의 눈동자는 이상하리만치 움직임이 없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상하리만치 너무 빠르게 움직인다. 그러나 그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늘 같다. 허공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늘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 같다.

나 또한 엄마와 함께 햇살을 맞았다. 엄마는 스스럼없이, 마치 제를 지낼 때처럼 정해진 수순대로 옷을 벗는다. 한 겹 한 겹, 조심스레 옷을 벗어선 소파 옆에 가지런히 개켜둔다. 나는 반쯤 열린 내 방 문고리를 잡고 그런 엄마를 지켜본다.

“은우야, 이리 와.”

그럴 때면 언제나 모든 게 같다. 엄마를 지켜보는 나를, 엄마는 지켜보고, 그리고는 나를 부른다. 내 눈망울에 공포가 담긴다. 엄마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 나를 부른다.

어쩔 수 없다.

쭈뼛쭈뼛, 나는 엄마에게 간다.

엄마는 아무런 표정 없이 내 옷도 차례차례 벗긴다. 나를 무릎 꿇린다.

엄마의 눈은 또다시 허공을 향한다.

"은우야, 눈 감아. 목욕하고 있다고 생각해. 은우랑 엄마는 목욕해야 해. 남들보다 훨씬 많이 씻어야 해. 그래서 깨끗해져야 해. 천 번 만 번, 더 깨끗해져야 해."

감은 내 눈꺼풀 위로 졸리운 햇살이 내려앉는다.

그러나 나는,

울고 있다.


*

하악.

또 같은 꿈을 꿨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이 느껴진다.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꿈이었다고 생각하니 안도감과 함께 묘한 슬픔도 느껴진다.

땀으로 범벅이 된 잠옷을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간다. 먼저 핸드워시로 세심하게 손을 씻는다. 손바닥끼리 마찰시키고 깍지를 켜서 손가락 하나하나 거품이 묻도록 한다. 아치형으로 구부린 한 손으로 엄지손가락부터 구석구석 거품을 훑어 내린다. 손바닥을 펴고는 손톱 아래까지 세심하게 문지른다. 예전엔 손이 벌게지고 피가 날 때까지 박박 씻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개선한 상태다.

다른 사람들과 거의 비슷하다.

이제 그 사실을 상기하며, 나는 안도한다.

뜨거운 물을 오래오래 맞으며 엄마에 대해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엄마, 서운해 하겠네.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고 땀에 전 침대 시트를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편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뒤 드리퍼에 여과지를 깔고 곱게 깔린 원두를 넣는다. 뜨거운 물을 천천히, 수회에 걸쳐 정성을 다해 부어서 커피 한 잔을 손에 넣는다. 커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속을 데우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대기음은 꽤 길었지만 개의치 않고 갓 끓인 커피를 음미한다.

“은우.”

전화기 너머로 조용하게 엄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잘 지냈어요?”

“응.”

“난 잘 지내요.”

“응.”

엄마는 도통, 말이 없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랬다. 다른 집 엄마들은 재잘재잘 자식에게 이 얘기, 저 애기 털어놓는다는데 나는 그런 느낌이 어떤 형태의 것인지, 잘 모른다. 귀찮을까. 즐거울까. 힘겨울까. 도무지 모르겠다. 침묵. 최소한의 대화. 그런 것에 이미 길들여져 버렸다.

다른 이들에게 필요 이외의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서걱거림일까.

유쾌함일까.

통통 튀는 빛의 동심원 같은 것일까.


내게 그것은 고통이다.


엄마가 필요 이외의 말을 할 때,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원래 형태가 뚜렷하지 않던 그녀의 말들은 아예 형체를 잃어버린다. 꼭 낡은 미래를 읽고 있는 것만 같다. 누구라도 그런 류의 말들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엄마 또한 이해를 바라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거대한 젤리들이 내 머리 위로 쿵, 하고 떨어져버리고 그것이 이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녹아내리는 기분.

어찌할 수 없고 손 쓸 새도 없이 나는 불쾌한 슬픔에 젖어 버리고 만다.

“밤, 잘 지내고 있어요?”

“여전히.”

통영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엄마는, 밤을 무서워한다.

그래도 엄마는 통영의 밤은 잘 견딘다. 통영의 밤엔 인적이 드물고, 거의 아무도 나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도 밤의 장막 뒤에 숨어 있다. 엄마는 절대 밤에 나다니지 않는다. 엄마는 그저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그렇게 밤을 떠나보낸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눈으로 새벽을 맞는 일이 허다하다.

그리고 지금, 엄마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 이제 자야 할 시간인 거 아니에요?”

“응.”

“알겠어. 그럼 자요, 어서. 잘 자요.”

“응.”

엄마는 대답하고 가만히 전화기를 들고 있다. 나도 그대로 전화기를 들고 있다. 5초의 휴지기 이후 나는 전화를 끊는다. 내가 먼저 전화를 끊지 않는다면 아마 그녀 역시 평생 전화를 끊지 않으리라.

전화를 끊고 나니 엄마의 스커트 자락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네이비 컬러의 롱스커트. 엄마는 늘 발을 질질 끌며 걷는다. 누군가 엄마를 끌어내기라도 하듯이. 상의는 그레이에 카키가 섞인, 목이 늘어난 라운드 티. 같은 종류의 옷이 몇 벌이나 있는지 모른다.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어릴 적, 엄마는 아름다웠다. 긴 생머리에 동그랗고 작은 어깨, 선이 고운 콧날, 얇은 입술. 가느다란 눈매가 돋보였다. 다른 친구들의 엄마보다도 훨씬 젊어 보이고 아름다운 엄마가, 참 좋았다. 어린아이들은 잘도 그런 것을 캐치할 줄 알았다. 반 친구들 중 막둥이로 태어난 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자신의 엄마를 할머니, 라고 놀리는 통에 끝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반면 나의 엄마는 바깥출입을 되도록 삼가는 편이었지만, 어쩌다 한 번 아이들의 눈에 띌라치면 나 자신도 모르는 새 우쭐할 수 있었다. 아무도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아름다운 엄마를 둬서 참 좋겠다, 는 아이들의 동경 어린 시선을 나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지금의 엄마는 내가 자란 만큼이나 세월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주름이 생겼고 피부는 생기를 잃었으며 오랜 불면으로 몸은 더욱 야위었다. 곱던 긴 생머리는 푸석거려 사내아이처럼 짧게 머리를 쳤다. 머리통이 아주 조그마했다. 놀라울 정도로 작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게다가 드러난 목선은 안 그래도 가녀린 엄마의 체구를 더욱 왜소해 보이게 만들었다. 엄마는 거의 먹지 않았고 거의 자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의 이러한 모습은 당연한 수순인지도 몰랐다.

그녀의 봄.

그녀의 여름.

그녀의 가을.

그녀의 겨울.

그녀의 사계절.

그녀에게 들러붙은 시간.

시간의 더께들.

그 혹독하고 진득한 것들을 떠올려 보면 온몸이 차가워진다. 오소소 소름이 돋고 냉동창고에 막 들어선 사람처럼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녀는 나의 엄마이고, 나는 그녀의 아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용서에 대한 이야기이다.


*

대학에 갓 입학했을 무렵, D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일을 하지 않았고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러한 사정으로 성인이 된 나는 자기 앞가림 정도는 스스로 해야 했다.

조부모님이 물려준 유산과 놀라울 정도로 착한 삼촌의 원조가 있었기에 중고등학교 정도는 그럭저럭 마칠 수 있었다. - 삼촌의 원조가 죄책감에 기인한 선한 성품의 결합품임은 나중에야 알았다 - 그러나 스무 살은 달랐다. 나는 이제 스스로의 나이에 책임을 져야 했고, 두렵긴 했지만 나는 그 책임의 무게를 당연히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D 카페에서, 나는 즐겁게 일했다.

커피를 내리고, 원하는 고객에게 휘핑크림을 아낌없이 얹어준다. 휘핑용 우유를 휘핑기에 넣고 위아래로 사정없이 흔들어 슈우우욱 소리와 함께 크림을 얹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 위에는 매뉴얼에 따라 초코 또는 캐러멜 등의 시럽을 사선 방향으로 뿌린다.

나는 유쾌하게 음료를 제조하고 손님은 맛있게 먹는다.

본사에서 배달된 도넛들을 순서대로 진열하고 베이글과 샌드위치를 원하는 고객에겐 따뜻하게 데워진 그것들을 제공한다.

나는 즐겁게 서비스하고 손님들은 소소하게 감사하며, 때에 따라서는 당연하게 그것을 즐기며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단순한 이 과정이, 나는 좋았다.

어느 날 그 일이 있기 전까진.

폐점 시간이 다가올 무렵 매니저와 나는 매장 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손님은 없었고 우리는 보육원에 보낼 오늘 남겨진 빵의 일부를 박스에 챙겨 넣었다. 그러고도 남는 도넛은 집에 가져갈 수도 있었는데, 오늘은 어제와 다른 어떤 종류의 빵을 챙길까, 그때의 나는 그걸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새로 나온 찹쌀링을 가져가볼까 생각하는데,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나는 창고에서 몸을 일으켜 카운터로 갔다. 고객은 외국인이었는데 금발의 하얗고 붉은기가 도는 피부, 장장 19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장신이 도드라졌다. 겨울이라 브라운 컬러의 투 버튼 코르덴 재킷을 걸치고 그 안에는 딥 그린 컬러의 셔츠를 받쳐 입고 있었다.

그는 라떼를 시켰고 나는 정성껏 커피를 만들었다.

나는 이 일이 진심으로 좋다, 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온전한 내 일이 아닌 일을 하고 있음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인지도 몰랐다. 손님이 떠나고 오늘 수익을 정산하려 포스를 터치하는데 순간 카운터 바닥에 놓여진 카드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매니저님, 손님이 카드를 두고 갔어요.”

“세상에. 그래, 얼른 따라 가 봐. 막 나갔으니 잘하면 따라 잡을 수도 있겠다.”

나는 가게를 나서 왼쪽과 오른쪽 방향을 번갈아 보았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무척이나 키가 커서 근처에 있다면 분명 눈에 잘 띌 텐데, 좌우 어디에도 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지하철역이 있는 곳으로 무작정 걸음을 옮겨보기로 했다. 나는 주위를 살피며 겅중겅중 뛰었고 이내 한손에 D 카페의 테이크아웃 컵을 쥐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나는 오른손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유어 카드.”

나는 짧은 영어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그의 눈앞에 카드를 흔들어댔다.

그는 한동안 벙한 표정으로 D 카페의 로고가 박힌 에이프런을 두르고 역시 D 카페의 모자를 쓰고 있는 나와 내가 들고 있는 카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내심 내가 굉장한 일을 하고 있으며 이 일이 오늘 하루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뿌듯한 일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는 돌연 웃음을 떠뜨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 문장으로 전하기 힘들 만큼 놀랄 만치 맥 빠지는 웃음이었다. - 그는 아주 활짝 웃으며 그 카드는 유효기한이 지나 자신이 버린 카드이며 알고 보면 신용카드가 아닌, 다른 식당의 마일리지 적립 카드라고,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현재의 자신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유히 인파에 섞여 지하철역으로 사라졌다.

이제, 당황한 쪽은 오히려 내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속에서 나는 그만 버림받은 기분이 들고야 만 것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뛰어 왔는가.

도대체 나는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나는 버린 카드를, 버릴 카드를, 끝끝내 버리고야 말 카드를 쓰레기통에 넣지 않고 카운터에 두고 간 그의 무신경함에 화가 났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가 버린 카드를 들고 폐점 시간에 오 분 거리를 뛰어온 나에게 미안하다거나 고맙다거나 하는 종류의 어떤 말도 건네지 않은 그의 배려 없음에 슬퍼졌다. 그리고 기어이 자신이 아닌, 나의 손에 그 카드를 맡기고 떠나버린 그의 뒷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뚫린 듯한 아픔을 느꼈다. 태연자약하게 사라진 그의 뒷모습이 마치 그 카드는 당연히 네가 버려줘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버려지는 카드의 운명이란 다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나는 다시 오 분 거리의 D 카페로 터덜터덜 돌아오면서 모두 다 그만두고 싶다, 그만둬 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젖어들었다. 갑자기 전 생애의 무게가 나에게로 밀려든 것 같았다.

버림받은 기분.

그것은 오래전부터 아니, 태어났을 때부터 내가 느낀, 아마도 내가 경험하게 된 최초의 감정이었으리라.

나는, 버림받았다.

그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끊임없이 그러하리라.

나는,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밤, 카페로 돌아가는 길, 온갖 무거운 생각들이 나에게로 몰려들었고 나는 또 잠이 들 수 없었다. 예의 그 꿈을 꿨고 공허한 분노와 체념의 반복에 휩싸였으며 다음 날, 기어코 D 카페의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


*

“어떻게 사진을 찍게 되었어?”

그런 질문을 종종 듣곤 한다.

내가 사진을 찍게 된 이유는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사진을 찍었을 때 렌즈 사이로 아주 빠르게 스치던 찰나의 미소. 그 미소를 잊지 못해 나는 사진을 찍게 된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은 미소가 아니라 미소의 형체를 띤 그 무엇일 수도 있고, 실은 어떠한 의미도 없는, 미소라고 할 수도 없는 표정이었는데 내가 그것을 미소로 여기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분명 그 순간 처음으로 어떤 반짝임 같은 것을 느꼈고 그것이 물결처럼 도도하게 내 마음 속으로 퍼져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내 나이 열두 살 때 일이었고 처음으로 삼촌이 가져온 카메라를 만져봤을 때의 일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이것저것 찍어보던 나의 눈에 그녀가 들어왔고 아주 잠시나마 그녀가 나를 보는 듯했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살짝 휘는 듯했다.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그녀의 미소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웃음이란 걸 지을 수 있는 사람인지, 전에는 미처 몰랐다고 하는 게 옳겠다. 그것은 아주 찰나였지만 그때까지의 내 삶을 온통 흔들어놓았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 고 생각했다. 그러면 엄마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때부터 어린 나는 삼촌을 졸라 카메라를 매일같이 구경했고 사진에 대한 책들을 살펴보며 조작법을 익혀나갔다.


이것은 용서에 대한 이야기가 될까.


사진학원은 돈으로 움직이는 세상이었다. 사실 사진이라는 것 자체가 그랬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비싼 카메라가 필요했다. 그것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좋은 사진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 더 높여준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원장은 돈이 없는 나를 홀대했다. 그는 철저히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대학의 전형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열 장 정도의 포트폴리오를 내야만 했는데 돈이 있는 아이들은 조교와 동행하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했다. 그러지 못한 나는 그저 나의 아이디어에 의존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했고, 그마저도 원장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스무 살짜리가 이렇게 어두컴컴한 사진을 찍으면, 대학에서 좋아라 하고 붙여줄 것 같아? 스무 살이란 건 말이야. 패기와 열정의 상징인 거야. 희망, 나는 할 수 있다, 이런 걸 보여줘야 되는 거라고.”

우울한 자화상 같은 나의 아이디어는 스물여덟 형에게 돌아갔다.

“나이가 든 사람한테 어울리는 아이디어라 그래. 네가 이 아이디어로 포트폴리오 만들어봤자 백방 떨어진다. 나를 믿어. 이 바닥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원장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당시의 나는 힘이 없고 뭘 잘 모르는 스무 살짜리 어린애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진을 찍었다. 좋은 카메라 없이, 돈 없이 이 악물고 버텨냈다. 내 사진의 근원에는 그녀의 미소가, 미소 같은 그 무엇이 희끄무레하게 피어 오르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걸 안간힘을 다해 꼭 붙잡았다.


나는, 태어나서는 안 됐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웃게 해주고 싶었다. 웃게 만들고 싶었다.

뜨거웠던 열여덟의 여름날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어쩐지 우울했다.

그냥 그런 날이 있는 것이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기운이라곤 약에 쓸래도 없어서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때가.

나는 멜랑콜리한 기분에 젖어 맥주를 샀다. 그 시절에는 어느 지역에나 교복을 입고 있는 미성년자에게도 술을 파는 구멍가게가 꼭 한 군데는 있었다.

맥주캔들이 담긴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나는 집으로 왔다. 그것을, 나는 내 방 안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마실 작정이었지만 집 근처로 다다를수록 들려오는 목소리들 때문에 그곳에서 술을 마시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온도는 높았고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창문들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나는 삼촌의 목소리, 엄마의 목소리가 한데 뒤섞인 집 앞 창 밑에 쭈그리고 앉아 맥주캔을 따서 조금씩 마셨다.


엄마는, 발작 중이었다.

다른 때와 달랐던 것은 나의 부재로 인한 삼촌의 쏟아지는 말들이었다. 엄마가 발작을 일으킬 때 보통의 삼촌은 괜찮아,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하고 엄마를 다독였다. 그때는 내가 있었으니까. 그 자리에 내가 배치돼 있었으니까. 삼촌은 우리는 지금 좋아, 괜찮아, 이대로도 좋아, 하고 위로했다.

그런데, 그때는 달랐다.

“내가 그 개자식의 친구만 아니었어도, 내가 그 새끼를 그날 집에 부르지만 않았어도, 그날 내가 먼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삼촌은 그렇게 뭉개지듯 우물거리는 말들을 토해냈다

삼촌의 말들이 방 안에 가득 흐르자 엄마는 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그만하라고 외쳤고 나를 이제 좀 가만두라며 삼촌을 때리더니 다시 이내 엄마로 돌아왔다가 다시 그악스럽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으으으. 나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저주해. 그러니까 저리 꺼져. 가라고. 좋아하는 사람한테 끔찍하게 당할 때의 그 심정을 네가 알아? 내가 사람이 아닌 짐승을 좋아하고 짐승에게 당하고 짐승에게 맞고 또 그 짐승의 새끼를 낳았어.”

엄마는 손을 벌벌 떨면서 거실에서 내 방으로 달려와 내 물건을 헤집기 시작했다. 내가 쪼그리고 앉아 있던 곳이 바로 현관 옆 내 방 창문이었기에 나는 더더욱 머리를 숙였다.

“하루하루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다시 원래의 엄마로 돌아온 정체불명의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무너졌다. 보이진 않았지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핏기라곤 없는, 밀랍인형 같은 얼굴로 어린 소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을 엄마의 몸이.

창틈으로 보이는 삼촌은 거실 한구석에서 무릎을 꿇은 채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칠 뿐이었다.


그때 나는 갑자기 모든 걸 이해해버렸다. 엄마가 나를 발가벗겼던 어린 날, 뜻 모를 목욕 또는 소독의 행위, 늘 멍하게 있다 갑자기 알 수 없던 말을 중얼거리던 그녀의 입술, 잘 지내다가도 고함을 지르며 나를 겁에 질리게 했던 것, 마구잡이로 내게 물건을 집어던지던 것.

게다가 엄마는 한 번도 나의 생일을 챙겨준 적이 없었다. 학교에 입학하자 삼촌이 생년월일 정도는 알려주었지만, 엄마에게서도 삼촌에게서도 축하한다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이 이상하다고 여긴 적은 없었지만, 어쩐지 그것은 다른 집의 아이들은 좀처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중 그 주제가 등장할 때 간혹 낯설음에 사로잡히고는 했었다.

그 모든 게 그제야 이해가 됐다. 그 모든 것이 놀랍게도 순식간에 이해가 됐다. 미처 다 마시지 못한 미지근한 맥주가 어느새 손에서 미끄러져 다 흘러버린 것도 모른 채, 그 황금색 액체가 흐르고 흘러 신발이 다 젖어 축축해져버렸는데 그것조차 모른 채 나는 그저 이해하고 또 이해했다.

그러나 그 모든 걸 이해한다고 해도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머리를 싸매고 고개를 숙이는 것밖에 없었다.

사는 건 나에게도 역시 고달팠는데, 나는 스스로 밥을 챙겨 먹고 나뿐 아니라 엄마를 보살피고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엄마의 냉대를 아무렇지 않게 버텨야 했는데, 그럼에도 천성이 이따위로 타고나서 그 흔한 반항조차 못하고 그냥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나답게 자라야 했는데, 숨죽여야 했는데, 그럼에도 언젠간 복수해주리라, 나다운 걸 깨고 전혀 다른 나의 모습으로 엄마를 놀래켜주리라, 겁에 질리게 하고 병들게 하리라, 나를 이렇게 키워낸 걸 기어코 벌하고야 말리라 다짐했는데, 나는 그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했던 것이다.

돌을 밀어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생을 밀어올리며, 엄마를 견디며, 그렇게.


*

엄마는 나를 용서했을까.

나는 엄마를 용서하는 것을 용서한다.

이제 더 이상 용서를 위해 애쓰지 않기로 한다.

언젠간 엄마가 나를 용서하는 날이 올까. 용서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좋아하던 남자가 자신을 함부로 짓밟은 사실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 몰랐다. 자신이 좋아하던 남자의 혈관에 악마가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걸 몰랐다는 사실을 여자는 용서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나는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나는 엄마에게 상처 입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겐 너무나도 무거워서 엄마를 용서했다고, 나는 엄마를 모두 이해한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용서란 무조건적으로 선한가. 그것이 옳은가.

열여덟의 그 여름날 전에,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엄마를 서둘러 용서했었다. - 사실 그것은 소년의 치기에 불과했지만 - 그리고 그 여름날. 이후엔 모든 게 어떻게 달라졌던가. 사물의 위치는 어떻게 옮겨졌는가.

내가 아무리 무수히 많은 사진을 찍어댄다 하더라도 결코 그것만은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

버스 안의 전자시계를 보니 어느덧 두 시 오십구 분이었다.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중요한 그 어떤 것이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통영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에서 황급히 뛰어 내렸다. 오후 세 시의 정류장은 텅텅 비어 있었고 뽀얀 햇살 사이로 투명한 눈송이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팔을 뻗어 거짓말처럼 내리는 눈송이를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손바닥 안에서 그것은 마치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았고, 그 느낌은 차갑고도 따뜻했다.

통영으로 엄마를 보러 갈 때면 엄마의 발작과 맞닥뜨리게 될까 늘 두려웠다. 게다 엄마는 늘 메말라 있었고 곧 바스라질 것만 같아서 그녀를 두고 오는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녹진한 기분에 사로잡혀 손에서 녹아내리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여느 때처럼 우리 모자는 말이 없었다. 침묵만이 우리를 에워싼 곳에서 천천히 식사를 했다. 나는 더 이상 엄마와 나눌 이야기도, 엄마를 쳐다볼 자신도 없었으므로 다시 서울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엄마, 저 가요.”

엄마는 베란다 통유리창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나는 꾸벅 인사를 했다.

그 순간에 내가 얼핏 보았던 한 장의 사진이 이제야 기억이 났다. 식탁 위에 쓰러질 듯 위태하게 놓여 있던 그 흑백사진은 내가 처음으로 찍었던 장난감 기차였다. 초점이 나간 채로 흔들린 사진이라 찍은 당사자인 나를 제외하고는 그것이 장난감 기차라는 사실도 모를 것이었다.

맑은 햇빛 속에서 한순간 눈송이가 찬란히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내가 두고 온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거미줄에 엉켜 있는 것만 같은, 기나긴 삶이었어.

한숨이 숨과 함께 들러붙어 저도 모르게 공기 중으로 쏟아졌다. 그때 거짓말처럼 휴대전화에서 메시지 도착 알림음이 들렸다.

은우. 이런 날 이 시간에 태어났어. 새하얀 날, 새빨갛게.

이미 발목까지 쌓인 눈길에 첫 발자국을 내며 나는 엄마가 있는 집을 향해 걸었다. 하얀 눈송이들이 마치 격려의 손길처럼 내 어깨를 두드리며 사라져갔다.

나는 매일매일 아주아주 씩씩하게, 아주아주 훌륭하게 죽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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