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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Feb 14. 2019

‘갑질’ 하는 사람들에게

- 마감 중 만난 문장

이 글을 읽는다면, 그건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니라면 이 글을 읽을 수도 없고, 읽을 이유도 없다. 오직 사람만이 무언가를 읽을 수 있고, 무언가를 읽는 이유도 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서두에 길게 뺀 이유는 독립연구자 김현경이 쓴 『사람, 장소, 환대』의 문제 제기가 그만큼 도발적이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내용 중 일부를 살펴보자.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다시 말해서 ‘사람’이라는 것은 지위인가 아니면 조건인가?”


우리는 사람의 권리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인권이기에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고 알고 있다. 흔히 ‘자연법사상’이라고도 부르는 이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부여되었지만, 세상 물정이 어디 그런가. 모래알만 한 힘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낮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갑질’ 하는 게 우리 일상 아니던가. 냉정하게 반성하자면, 우리는 모두 갑질의 주체가 아니던가. 이런 세상을 향해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라는, 어쩌면 보통 사람들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키워드들을 통해 사람의 존재 의미를 묻는다.


환대라도 다 같은 환대는 아니다. “신원을 묻지 않는 절대적인 환대”와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여야만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작동원리”로서 가치가 있다. 이유는 간단한데 “우리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이 세상에 왔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를 맞이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준 것을 모두 빚으로 계산하고 “완전한 청산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5



편집후기



"당신은 로봇입니까?" 요즘 온라인상에서 회원가입을 하려고 보면 자주 마주치게 되는 문장이다. 로봇이 아닌 걸 증명하기 위해선 제시된 사진 중 신호등이 있는 사진들을 하나하나 클릭해야 한다. 신호등이 있는 사진들을 클릭하라는 텍스트를 읽고 로봇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이유가, 사람에겐 있기 때문이다. 장동석 <뉴필로소퍼> 편집장이 전해주는 『사람, 장소, 환대』의 문제 제기는 흥미롭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갑질'은 남의 얘기,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동석 편집장의 말대로 "모래알만 한 힘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낮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갑질' 하는 게 우리 일상"이다.  


이런 일상에서 우리가 로봇처럼 살지 않고, 갑질 하지 않고 사람답게 살려면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가 필요하다. "우리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이 세상에 왔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를 맞이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단순한 사실을 쉽게 잊고 산다. 벌거벗은 우리를 환대해 준 사람들을 잊지 말고 우리도 타인을 환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뜻한 문장들을 손에 쥐고 편집할 수 있어 행복했다. 추운 목요일, 바람 부는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준 리뷰였다. 장동석 편집장의 글 「당면한 삶을 오롯이 살아내는 일」은 2019년 2월 20일에 발행되는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482호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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