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화양영화 03화

과장은 없다

- 영화 <극한직업> 리뷰

by 김뭉치

재미, 그것은 옳다. 왜냐하면 현실이 너무 재미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월화수목금 쳇바퀴 돌듯 '살아간다'기보다 '살아내는' 일상, '톨'로 토요일과 일요일은 빛의 속도로 지나가버린다. 아아. 자본주의의 노예로 자본주의 미소를 지은 채, 우리는 얼마나 더 재미없이 살아가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미디영화를 좋아하진 않았다. 이렇게 웃을 일이 없는 매일에도 불구하고 코미디영화의 과장이 싫었다. 웃어라, 웃어라 강요하면 웃는 아이도 무표정해지기 마련. 나는 남들이 하라는 건 이상하게 하지 않는 성미를 지닌 사람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극한직업>의 시놉시스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매번 뻔한 한국영화의 답습 아닌가 싶었다. 또 형사, 또 마약, 또 조폭 얘기인가. 치와라 마. 난 그렇게 호락호락한 관객이 아니었다.


또 형사, 또 마약, 또 조폭 얘기인가. 치와라 마


예고편부터 재미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예고편은 철문처럼 굳게 닫힌 내 마음을 봄눈처럼 소로록 녹여버렸다. 게다가 예고편을 서사화한 지무비의 유튜브까지 보고 나니 아아. 난 그만 이 영화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극장에 가서 팝콘을 뿌시며 목젖까지 열어 제치고 한바탕 웃어 버리고 싶었다. 그즈음 크게 웃을 일이 없던 나의 웃음 스위치를 이 영화가 간질간질 건드리기 시작한 것. 급기야 주변 지인들에게 예고편과 지무비를 공유하며 다 함께 웃자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I5wejCDXtg

출처 : 지무비


*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류승룡 배우. 웃긴다


"지금까지 이런 치킨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치킨인가" 개봉도 전에 유행어가 된 대사를 읖조리며 내심 극장에 가기가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런 영화 있지 않은가. 막상 극장에 가서 보면 예고편이 다인 영화. 그런데 <극한직업>은 예고편에 담겨 있는 전반부 외에 상상 못한 후반부 전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약의 프랜차이즈화라니, 편의점에서 마약도 살 수 있는 시대를 꿈꾸다니, 책 만드는 사람이자 마케팅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다만 모방범죄의 위험이 두려웠다). 게다가 영화는 치킨집으로 위시되는 소상공인의 애환까지 다룬다. 물론 코미디영화의 장르상 특성 때문에 무겁게 다뤄지진 않지만, 웃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퇴직금으로 차린 치킨집 운영이 어려울 때 느끼게 될 간담 서늘함이 1초간 스치고 지나간다.



마포경찰서 마약반 형사들은 위장 수사를 위해 치킨집을 차렸다가 말 그대로 대박이 난다. 예고편을 보면서 영화적 설정으로 뭉개고 가겠지, 생각했지만 의외로 감독은 과장 없는 성실함으로 찰떡같이 리얼하게 설정을 살려냈다. 게다가 오로지 웃음 하나 주겠다는 우직한 뚝심으로 마약반 형사 5남매의 개성을 한 명 한 명 다 살려내는 걸 보니 이 감독의 멋짐이 감동스럽고 뭉클하기까지 했다.



치킨은 무조건 옳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치킨이 신의 한 수 같다. 치킨을 튀기는 모습 그대로를 3초간 내보이는 배달앱 광고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치킨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음식이다. 기름에 튀길 때 나는 소리, 갓 튀긴 치킨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느끼게 되는 바삭바삭함, 노릇노릇한 비주얼, 고소한 냄새는 보고만 있어도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그 이미지와 소리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고 마음 근육을 이완시키기에 치킨은 ASMR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이 치킨이 조폭, 마약, 형사 등의 뻔한 소재와 어우러지고 형사 중 한 명이 수원 왕갈비집 아들이라는 설정 덕분에 희대의 명물 '수원왕갈비통닭'이 탄생한다. 지금 유튜브와 SNS에 '수원왕갈비통닭' 레시피가 엄청 돌아다니고 직접 만든 '수원왕갈비통닭' 인증샷이 올라오는 건 다 그럴 만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수원왕갈비통닭이 그렇게 먹고 싶을 수가 없다. 애초에 영화제작팀에서 팝업스토어로라도 수원왕갈비통닭집을 차렸다면 흥행 가속도가 더 붙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심지어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마 형사의 수원왕갈비통닭 레시피에 대해 "무슨 일을 하든 누구나 자신이 모르는 능력과 재주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지 않나. 모두 활용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저마다 자신의 숨겨진 재주에 대한 로망과 판타지가 있다. 이 영화는 형사 다섯명의 숨겨진 능력을 시원하게 터트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후반부, 형사 다섯명의 능력들을 하나씩 공개할 때 느끼는 쾌감이 이 영화의 핵심이자 화룡점정이다. 코미디로 시작해 통쾌함으로 마무리하는 게 연출 의도였다"고 말한다. 수원왕갈비통닭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다니 새삼 맛도 좋고 감동까지 더해진 최고의 통닭 아닌가 싶다.


수원왕갈비통닭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다니!


찰진 대사와 과장 없는 연기, 성실한 연출이 만나 <극한직업>은 대박의 요소를 고루 갖춘 작품으로 탄생했다. 현재 이 영화가 1400만 관객을 돌파하고서도 지칠 줄 모르는 데는 다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다. 생각해보면 6년 전 <7번방의 선물> 이후 명맥이 끊긴 코미디영화의 부활을 <극한직업>이 이뤄냈다. 신파 없고 과장 없고 젠 체하지 않는 3無의 이 영화가 오래오래 관객의 사랑을 받길 바란다.


파 없고 과장 없고 젠 체하지 않는 3無의 웰빙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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