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극한직업> 리뷰
재미, 그것은 옳다. 왜냐하면 현실이 너무 재미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월화수목금 쳇바퀴 돌듯 '살아간다'기보다 '살아내는' 일상, '톨'로 토요일과 일요일은 빛의 속도로 지나가버린다. 아아. 자본주의의 노예로 자본주의 미소를 지은 채, 우리는 얼마나 더 재미없이 살아가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미디영화를 좋아하진 않았다. 이렇게 웃을 일이 없는 매일에도 불구하고 코미디영화의 과장이 싫었다. 웃어라, 웃어라 강요하면 웃는 아이도 무표정해지기 마련. 나는 남들이 하라는 건 이상하게 하지 않는 성미를 지닌 사람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극한직업>의 시놉시스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매번 뻔한 한국영화의 답습 아닌가 싶었다. 또 형사, 또 마약, 또 조폭 얘기인가. 치와라 마. 난 그렇게 호락호락한 관객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예고편은 철문처럼 굳게 닫힌 내 마음을 봄눈처럼 소로록 녹여버렸다. 게다가 예고편을 서사화한 지무비의 유튜브까지 보고 나니 아아. 난 그만 이 영화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극장에 가서 팝콘을 뿌시며 목젖까지 열어 제치고 한바탕 웃어 버리고 싶었다. 그즈음 크게 웃을 일이 없던 나의 웃음 스위치를 이 영화가 간질간질 건드리기 시작한 것. 급기야 주변 지인들에게 예고편과 지무비를 공유하며 다 함께 웃자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I5wejCDXtg
*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치킨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치킨인가" 개봉도 전에 유행어가 된 대사를 읖조리며 내심 극장에 가기가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런 영화 있지 않은가. 막상 극장에 가서 보면 예고편이 다인 영화. 그런데 <극한직업>은 예고편에 담겨 있는 전반부 외에 상상 못한 후반부 전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약의 프랜차이즈화라니, 편의점에서 마약도 살 수 있는 시대를 꿈꾸다니, 책 만드는 사람이자 마케팅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다만 모방범죄의 위험이 두려웠다). 게다가 영화는 치킨집으로 위시되는 소상공인의 애환까지 다룬다. 물론 코미디영화의 장르상 특성 때문에 무겁게 다뤄지진 않지만, 웃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퇴직금으로 차린 치킨집 운영이 어려울 때 느끼게 될 간담 서늘함이 1초간 스치고 지나간다.
마포경찰서 마약반 형사들은 위장 수사를 위해 치킨집을 차렸다가 말 그대로 대박이 난다. 예고편을 보면서 영화적 설정으로 뭉개고 가겠지, 생각했지만 의외로 감독은 과장 없는 성실함으로 찰떡같이 리얼하게 설정을 살려냈다. 게다가 오로지 웃음 하나 주겠다는 우직한 뚝심으로 마약반 형사 5남매의 개성을 한 명 한 명 다 살려내는 걸 보니 이 감독의 멋짐이 감동스럽고 뭉클하기까지 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치킨이 신의 한 수 같다. 치킨을 튀기는 모습 그대로를 3초간 내보이는 배달앱 광고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치킨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음식이다. 기름에 튀길 때 나는 소리, 갓 튀긴 치킨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느끼게 되는 바삭바삭함, 노릇노릇한 비주얼, 고소한 냄새는 보고만 있어도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그 이미지와 소리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고 마음 근육을 이완시키기에 치킨은 ASMR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이 치킨이 조폭, 마약, 형사 등의 뻔한 소재와 어우러지고 형사 중 한 명이 수원 왕갈비집 아들이라는 설정 덕분에 희대의 명물 '수원왕갈비통닭'이 탄생한다. 지금 유튜브와 SNS에 '수원왕갈비통닭' 레시피가 엄청 돌아다니고 직접 만든 '수원왕갈비통닭' 인증샷이 올라오는 건 다 그럴 만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수원왕갈비통닭이 그렇게 먹고 싶을 수가 없다. 애초에 영화제작팀에서 팝업스토어로라도 수원왕갈비통닭집을 차렸다면 흥행 가속도가 더 붙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심지어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마 형사의 수원왕갈비통닭 레시피에 대해 "무슨 일을 하든 누구나 자신이 모르는 능력과 재주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지 않나. 모두 활용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저마다 자신의 숨겨진 재주에 대한 로망과 판타지가 있다. 이 영화는 형사 다섯명의 숨겨진 능력을 시원하게 터트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후반부, 형사 다섯명의 능력들을 하나씩 공개할 때 느끼는 쾌감이 이 영화의 핵심이자 화룡점정이다. 코미디로 시작해 통쾌함으로 마무리하는 게 연출 의도였다"고 말한다. 수원왕갈비통닭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다니 새삼 맛도 좋고 감동까지 더해진 최고의 통닭 아닌가 싶다.
찰진 대사와 과장 없는 연기, 성실한 연출이 만나 <극한직업>은 대박의 요소를 고루 갖춘 작품으로 탄생했다. 현재 이 영화가 1400만 관객을 돌파하고서도 지칠 줄 모르는 데는 다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다. 생각해보면 6년 전 <7번방의 선물> 이후 명맥이 끊긴 코미디영화의 부활을 <극한직업>이 이뤄냈다. 신파 없고 과장 없고 젠 체하지 않는 3無의 이 영화가 오래오래 관객의 사랑을 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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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