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좋은 사람』
매력적인 이야기는 그 분량에 구애받지 않는다. 특히나 100자 이내의 트위터글, 한 줄 정도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익숙한 요즘 세대들에게 이야기는 짧으면 짧을수록 환영받는다. 그래서 이야기는 길이가 짧아진 대신 단단하게 응축된 알맹이를 품는다. 그 알맹이의 맛은 시고도 달다.
짧은 소설 11편을 엮은 정이현의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 출간됐다. 이 책에 수록된 짧은 글들은 교보문고 북로그에서 연재될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읽어왔던 글인데, 내가 미처 읽지 못한 글도 책에는 수록돼 있더라. 그리하여 종이의 결과 백두리의 서정적이면서도 몽환적인 그림을 한 장 한 장 느껴가며 야금야금, 이 짧은 이야기들을 읽게 됐다.
짧은 글 속에서도 정이현이 보여주는 이야기의 힘은 여전히 매력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카프카의 『변신』이후 끊임없이 반복되고 변주되어 온, 무언가에 잠식당한 남자의 이야기가 여기서도 등장한다. 엉덩이에 별 모양의 종기가 생긴 뒤로 택시 운전을 하는 것이 힘들어진 택시기사(「별」)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매일매일이 뾰족한 모서리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열여덟 소녀의 불안한 생도 담겨 있다(「아일랜드」). 점쟁이가 일러준 대로 섬으로 떠나 부적을 태우려 하지만 바닷바람 때문에 끝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소녀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시원섭섭하게 아름다웠다. 「모두 다 집이 있다」도 흥미로웠다. 차를 살까 말까 고민하는 주인공에게 회사 사람들은 입을 모아 차를 사면 그때부터 돈, 돈, 돈이니 절대 차를 사지 말라고 한다. 조언을 마친 뒤, 그들은 주인공을 비웃듯이 모두 차를 타고 떠나는데 이 장면이 굉장히 희극적이었다. 결국 차를 산 주인공이 주차 공간 문제로 분을 터뜨리며 잠드는 장면에선 크게 공감이 가면서도 무언가를 가지면 그와 관련된 또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는, 투쟁해야 하는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남녀간의 언쟁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린 「폭설」은 ‘역시 정이현’이라는 감탄을 자아냈다. 모르긴 몰라도 그녀만큼 도시생활자들의 삶과 마음을 소름끼치도록 리얼하게 그려내는 작가도 아마 드물 거다. 「그 여름의 끝」에서는 계속 머릿속에 남는 한 문장을 발견했다. “그해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내가 춥고 겁에 질려 있었다면, 춥고 겁에 질린 사람이 오직 나 하나뿐인 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148~149쪽)” 헤어진 연인에게 보내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 「안녕이라는 말 대신」과 아는 후배를 떠올리게 만든 「견디다」도 인상 깊었다. 150만원짜리 교재를 구입해야만 입사가 가능한, 연봉 2,000만원이 안 되는 회사가 우리 주위에 실제로 존재함을 나는 알고 있다.
왠지 모르게 에쿠니 가오리의 『울지 않는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으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이 문장이 달콤쌉싸름한 이 소설을 대표한다 여기기 때문이다.
그때껏 나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 누워서만 울 수 있는 어른이 됐다.(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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