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뇌

by 김뭉치

어린 시절, 좋아하는 책과 함께 보낸 나날만큼... 충만한 시간은 아마 없는 것 같다. 다른 이들에게는 소일거리였지만, 아니 그렇게 보였지만 우리는 지고한 쾌락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물리쳐 버렸던 모든 것들: 흥미진진한 대목에서 친구가 찾아와 함께 하자고 조르던 놀이, 책장에서 눈을 떼거나 자세를 바꿀 수밖에 없도록 귀찮게 훼방을 놓던 꿀벌이나 햇살, 어쩔 수 없이 가져오기는 했지만 머리위에 펼쳐진 푸른 하늘에서 해가 뉘엿뉘엿 빛을 잃어갈 때까지 손도 대지 않은 채 벤치 옆자리에 내버려 두었던 오후의 간식, 집에 돌아가 식탁 앞에 앉았지만 어서 빨리 식사를 마치고 되돌아가 읽다 만 장을 마저 끝내고 싶다는 생각에만 골똘해 있던 저녁식사 시간, 이 모든 것에 대해 독서로 인해 성가시다는 느낌 외에 다른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법한데, 오히려 반대로 그들에 대해 너무나도 달콤한(지금 생각해 보면 그토록 애착을 가지고 읽었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기억이 우리 안에 아로새겨져 오늘날 예전에 읽었던 책을 들춰 보게 되는 건 그것들이 다름 아니라 사라져 버린 날에 대해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기록이기 때문이며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거처와 연못의 그림자가 그 책장 위에 비치는 것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 pp. 19-20


모두에게 진실을 말하라. 그러나 비스듬히 말하라- / 성공은 회로에 있으니

- 에밀리 디킨슨, p. 31


나는 내 아이들이 살고 있는 구글(Google) 세상을 바라보면서 독서의 이런 독특한 측면에 대해 적지 않은 관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순식간에 나타나는 컴퓨터 텍스트로 옮겨가면서 독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건설적 요소가 변화하고 위축되기 시작하는 것 아닐까? 다시 말해서, 디지털 텍스트가 대부분 그러하듯 겉모습만 완벽한 시각 정보가 동시다발적으로 제시될 때 과연 그 정보를 보다 추론적, 분석적, 비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동기가 생겨날까?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독서 행위는 획기적으로 다른 것일까? 기본적인 시각, 언어 프로세스는 동일하게 보이지만 시간을 소요하고 증거를 제시하며 분석을 행하는 창조적 이해의 측면은 축소되어 버리는 것 아닐까? 아니면 오히려 하이퍼링크 된 텍스트를 통해 잠재적 추가 정보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의 사고 발달에 도움이 될까? 아이들이 멀티태스킹을 수행하고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정보 흡수 능력을 키워 나가더라도 그들 안에 독서의 건설적인 차원은 유지될 수 있는 것일까? 다양한 정보 처리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텍스트가 제시되는 다양한 방식에 따라 그것을 읽는 방법을 명시적으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 p. 32


이 책의 취지는 문화적, 역사적인 것이라기보다 생물학적, 인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독서의 생성적 역량과 사람의 뇌 안에 들어 있는 회로 배선의 근본적 성격인 가소성(plasticity)을 나란히 비교할 수 있다. 둘 다 주어진 것의 고유성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능력에서 비롯되는 풍부한 연상과 추론, 통찰을 통해 우리가 읽은 특정한 내용을 초월해 새로운 사고를 형성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유도된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인지적 도약이 가능한 뇌의 역량을 반영하는 동시에 재현해 낸다고 하겠다.

- pp. 33-34


작가의 지혜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지혜가 시작된다는 것이 사뭇 사실이라고 느껴진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욕망을 주는 것뿐인데 우리는 작가가 답을 가르쳐 주기를 기대한다. 그 욕망이란 작가의 지극한 예쑬적 노력으로 완성된 지고의 미를 관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안에 떠오를 수 있다. 그런데 진실은 그 누구에게서도 전수받을 수 없으며 오직 우리 스스로 창조해 내야 한다는 의미의... 법칙에 의해 그들의 지혜의 끝은 곧 우리의 지혜가 시작되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프루스트, p. 34


내가 누구를 위해 일했는가? 누구를 위해 먼 길을 여행했는가?

내가 누구를 위해 고생했는가? 나 자신을 위해서는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 시대를 초월한 인건의 조건을 묘사한 <<길가메시 서사시>>, p. 64


일본어 독서가들이 칸지를 읽을 때는 중국어 독서가들과 유사한 경로를 사용한다. 하지만 카나를 읽을 때는 알파벳을 읽는 사람과 훨씬 흡사하다. 다시 말해서 중국어 독서가와 영어 독서가가 서로 다른 경로를 사용할 뿐 아니라 같은 뇌라도 읽는 문자 체계에 따라 경로를 다르게 사용한다는 뜻이다. 당면한 상황에 맞춰 자체의 설계를 바꿀 수 있는 뇌의 경이적인 능력 덕분에 어떤 언어든 효율적으로 읽을 수 있다. 또한 효율성 자체는 '이것 아니면 저것' 식으로 선택해야 하는 이진법적인 기능이 아니다. 일본 학자들에 따르면 똑같은 단어라도 칸지보다 카나로 썼을 때 더 빨리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효율성은 알파벳만 유일하게 성취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 연속체로 개념화해야 적절하다.

- p. 95


따지고 보면 소크라테스는 독서를 겁내지 않았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지식의 과잉과 그로 인한 결과, 즉 피상적인 이해였다.

- pp. 112-113


첫 번째 아기가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을 때, 그 웃음이 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요정들이 탄생했다.

- p. 119


귀 질환이 유아의 언어 발달에 미치는 영향

귀 질환을 언제 얼마나 자주 앓았느냐에 따라 언어에 대한 온전한 음소 표상 레퍼토리가 아이 안에 제대로 형성되지 못할 수 있다. 이렇듯 귀 질환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독서 능력에서 가장 중요한 예비 단계인 어휘력 발달과 음운론적 인지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 p. 150


책 속에서 나는 다른 세상뿐 아니라 나 자신으로의 여행을 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열망하는지

그리고 나의 세계와 자신에 대해 감히 무엇을 꿈꿀 수 있는지 배웠다.

그렇지만 많은 시간,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 다른 차원에서 존재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깨어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잠이 든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책이 있었다.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았고 실제로도 자주 그러했던 일종의 평행 세계, 내가 비록 풋내기일지언정

완전히 이방인은 아니었던 세상, 진정한 진짜 나의 세상, 나의 완벽한 섬.

- 애너 퀸들런, p. 156


그 과정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조그만 아이에 불과했겠지만 나는 매일 같이 문학과 허구의 거장들을 만났다. 폴 버니언, 톰 소여, 럼펠스틸스킨,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 등이 월넛가에 사는 이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두 개의 평행 세계에 살기 시작했고 어디서든 내가 다르다거나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다. 이 경험은 훗날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

- p. 158


그러므로 독서할 때 일어나는 일을 완벽하게 분석하는 것이 심리학자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업적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가장 난해한 활동 가운데 대다수를 설명하는 일이며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문명이 습득한 가장 놀랍고 독특한 수행 능력의 얼키설키 뒤엉킨 사연을 풀어 내는 일이다.

- 에드먼드 휴이 경, p. 201


나중에 이 두 그룹이 60대가 되었을 때 브레인 스캔을 해 본 결과, 두 그룹 간의 차이가 훨씬 심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문맹 집단에 속한 사람의 뇌는 언어 과제를 (마치 그것이 암기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것처럼) 전두엽 영역에서 처리했지만 글을 깨우친 그룹 사람들은 측두엽의 언어 영역을 이용했다. 다시 말해서 거의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난 시골 사람들의 뇌가 문해 능력 여부에 따라 언어를 완전히 상이한 방법으로 처리했다는 뜻이다.

- p. 210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독서하는 뇌의 발달을 이해함으로써 난독증에 새로운 빛을 던져 줄 수도 있다. 두 가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보다 넓은 시야에서 인간의 지적 진화를 바라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독서라는 문화적 발명은 뇌의 경이적인 잠재력이 표현되는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p. 230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것을 거꾸로 놓고 그리는 것이 아닌가(그림 7-9)! 이유를 묻는 나에게 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대답했다. 연구를 하는 우리 중 그 누구도 현 수준의 지식 단계에서 그런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난독증의 역사와 신비 중에는 이미 알아 낸 사실도 많이 있지만 앞으로 밝혀 내야 할 것도 많다. 아직 완전하게 설명되지 안흔 문제 중에는 우뇌 우월형 독서 회로의 가능성이라는 도발적인 문제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남다른 벤의 공간 능력을 설명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 p. 206


만약 표현형이 여러 개 존재한다면 어떤 아이는 부모 양가로붜 난독증을 물려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아들 벤의 가계도 상에서 경미하든 명시적이든 난독증 유전 내력을 생각해 보면 벤과 동생인 데이빗은 오튼과 게슈윈드의 소견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데이빗은 글재주가 있고 축구에 열심이고 난독증이 없는 것으로 추측되지만 단어 인출과 서자 장애의 문제는 아무리 교정을 받아도 고쳐지지 않는다. 데이빗의 이러한 면모와 벤의 이중 결함은 양쪽 부모의 혈통에서 물려받은 유전자의 조합에서 파생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시아버지 에른스트 노암은 독일법을 공부한 유럽의 지식인이었지만 히틀러 치하에서 변호사 개업은 하지 못했다. 나의 시누이는 아버지가 4개 국어를 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학력으로 추정하건대 특정한 형태의 독서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외가쪽 고조부는 숫자와 문자를 너무나도 명백하게 뒤집어서 쓰는 버릇 때문에 인디애나 주 역사책에까지 그 일화가 소개될 정도였다. 남편 길과 내 형제자매, 사촌 및 조카들 모두 성공한 예술가, 엔지니어, 변호사, 사업가, 외과의사 등이지만 그 가운데는 경미하기도 하고 약간 심각하기도 한 학습 장애를 겪은 이들이 몇 명 있다.

- p. 281


모순적인 태도를 견지했던 플라톤과 달리 이 책의 관점은 두 가지다. 첫째, 나는 독서하는 뇌가 우리의 지적 능력의 레퍼토리에 공헌하는 데 대해 열정적으로 옹호한다. 둘째, 앞으로 등장할 재편성된 뇌의 형성에는 테크놀로지의 변화가 일조할 것이다. 나는 그 변화에 기여하는 참여자인 동시에 그것을 주의 깊게 감시하는 관찰자다.

- p. 307


아카드인 서기 옆에서 끈기 있게 쐐기문자를 바꿔 쓰던 수메르인 서기의 모습을 담은 기원전 600년경의 인상적인 그림처럼 아마 우리도 두 가지 시스템의 역량을 모두 유지한 채 둘 다 소중한 이유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 p.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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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행다』 북토크가 7월 25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성산동 골목서점 조은이책에서 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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