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우울한 시대에 산다는 것

- 우울, 엄마의 그림자 feat. 어버이날

by 김뭉치
이 세상에는 거짓 우울도 있는 법이야. 니나는 계속했다. 언니는 사람들의 눈을 보아야만 해. 많은 사람들에게 우울은 겉으로만 그럴 뿐이고 어떤 의도 내지 센티멘털리즘의 표시일 뿐이야. 정말로 우울이 깃들인 눈에는 활기, 집중, 분주함 같은 것들이 있지. 그러나 이것은 무대의 막일 뿐이야. 그 뒤에 무대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해. 그런데 간혹 가다 막이 올려지면 사람들은 뒤가 어둡다는 것과, 거기에 한 사람이 아무 희망도 아무 분노도 없이 앉아 있고, 누군가 그에게 다가가서 그를 좀 더 좋은 세계로 데려가려 하면 그가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거야. 그는 좀 더 좋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거야. 그는 이미 우울에 중독된 거야. 그가 언니에게 웃고, 마치 언니를 믿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언니와 같이 가기 위해 일어서지는 않아.
-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65쪽~66쪽


엄마는 우울했다. 엄마가 신경정신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게 내가 아홉 살 때쯤이었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입원을 고려했을 정도로 치료를 받았으니 엄마의 우울증은 20년 넘게 묵혀온 것이었다. 엄마의 우울에는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남으로써 받은 냉대와 장애에 대한 멸시, 시골 여성으로서 당한 노동력 착취와 아내이자 며느리, 엄마로서 받은 폭력이 기저에 도사리고 있었다. 거기에 가난이 디폴트로 얹어져 엄마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회적으로 최약자의 삶만을 살다 갔다.


엄마는 자존감이 낮았다. 오랜 냉대와 멸시, 모욕들이 엄마를 그리 만들었다. 엄마는 모든 일에 자신이 없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보기엔 엄마가 정말 잘하는 일임에도 엄마 스스로는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있을 리 없잖아, 가 보통의 엄마 반응이었다. 엄마가 움츠리고 고개를 숙일 때마다 내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엄마는 최고야. 엄마는 예뻐. 엄마가 한 음식은 다 맛있어. 엄마처럼 깔끔한 사람은 없을 거야. 엄마처럼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라는 칭찬은 엄마에게 가 닿지 못했다.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우울은 많이 옅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이렇게 엄마를 사랑하는데, 외할머니도 엄마를 그리 사랑했다는데 우리 엄마의 우울이 나날이 짙어만 가는 이유는 뭘까. 매일 밤 고민했다.


엄마는 아름답고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줄 알았고 심성이 착했다. 요리를 잘했고 부지런했으며 살뜰하게 가정의 대소사를 책임졌다. 그럼에도 엄마는 엄마의 일을 일로서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건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업주부의 일이란 티가 나지 않았고 우리는 모두 밖에서 일 안 하는 엄마가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의 우울을 머리로만 받아들였다. 어쩌면 나는 엄마가 우울할 수 있음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걸 수도 있다. 엄마인데, 나의 엄마인데, 나를 낳은 사람인데 엄마가 어찌 불안하고 불안정한 존재일 수 있는지, 생생하게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부모란 원래 산처럼 든든하게 자식 뒤에 우뚝 선 존재 아니던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대단히 큰 잘못이었고 내가 엄마라는 타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엄마의 고통을 전혀 나눠 짊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엄마도 나의 엄마가 된 게 처음이었다. 자기 자신의 삶을 포기해가면서까지 엄마가 떠맡았던 엄마 노릇이란 건 그리도 부서지기 쉬운 것이었다.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약점을 드러내고 서로의 약점을 보듬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의 좋은 엄마였듯이 나도 엄마에게 좋은 딸일 거라 생각했다. 엄마가 날 보며 웃었기에 나를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 속 니나의 말처럼 엄마는 나와 같이 가기 위해 일어서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민 나의 손이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가슴 아프게 깨닫는다. 엄마가 떠난 뒤에야 나는, 비로소 엄마를 알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음을 인정한 셈이다.


모두가 우울한 시대. 이러한 시대를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우울을 안고 살아가던 엄마의 가만한 뒷모습을 그려본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진정으로 온기 가득한 손을 내밀고 엄마의 어깨를 마사지하고 싶다. 지금껏 엄마 어깨에 붙은 우울을 떼어 내려고만 했으니 이젠 그 우울을 감싸 안아 뭉치고 싶다. "엄마, 내일을 생각해야지. 오늘의 우울은 떨쳐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야지"가 아닌, "엄마, 오늘도 많이 힘들었지? 우리 엄마, 얼마나 힘들었을까?"의 나날들. 질책이나 조언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으로 다가가는 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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