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I적 관점에서 본 <서치>
영화 <서치>의 제작자인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 영화 <원티드>(2008)와 <벤허>(2016)의 감독 - 도 한 베크맘베토브는 동료가 실수로 끄지 않은 스카이프의 화면 공유 기능을 통해 동료의 페북 메시지와 아마존 구매 물품들을 모조리 알게 됐다. 이 일 이후 티무르 베크맘베토프는 온라인과 함께하는 21세기 인간들의 존재 양상을 영화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왜 당장 친구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느냐고, 설사 그게 보이더라도 보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난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인간의 본능 속에 관음의 DNA가 녹아 있을지도 모른다. 티무르가 자신의 경험을 확장해 구상한 스토리가 바로 <서치>다.
UI적 관점에서 <서치>를 분석하려면 먼저 '파운드 푸티지'라는 장르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파운드 푸티지란, 발견된(Found) 영상(Footage)이라는 뜻으로,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 중에서 특정 소재를 사용한 영화를 일컫는다. 1998년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다수의 호러영화가 이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캠코더, CCTV나 블랙박스 등의 영상이 파운드 푸티지의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서치>와 연관 지을 수 있는 파운드 푸티지 영화들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자.
1) 보통의 영화는 전지적인 시점 또는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스토리를 진행하지만, 파운드 푸티지는 등장인물(카메라맨)의 시각만 보여주기 때문에 마치 직접 사건을 보는 듯한 사실감을 준다. 따라서 상상, 회상이나 꿈을 보여줄 수 없다
2) 핸드헬드 촬영 방식으로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화면과 제한적인 정보 덕분에 불안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관람객들이 느끼기에 산만하게 어지럽고, 급작스러운 변화 상황에서는 쉽게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단점 역시 가지고 있다.
3) 찍은 영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콘셉트이기 때문에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표현한다.
파운드 푸티지는 저예산으로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장르다. <서치>의 제작자도 변형된 파운드 푸티지, 스스로는 '스크린 라이프'라 칭하는 장르의 영화 <언프렌디드 : 친구 삭제>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100% 노트북 화면으로만 구성됐고 흥행에 힘입어 최근 속편인 <언프렌디드 : 다크 웹>이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제작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찍어내기 시작하면서 참신함도 작품성도 재미도 없는 양산형 파운드 푸티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장르 자체에 질려 버린 사람도 있다. 파운드 푸티지 영화를 만드는 건 쉬워 보이지만, 제대로 된 파운드 푸티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오히려 보통 영화보다도 훨씬 고도의 연출과 편집 실력이 필요하다. 그걸 제대로 보여준 영화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와 <서치>다(우리나라 영화로는 2018년작 <곤지암>을 들 수 있을 듯하다. <곤지암>은 10대~20대에 친숙한 인터넷 모바일 생중계 형식을 차용해 크게 성공했다. 파운드 푸티지 영화에선 카메라로 영상을 남기는 데 집착하는 인물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곤지암>의 하준이 그러했다).
특히 <서치>의 흥행은 단순한 숫자 이상으로 의미를 지닌다. 디지털 시대를 반영하는 새로운 장르와 영상 문법을 대중이 수용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티무르 베크맘베토브는 “아이폰이나 컴퓨터에 기반한 영화는 제작비가 저렴하면서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제공할 수 있다”며 “스크린 라이프 영화가 다음 세대의 유행 장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스크린 라이프 영화 10여 편을 기획 중이라고 한다. 그럼 컴퓨터ㆍ모바일 기기를 스토리텔링에 활용한 장르 '스크린 라이프'에 대해 알아보자.
<씨네 21>에 따르면
“‘스크린 라이프’는 인간의 삶에 중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 대해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우리의 삶 전체가 모바일 기기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두려움, 사랑, 우정, 배신,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바보 같았던 실수까지. 이 모든 것들이 드러나는 통로인 스크린 없이는 오늘날의 세계와 인간 군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티무르 베크맘베토프는 이러한 연유로 디지털 기기 화면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를 ‘스크린 라이프’로 명명하고, 이 새로운 영화적 형식을 차용한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친구들이 모인 채팅방에 자살한 친구의 아이디를 가진 누군가가 접속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호러영화 <언프렌디드: 친구 삭제>(2014)가 그 신호탄이었고, <서치>는 베크맘베토프의 제작사 바젤레브스의 ‘스크린 라이프’ 시리즈를 잇는 후속작이다. 이 영화가 펼쳐 보이는 디지털 기기 속 등장인물들의 삶은 <언프렌디드: 친구 삭제>에 비해 훨씬 더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 디지털 기기의 종류만 해도 노트북, 휴대폰, 웹캠, CCTV 등으로 확장되었으며 스크린 속에서 보이는 콘텐츠 역시 각종 SNS와 메신저 프로그램, 영상통화, 뉴스 등으로 다채로워졌다.
티무르는 공포영화의 한 장르가 된 파운드 푸티지처럼 스크린 라이프 또한 새로운 영화 언어로써 트렌드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그의 확신을 영화 <서치>는 증명해낸다. 스크린 라이프 장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다. 디지털 기술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늘 그 안에 담겨 있다. 소통의 수단이 바뀌어도 인간의 본질적 감성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무엇보다 <서치>의 진정한 성취는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디지털 기기를 단순한 소품만이 아니라, 영화적 스토리텔링의 도구로 적극 활용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는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 출신의 감독 아니시 차간티의 이력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1991년생인 이 젊은 미국 감독은 구글 글라스를 끼고 인도에 사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아들의 여정을 다룬 영상 <구글 글라스: 시드>(Seeds)로 24시간 만에 100만 뷰를 기록해 화제가 됐고, 구글에 채용돼 2년간 영상과 광고를 제작했다.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에서 디지털 기기의 기능에 감수성을 결합한 영상을 만드는 시도를 계속해온 아니시 차간티의 경험은 기술과 스토리텔링의 효과적인 결합을 시도하는 <서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했을 거다(인용 : <씨네 21>). 그가 제작한 광고들은 영화 <서치>와 얼마나 연관이 있을지 살펴보자.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에서는 사람들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구글의 기능들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기능적인 이점을 전달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결국 구글 검색을 우리의 삶 속에 녹여내낸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광고가 영화 <서치>의 UI 시초가 된 <파리지앵 러브>다.
‘파리지앵 러브’ 광고가 성공하자 다음 해 구글은 ‘Dear Sophie’ 광고를 제작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밀려 18%의 점유율밖에 차지하지 못한 크롬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릴까.역시 구글은 구글 크롬을 제품으로서가 아닌 삶의 일부분으로 끌고 들어오기로 결심하고, 크롬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감성적으로 보여준다.
* Dear Sophie 광고
지메일로 써 내려가는 한 아빠의 육아일기는 사람들의 감성을 그야말로 툭 건드렸고 광고는 빵 터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광고를 보다 보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영화 <서치>는 2011년, 이 광고가 나오면서부터 그 싹이 움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광고는 아니쉬 차간티 감독이 제일 좋아하는 광고이자 ‘마고’(미셸 라)와 ‘데이비드’(존 조)의 가족사를 디바이스를 통해 보여주는 영화 <서치>의 오프닝 시퀀스와 비슷한 톤앤매너를 자랑한다.
<디어 소피> 광고는 2012년 원쇼 국제광고제 본상, 2012년 칸 광고제 필름 부문 은상을 수상한다. 심지어 구글 직원의 실화이기 때문에 그 감동은 더했다. 이후,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은 35%로 떨어졌고, 크롬의 점유율은 29%로 증가했다.
아니쉬 차간티는 "나를 조금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내가 그것을 서술적 차원에서 보고 기술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특징의 감정적 함축이 무엇인지를 보기 위해 기묘한 방법으로 훈련받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구글은 기술에 관한 감정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일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서치>에 그걸 끌어들였다. 관객들은 현실적이고 영화적이고 감정적인 방법으로 동시에 기술을 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니쉬 차간티는 현대의 언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이용해 기술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성을 오롯이 작품 안에 녹여냈다.
OS 운영체제와 모바일, CCTV로만 구성된 영화 <서치>에서 가장 주목한 부분은 인트로였다. <서치>는 Windows XP 로그인 화면의 밝은 파란색과 녹색으로 열린다. 그 어떤 부연설명이나 내레이션 없이 노트북 폴더에 담겨 있는 각종 사진과 캘린더, 홈비디오와 영상 통화 등을 통해 주인공 가족의 전사를 유려하게 펼쳐내는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픽사의 애니메이션 <업>(2009)의 오프닝에 견줄 만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소녀 마고의 탄생을 담은 사진에서부터 시작된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이게 윈도우즈의 바탕 화면과 효과음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후 가족의 타임라인과 함께 컴퓨터 운영 체제와 SNS 발달의 역사가 마고의 성장과 가족의 일대기를 담아낸다.
우리는 데이비드의 아내인 파멜라가 사용자 계정을 만들고 그녀의 이메일을 설정하고 가족사진을 수집하는 것을 본다. 이것들은 모두 평범한 작업이지만, 이 가족의 오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고가 태어나자 그녀는 윈도우 계정 하나를 더 추가한다. 10년에서 15년 전, 우리가 모두 윈도우 XP를 사용하던 시절, 광대역이 유비쿼터스화되기 시작했던 시절을 떠올리지 않는 것은 어렵다. 우리의 오래된 컴퓨터들이 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상상해보라. 이는 컴퓨터의 최근 역사에 대한 연애편지와 같다. 16년이라는 기간을 배경으로, 그것은 윈도우 XP, 윈도우 비스타와 같은 버전을 운영하면서 그들이 소유한 컴퓨터를 통해 가족의 뒷이야기를 전달한다. 컴퓨터 하드웨어의 변천사가 이 영화에 그대로 드러난다. 처음엔 가족 수대로 윈도우 계정이 세 개다. 시간이 흐르면 마고의 노트북과 데이비드의 컴퓨터, 스마트폰이 다 따로 등장한다. 초기에 한 컴퓨터에서 세 개의 계정을 보여줄 땐 그만큼 컴퓨터가 비쌌다는 뜻도 된다.
또 영화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들리는 전화 랜 연결음은 가족의 히스토리가 결국 하드웨어의 변천사와 중첩됨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다. 이 인트로를 통해 <서치>는 미디어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간의 변화, 사회의 변화까지 보여준다. 테크놀로지의 변화가 인간의 변화와 어떻게 같이 가는지를 보여주는 약 10분간의 오프닝이 명장면인 이유다.
이 인트로는 영화의 복선이기도 한데, 데이비드가 후에 마고의 비밀번호를 찾게 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야후 메일 계정을 통해 딸의 비밀번호를 찾게 되는데, 아마도 윈도우 XP를 사용하던 시절, 어린 마고의 계정을 만들 때 그가 암호를 설정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처음에 계정을 만들 때 부모가 암호 설정을 도왔는데 자라서도 그걸 바꾸지 않았다는 설정인 것이다.
모든 영화들이 카메라를 어떻게 사용해야 등장인물과 관객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고민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일종인 스크린 라이프 영화이므로 데이비드가 컴퓨터를 뒤지며 딸을 추적하는 과정은 100% 컴퓨터, 휴대전화, CCTV 화면으로만 구성돼 있다. 이 화면들은 모두 아버지인 데이비드가 바라보는 화면이고 데이비드의 얼굴은 영상통화, 동영상 등으로 나올 뿐, 직접적으로 화면에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데이비드는 마고의 sns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스프레드 시트를 만들고 그녀의 행방에 대해 마고의 친구들에게 질문한다. 그는 애써 침착하려 하지만 증가하는 불안감은 피할 수 없다. 그가 무슨 일을 하든 관객은 클로즈업으로 그를 보며,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대형 스마트폰을 보듯 그를 관찰하게 된다. 그는 숨을 곳이 없다. 우리는 데이비드의 모든 감정을 그대로 느낀다. 마치 우리가 가장 취약한 곳에서 그를 감시하는 것처럼. 이는 놀라운 경험이다. 주인공 데이비드의 시점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주인공이 어떤 상태에 있고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를 그야말로 '체험'하게 만드는 영화가 <서치>다. <서치>는 영화적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다른 파운드 푸티지, 스크린 라이프 장르의 영화와 비교했을 때에도 더욱 성공적이다.
게다가 노트북 화면의 깜박이는 커서가, 메시지를 입력할 때 표시되는 말줄임표가, 전화가 걸려올 때 뜨는 스크린세이버가 영화적으로 새로운 정서를 얻게 되는 순간을 우리는 이 영화에서 목도할 수 있다. 눈물이 핑 돈 장면이 하나 있다. 데이비드가 온라인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옛날 데이터 중 딸이 어렸을 때 아빠의 날을 기념해 '올해의 아빠상'을 자신에게 수여하는 동영상을 발견한다. 데이비드는 딸을 잃어버린 아빠이니 올해의 아빠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올해의 아빠상이 나오는 장면에서 아예 '정지' 버튼을 눌러 버리고는 영상을 삭제해버린다.
서칭하다 아내의 동영상을 지울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데이비드는 그 동영상을 휴지통으로 가져다 놓으려다 결국 '검색에서 제외'하고 만다. 이때 삭제 버튼을 누를까 말까 멈춰 있는 커서에 관객은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사실 '커서'란 우리가 하루에도 수없이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커서가 움직이는 걸 보면 우리는 갈등을 느끼게 된다. 지금 현재 우리에게 공감 가는 소통의 수단이 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 <서치>는 단순히 스마트한 스릴러를 넘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영화에서는 일반적인 윈도우 XP 배경처럼 평범하고 단순한 것조차도 감정적인 무게를 지니고 있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우리는 이 영화가 어느 정도 무게를 가지기 위해서는, 모든 버튼과 기술, UI의 모든 측면들이 단지 그것이 무엇인지 이상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일종의 새로운 카메라 아이(camera-eye, 카메라로 찍었을 때의 상태를 상상ㆍ판단할 수 있는 카메라맨의 능력)다. 감독의 연출적 선택이라는 게 앵글과 샷을 선택해 관객이 무엇을 볼지 선택하고 빠져들게 하는 건데, 뉴미디어 시대, 디지털 시대의 카메라 아이, 새로운 영화적 문법이 이 영화로 인해 본격화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이 영화에서의 서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전적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마우스의 움직임이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서사를 구축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배우의 액팅이 있어야 할 연기들을 포인터의 클릭으로 치환해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서치>의 UI를 일상적으로 전혀 거리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이해하고 공감한다. 한마디로 <서치>는 출연 배우뿐 아니라 모니터 화면과 그 화면 위에 노출되는 모든 것이 또 하나의 주연 배우인 영화다. 특히 ‘그 배우’의 연기는 매우 디테일한데, 마우스 커서, 타자 속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메시지 내용, 클릭 한 번으로 마고의 실체에 가 닿는 각종 정보의 등장은 스크린만으로도 극의 진행, 캐릭터의 현재 감정까지도 충분히 전달한다.
우리는 데이비드가 보고 있는 것에 레이저로 초점을 맞춘 것처럼 아이 메시지(i Message) 채팅과 페이스북 피드를 본다. 심지어 그의 컴퓨터 바탕화면의 사진들도 이야기를 말해준다. 우리는 유튜브 영상, 벤모 계정, 이메일이 튀어나와 사건의 새로운 단서들을 제공하고 그에 따라 짜증스러워지는 데이비드의 얼굴을 한 창에서 볼 수 있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지메일을 확인하는 걸 보면 의사에게서 온 메일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데이비드는 우울증을 앓고 있고, 항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항우울증 약 구글 광고가 인터넷 우측에 타깃되어 있는 것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데이비드가 마고의 전화를 받지 못했을 때 그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는 의사로부터 처방받은 수면제 통이 있었고, 그래서 그가 세 번이나 걸려온 딸의 전화를 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시간의 경과를 화면보호기를 통해 보여준다. 인서트 컷으로 화면보호기를 사용한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정보(이스터 에그)들이 스크린상에서 펼쳐진다.
이 영화는 100% 딥 포커스로 촬영되었다. 촬영 기간은 단 13일이었다!
촬영 기간이 단 13일이었던 것에 비해 편집은 1년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미리 편집을 해두고 이 화면에는 이런 장면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신을 촬영한 것이기에 촬영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캡처, 편집의 개념이라고 봐야겠다.
처음에 데이비드는 윈도우를 사용했는데 이후 맥으로 건너뛴다. 윈도우에서는 창들이 전체 모드다. 창을 바꾸려면 밑을 클릭하거나 탭을 사용해 옮겨 다녀야 한다. 그러나 맥은 개별 창 시스템이기 때문에 옮겨 다니기 편하다. 영화적으로 역동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디테일은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서술적 집중을 달성하고 컴퓨터 화면을 큰 화면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편집팀은 벡터화를 통한 이미지 스케일링이 필요한 이미지의 여러 부분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고 한다. 이들은 가상 카메라 셰이크, 푸시인, 렌즈 플레어, 렌즈 룩을 사용했다. 또한 감독은 이 영화가 크롬, 페이스타임 등과 같은 실생활의 앱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그동안 이치에 맞지 않는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보는 것에 질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일한 예외는 그들이 만든 가짜 웹사이트인 'YouCast'라는 라이브 블로깅 도구, 즉 'YouNow'라는 실제 웹사이트의 거울 이미지였다.
더 이상 누가 납치되었다고 해서 동네에서 수군대는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유튜브에 관련 동영상이 오르고 댓글이 달리는 시대다. 마고가 실종되었다고 하자 이를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비난과 거짓 추측, 가식 등 이 모든 것들이 필터 없이 난무한다. 관객들은 아버지의 시선에서 이 모든 폭력을 목도할 수밖에 없다.
마고의 실종이 공식화되고 담당 형사가 배정되고 형사가 전화해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데이비드는 자연스럽게 형사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해서 사진과 동영상, 경력과 관련 기사들을 살펴본다. 검색이 일상이 된 21세기 실리콘밸리 직원이 데이비드인 것이다.
데이비드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텀블러, 유캐스트 라이브 방송 등 마고가 즐겨 사용하는 소셜미디어에 접속하고서야 딸이 맺고 있는 교우 관계와 그녀의 속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서치>는 소셜 네트워크를 한 사람의 내면을 기록하고 사회적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일종의 아카이브로 바라본다. 이 아카이브는 때때로 숨 막히는 일상의 탈출구가 되어주며 뜻밖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일조하지만 새로운 방식의 위험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는 SNS를 통해 누구와 관계를 맺어가며, 어떤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스크린에서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의 디지털 자아는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 소통인가, 소통의 흔적인가. 감독은 "<서치>를 찍고 난 후 나는 항상 해시태그를 확인하고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본다. 이것은 이 영화의 삶을 추적하는 멋진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치>는 영화 <소셜 네트워크>와 비슷한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 듯 보인다. 20억 명이 사용하고 있는데 소셜 네트워크가 강화될수록 그 창시자는 얼마나 더 외로워지는가를 다룬 영화가 <소셜 네트워크>였다. 수많은 방식으로 발전해가는 SNS, SNS가 강화될수록 익명성도 강화되며 그에 따라 인간관계는 고립된다. <서치>의 형식에 딱 맞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도대체 내가 내 딸에 대해 알고 있던 게 뭐지?" 딸의 실종 이후 아버지가 딸의 SNS를 통해 찾은 건 친구가 아니라 허상이었다. 딸은 SNS의 속성을 역으로 이용해 실체 없는 친구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두기까지 했다. SNS 시대, 한 사람이 관계를 맺는 수는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그 개별 사람들과의 관계 밀도는 약해졌다.
<서치>의 스토리텔링 내러티브는 굉장히 고전적이다. 히치콕 영화의 의혹 발생, 의혹으로부터 증거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서치>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1954년, 알프레드 히치콕은 저 유명한 영화 <이창>을 만들게 된다. 이 영화의 계보는 이후 <현기증>, <사이코>로 이어지며 ‘관음 3부작’이라 불리게 된다(앞서 말한 <서치> 제작의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밑바닥엔 관음이 있다). <이창>의 주인공 제프는 사진작가이다. 카레이싱 촬영 도중 다리를 다쳐 휠체어에 의지한 채 자신의 방에서 무료하게 지낸다. 그는 카메라 렌즈로 주변 이웃들을 훔쳐보기 시작한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 미녀 무용수, 슬픈 표정으로 혼자 지내는 미스 고독, 병든 아내와 남편 등 주변의 평범한 이웃을 관찰하던 중, 제프는 어느 집의 병든 아내와 남편이 심하게 다투는 모습을 목격한다. 남편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집을 들락거린 이후 그 부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의심을 품은 제프는 연인 리사와 간호사 스텔라의 도움을 받아 부부의 집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만했던 것이 톱과 칼을 만지작거리고, 화단을 파헤치던 강아지에게 신경질을 내는 남편의 모습이 제프의 의심을 더욱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만약 감독이 내러티브 실험까지 했다면 어땠을까? 과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고전적이고 치밀하게 구축한 내러티브가 심리적 정서를 잘 쌓았다. 인트로에서 이들이 얼마나 화목한 가정이었는지, 데이비드가 얼마나 좋은 아빠였는지, 마고가 얼마나 좋은 딸이었는지 보여준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병사 후 아빠가 이 딸을 힘들게 길렀는지, 마고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사건이 벌어졌을 때 데이비드가 미치는 것 이상으로 관객들도 그와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정서를 쌓아두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보기 때문에 웬만한 이야기로는 자극받기가 쉽지 않다. 최근 영화의 규모가 블록버스터급으로 커진다거나 아주 자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건 그래서일 거다. 그러나 <서치>는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바꿔 새로운 자극을 준 영리한 영화였다. 이를 통해 탈서사의 시대에 영화가 관객을 사로잡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최첨단의 디바이스를 가지고 지금의 기술로 볼 수 있는 가장 최첨단의 화면을 보여주면서도 이야기의 구조는 전통적 내러티브를 착실하게 따르고 있는 <서치>. 만약 같은 이야기로 이러한 형식이 아닌 영화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영화를 보며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서치>를 보며 <열차의 도착>이 떠올랐다. 영화의 탄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이다. 왜 <열차의 도착>이 '최초의 영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을까?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휴고>를 보면 뤼메이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을 보던 관객들이 스크린에서 열차가 도착하자 다 도망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눈은 갇혀 있고 정형화된 큰 화면에서 전혀 새로운 무언가가 달려들었을 때 반응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객들은 실제 열차가 도착했다고 느꼈을 만큼 <열차의 도착>을 감각하고 체험했다. <서치> 역시 <열차의 도착>처럼 관객의 영화를 체험하고 감각하게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익숙한데 신선하고 신선한데 익숙했다는 것이다. 익숙한데 신선하기란 정말 어려운데, 이 어려운 걸 해냈다. '감각하며 체험하다' 이것이 탈서사의 시대에 영화 <서치>가 관객을 사로잡은 비법이 아니었을까.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