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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Feb 04. 2019

여성이었기에 끝내 작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

- 마감 중 만난 문장들

헤밍웨이에게 그녀는 파리 생활을 보살펴준 어머니이자 스승이고, 가이드였지만 경쟁상대는 될 수 없었다(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 시대에 독보적인 영향력이 있었지만, 그녀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역할 이상의 영역, 즉 한 사람의 독립적인 예술가로 공인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남자)은 없었다.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의 맥락과 그것의 의미를 다른 시대, 다른 곳에서 산 작가의 작품을 통해 깨닫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어쩌면 그것이 문학 또는 예술이라는 환상 공간이 갖는 실효성의 하나일 것이다. 


미드나잇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1920년대의 파리로 떠나던 길처럼, 극장의 객석에 앉아 스크린이 펼쳐 보이는 세계 속을 거닐며 나 역시 무언가를 찾고 있다. 거기엔 또 다른 내가 있고(길의 헤밍웨이처럼), 내 말을 들어주고,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고(길의 거트루드처럼), 또한 내 욕망의 그림자(길의 아드리아나처럼)가 있을 것이다. 현실이든 환상이든 결국 내가 보고 있는 이 세계는 나에게서 펼쳐져 나온 것이다.



1920년대 파리에서 꿈을 펼친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그토록 풍성한 것은 그녀가 발표할 곳을 찾지 못한 채로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써 내려간 글들 그리고 친구들과 쉴 새 없이 나눈 편지들 덕분이다(그녀가 남긴 유일한 유언은 자신의 미출판 원고들을 반드시 출판해달라는 것이었다).


1920년대 파리, 그토록 자유롭고 그토록 풍성했다고 말하는 그곳에서도 여성 예술가들은 한낱 뮤즈로서, 조력자로서만 존재하기를 요구받았다. 지난 호에서 소개한 위대한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의 스크리브너 사도 193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녀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거트루드의 절친을 자처한 남자들은 이 출판사를 통해 그토록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으면서도 거트루드의 작품 출판을 권유하는 편지 한 통 쓰기를 주저했다). 그녀를 비롯해 그 시절 파리의 여성 예술가들이 진정으로 이해받기 원했던 새로운 생각과 그들의 낯선 삶은 아직도 우리에게 온전히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가 애써 찾지 않는 한,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어디에선가 그 그림자들을 온전한 모습으로 편집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들의 편집자가 이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감독, 2011



<기획회의> 481호(2019년 2월 5일 발행)에 게재된 ‘에디터 인 필름’ 3회에서는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언뜻 비친 거트루드 스타인에 주목합니다. 스콧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와 절친이었지만 여성이었기에 끝내 그들에게 작가로서는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 여성 편집자 거트루드 스타인의 이야기를 「그 편집자, 두 달째 답이 없어요」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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