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을 것만 같은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사위는 온통 어둠뿐이어서 아무리 둘러봐도 빛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밤의 고속버스, 그 안에 시루떡처럼 누워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혼곤한 잠에 빠져 있는 듯했다. 잠은 쉬이 오지 않았고 막상 잠에 들라치면 어젯밤에 꾼 꿈이 생각나 다시 눈이 떠지곤 했다.
나는 아버지를 죽였다. 까만색 승용차의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버지를 죽였다. 차창을 두드려 아버지가 창을 열게 만들었다. 창이 스르륵 내려가자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시퍼런 칼을 꺼냈다.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에 그 칼을 내리꽂았다. 아버지의 얼굴이 주욱 긁혀 피가 떨어지는 순간, 악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라기엔 너무나도 생생했기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꿈속의 어두운 색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꿈의 세계로, 그 어두운 색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어느새 나의 몸엔 온통 어둠이 묻어 어둠 범벅이 되었고 나는 또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해야 했다.
이 차가 갑자기 다른 차와 부딪혀 산산조각 나고 그래서 다가올 나의 죽음을 상상해보았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나의 존재 가치를 대단하게 여겨본 적이 없었다. 감히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삶을 스스로 선택한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감히 이곳에 던져졌기에 묵묵히 그 삶을 감내할 뿐이었다. 그건 삶이 내게 준 형벌이었고 나는 온몸으로 그 형벌을 짊어져야만 했다. 내가 결정할 수 없었던 그 일에 대해 원망해본 적도 없었다. 그건 온전히 나의 몫이어야만 했다. 원망하면 할수록 더더욱 형벌의 무게에 짓눌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온전히 모든 잘못을 나에게 돌리는 쪽을 택했다. 내가 없으면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와 동생이 짊어질 형벌의 무게가 더욱 커질 것이다. 이글거리는 고통을 차마 토해내지 못하고 품고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나는 걸, 견딜 수가 없었다.
터널을 지날 땐 숨을 참았다. 언젠가 어릴 적에 터널을 다 지날 때까지 숨을 참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숨을 참고 눈을 감고 터널이 끝나길 기다리며 하염없이 소원을 되뇌었다. 언젠가는 이 터널이 끝날 것을, 끝나고야 말 것을 나는 알았다.
터널을 지나고 눈을 뜨자 차창 밖으로 비가 내리는 게 보였다. 나는 떠오르는 지난 기억에 몸을 맡겼다. 공연장에서는 한창 악극이 진행 중이었다. 나는 카운터에서 멍하니 통유리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빗방울이 낙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에 닿은 빗방울들은 잠시 위로 솟구쳐 오르는 듯했지만 이내 땅으로 떨어져 그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고스란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고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 가족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천천히 낙하하는 수만 개의 빗방울들이 아스팔트를 적시던 그날 공연장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것은. 명품가방을 둘러멘 손님들을 맞으며 그보다 두 세 단계 아래의 브랜드 가방을 둘러맨 동료들의 시기 어린 욕망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일당을 모아 다음 달엔 꼭 프라다를 사고 말겠다는 그녀들의 무리에서 떨어진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듯하지만 사실은 한없는 밑바닥에서 발버둥 치는, 아르바이트생들을 부리고 그들을 비웃는 것에서 기쁨을 맛보는 매니저의 형편없는 감정 기복으로부터 헤어난 것은. 주위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낙하하고 또 낙하할 뿐, 그뿐이었다. 자칫 솟아오르는 것 같지만 다시금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닥을 치는 자의 기분은 바닥을 치는 이만이 알 수 있다. 그가 아니고선, 영영 알 수 없고 누구 하나 알려고 들지도 않을 것이다.
끝없는 밤의 바닥을 밟아 보았다. 그곳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서울의 공기를 묻힌 채로 밤의 택시에 몸을 실었다. 기사는 한 번 흘깃 쳐다보더니 묵묵히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의 남루한 피곤을 감지한 듯 보였다. 휴대전화를 들어 엄마의 번호를 눌렀다. 늙어가는 엄마가 새벽의 고단함과 반가움이 한데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무사히 고향에 도착했으며 10여 분 후면 집에서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엄마는 무엇이 그리 좋고 기쁜지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미 잠자리에 들 시간을 지나 몸을 가누기가 힘들 터인데도 객지에서 돌아온 딸 앞에선 그런 티를 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는 느낌이었다.
가련한 여인. 엄마의 삶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밤의 택시에서 잘 아는 노래 한 곡이 흘러나왔다. 노래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투명하게 몸을 감쌌고, 그러자 심장에 자리 잡은 포도덩굴이 사납게 자라고 있음이 느껴졌다. 진심이 담겨서 나의 마음이 전해진다며 가끔 흥얼거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고향의 밤은 어두웠고 고요했고 그리고 한없이 아팠다. 오래된 테이프 속에 그때의 내가 참 부러워서 그리워서 울다가 웃다가 그저 하염없이 이 노랠 듣고만 있게 돼 바보처럼. 기사에게 현금을 지불했고 잔돈은 거절했다. 안녕히 가라는 인사를 건네고 택시 문을 닫으며 그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향의 밤하늘엔 놀랍게도 별이 떠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엄마가 기쁜 얼굴로 뛰어나왔다. 엄마의 얼굴은 지지난 달 설에 봤을 때보다 더 부어 있었다. 오랜 우울증으로 인한 불면과 그로 인한 약물 중독으로 엄마의 몸은 나날이 쇠약해져가고 있었다. 퉁퉁 부은 엄마를 끌어안았다. 포도덩굴의 가시가 너의 심장을 찌르는 듯 가슴팍이 따끔거렸다. 엄마의 부은 얼굴을 쓰다듬어 보았다.
"얼굴은 또 왜 이렇게 부었어? 병원에서 또 약을 바꾼 거야?"
높낮이가 없는 네 물음이 엄마에게 가 닿았으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엄마는 그저 내 손에 당신의 얼굴을 맡긴 채 해사하게 웃을 뿐이었다.
엄마의 눈동자를 바라보니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현실은 이곳이다. 엄마가 있는 바로 여기다. 나는 앞으로도 이곳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설사 몸은 이곳과 멀어진다 하여도 허공중의 바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내 발을 이곳에 묶어둘 것이다. 그 뿌리는 너무도 단단해 내가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나를 더욱 깊게 박아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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