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at. 내 생의 감칠맛, 나의 어머니
이번 생일엔 자정부터 기분이 묘했다. 엄마 없이 맞는 두 번째 생일이다. 첫 번째 생일은 엄마가 돌아가신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찾아왔기에 어물쩍 지나갔다. 당시에도 분명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었겠지만 그저 깜깜할 뿐,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당시의 나의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았으므로. 엄마 없는 일 년 하고도 한 달을, 나는 사는 듯 살지 않는 듯 그저 버텨왔을 뿐이니까.
생일날 자정에 나는 늘 엄마에게 낳아줘서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고 퇴근 후엔 살가운 통화를 나누었다. 그게 나의 생일 연례의식이었다. 생일날 엄마를 떠올리면 나는 백 배쯤 더 행복해졌다. 떨어져 있지만 않다면 엄마를 한껏 껴안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내가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 엄마가 없다. 황망했다. 엄마가 떠나고 일 년 여 동안 하루하루의 시간을 무너지지 않고 잘 견뎌왔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문득문득 찾아드는 엄마라는 뜨거움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본래 생일날 먹는 미역국은 생일자를 위한 게 아니라, '생일'이 있게 만들어 준 부모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시엄마였다. 어쩌면 당연할 그 사실을, 미역국의 기원을 나는 너무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 불린 미역에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넣고 달달 볶아 미리 양념해둔 소고기를 넣고 몇 시간이고 푹푹 끓인 엄마표 미역국을, 나는 좋아한다. 오래 끓일수록 국물의 풍미는 더해지고 미역은 보들보들해져 보양식이 된다고, 엄마는 말했다. 마치 당신이 우리를 키워낸 방식같이.
살면서 딱 한 번, 엄마에게 미역국을 대접한 일이 있다. 열일곱의 내 생일이었다. 본수업이 끝나고 야자를 하기 직전에 저녁을 먹는 시간으로 주어진 한 시간이 있었다. 그때에 나는 집으로 달음질쳐 엄마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놓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편지와 함께.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엄마는 그때 그 미역국 얘기를 즐겨 하곤 했다. 엄마를 위해 처음으로 끓인 미역국이 간편식으로 나온 인스턴트 미역국이었음에도 그랬다. 결국 엄마가 좋아하던 것들은 삶의 소소한 한 부분이었는데 이 또한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산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더 큰일, 그러니까 대형 이벤트로 엄마를 기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엄마를 기쁘게 하는 일은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던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맞은 두 번째 생일, 나는 미역국을 끓였다. "산모가 첫 국밥을 먹기 전에 산모 방의 서남쪽을 깨끗이 치운 뒤 쌀밥과 미역국 세 그릇씩 장만해 삼신상을 차려 바쳤는데, 여기에 놓았던 밥과 국을 산모가 모두 먹었다"고 쓴 이능화의 『조선여속고』를 떠올리며 찬물에 미역을 불렸다. 찬물에 미역을 헹굴 때마다 여성들의, 엄마들의 오랜 역사가 부풀었다. 아들을 낳지 못해 나를 낳고도 제대로 미역국을 먹지 못한 나의 엄마를 생각하며 미역을 볶았다. 훅 끼쳐오는 이 고소한 냄새를 아이 낳고 고단할 때 미처 맡지 못해 엄마의 한 생(生)이 비어 있진 않았을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종종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엄마 냄새와 어우러지고 그 엄마 냄새의 팔할은 엄마가 만들어 먹인 음식 냄새가 차지한다. 그것은 엄마라는 마술사가 키워낸 푸근한 가정의 냄새, 온 가족의 피를 돌게 하고 살을 찌워냈던 엄마가 만든 음식의 마법이었다.
맛술과 참기름, 국간장과 다진 마늘, 후추를 넣고 밑간한 소고기를 달달 볶았다. 엄마는 고기를 좋아했었다. 그러나 고기를 먹는 것보다 고기를 굽는 것이 엄마의 몫이었다. 소고기와 함께 불린 미역을 코팅하듯 한 번 더 볶고 물을 넣어 뭉근하게 국을 끓였다. 국물에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우러나왔다. 하지만 끝내 엄마 없는 나의 삶처럼 밍밍한 국물 맛. 나의 생(生)에 감칠맛을 내주던 엄마와도 같은 액젓과 소금을 넣어 끓이자 비로소 깊은맛이 살아났다.
"잘 먹겠습니다."
테이블매트에 소담하게 올린 미역국 한 그릇이 정갈하다. 생일자인 내가 아니라 오십여 년의 전 생애를 안간힘으로 버티며 두 딸을 키워낸, 나의 엄마를 위한 미역국.
그날 꿈엔 오랜만에 엄마가 나왔다. 식당에서 미역국을 먹고 있는 엄마를 유리로 된 파티션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가 지켜보고 있었다. 뜨끈하게 목으로 넘어가는 한 숟갈. 세상 모든 딸들이 엄마를 위한 따끈한 미역국 한 그릇을 내어야 할 이유.
그러나 암만 해도 나의 미역국은 엄마가 끓인 그것만 못하다. 그녀와 마주 앉아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 나누어 먹을 수만 있다면.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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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