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
히틀러의 고위관료는 빌헬름 치겔마이어라고 하는 영양학자를 불러들여 레닌그라드 식량 상황을 논의했다. (중략) 영양학자는 도시에 갇힌 250만 명이 대거 죽는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을 계산하여 제출했다. 모두가 그의 명료함과 통찰력에 감탄했다. 히틀러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수고스럽게 레닌그라드의 항복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과학적인 방법으로 도시를 파괴해야 한다.
- 284쪽
역사상 가장 긴 포위전으로 기록되는 총 872일간의 레닌그라드 봉쇄작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41년 10월 초, 3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먹을 식량이 단 20일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삶은 가장 원시적인 수준으로 떨어졌고, 레닌그라드 전체가 먹을 것을 찾으려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새, 개, 고양이를 잡고, 의약품을 먹고, 아교와 가죽으로 수프를 만들었다. 굶주림은 새로운 도덕률을 만들어냈고, 극단적인 상황은 인간과 ‘그 이하’를 가려냈다. 소비에트 시기 내내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던 ‘식인 행위’를 둘러싼 끔찍한 이야기들은 2002년 비밀경찰의 비공개 아카이브가 공개되면서 마침내 외부로 알려졌다.
1941년 12월의 첫 열흘 동안 9명이 식인으로 체포되었다. 두 달 뒤에는 그 수가 311명으로 훌쩍 뛰었다. 1년 뒤에 시체를 먹거나 사람을 사냥하다가 체포된 사람을 집계한 수가 2015건이었다
- 382쪽
이 오싹한 통계 자료들에도 덧붙여야 할 각주가 있다. 레닌그라드 봉쇄 작전의 “생명정치적(biopolitical) 차원”이 그것이다. 앤더슨이 이 용어를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푸코가 말한 생명정치의 그림자는 이 책 전체에 드리워져 있다. 본질적으로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살 자격이 있는’ 존재와 ‘그렇지 못한’ 존재를 구분하고, 그에 근거해 인구의 생명에 직접 개입할 것을 결정하는 권력의 작동방식이다.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것이 즉흥적으로 결정된 단순한 야만적 행위가 아니라 고도의 합리성, 다시 말해 인간 신체의 영양학적 측면에 대한 주도면밀한 연구에 의해 뒷받침된 “잘 조직된 굶주림(well organized hunger)”이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이것이 (일찍이 아감벤이 지적했던) 나치 권력의 본질적 특성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명을 대상으로 한 전면적인 통제와 실험, 곧 “예외상태”에 근거를 둔 생명정치식 통치의 기술은 무려 250만 명의 시민에게 872일 동안 ‘식량배급’을 실시했던 소비에트 지도부의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굴라크'라 불리는 강제수용소의 관리 경험은 엄격하게 차등화된 배급제에 영향을 주었는데, 가령 “군인과 산업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받았고, 사무 노동자는 4분의 3, 그리고 ‘딸린 사람 – 아이들, 부상자, 노인 – 은 절반만 받았다”(288쪽).
(중략)
그나마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다음과 같다. 1942년 8월 9일 저녁, “죽은 자들의 도시 레닌그라드”에서, 7번 교향곡 실황 연주를 들은 한 여성이 “이것은 우리가 함께 겪은 진짜 교향곡이었습니다. 우리의 교향곡, 레닌그라드 주민들의 교향곡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분명 그것은 여하한 정치적 해석이나 암호를 넘어서는 음악적 사건에 해당했다. 어쩌면 이것이 재차 알려주는 예술의 비밀은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한 나라의 비밀 일기가 된 것은 그가 음악 속에 넣은 것 때문만이 아니라 청자들이 음악에서 끌어낸 것도 요인이다”(487쪽). 예술은 언제나 그 자신보다 더 크며, 그럴 때라야 비로소 예술이 된다.
- 김수환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에 붙이는 각주 」
원고 전문은 2019년 7월 20일 이후 <기획회의> 492호 '어메이징 예술책장 14'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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