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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Jul 02. 2018

엘리베이터에 19일 동안  갇혔던 남자

-  건물주 갑질의 끝을 보여주다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은 집을 보러 갔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한 남자의 이야기다. 잘나가는 광고기획자로 상승세를 달리던 샤를은 정지한 엘리베이터에 갇혀 끝없이 하강하는 고통을 맛본다. 비록 그가 장식하는 걸 좀 즐겼거니와 현실은 그 장식의 대가로 엄청난 걸 요구한다.      



* 여기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샤를이 장식의 피해자로 감전사하기까지 샤를의 처지는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의 불행은 애초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는 데 있다. “그가 울부짖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접니까? 네? 왜 나죠? 당신이 불행하다는 건 이해합니다. 당신이 분풀이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도요. 하지만 왜 날, 나를 갖고 이러냐고요!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이 아저씨가 아무 짓도 안 하셨다네! 그런데 그걸 자랑이라고 하는 거예요! 참 대단하시구먼……! 남을 위해 아무 일도 해본 적 없으면서 이제 와서 남이 자기를 위해 뭘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다니!」“ 김영하 작가는 ‘나는 누구인가’ 끊임없이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샤를이 처한 곤경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앙리프레데리크 블랑은 자본주의 자체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인간들에 대해 신랄한 경고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는 샤를을 보고 깔깔거리게 만드는 작가의 태도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더 소름 끼치는 사실 한 가지는 끔찍한 자본주의 현실 아래에서는 결국 돈을 더 많이 가진 자가 웃게 된다는 것이다. 결말 부분, 마치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 아무 탓도 없다는 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구는 발메르 부인에게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건물주인 발메르 부인의 소위 갑질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다 끝내는 샤를을 죽음에까지 몰아넣는다. 그러나 이 악귀와도 같은 건물주는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이며 악마적인 캐릭터라 단연 작품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이 책은 상징으로 가득 찬 소설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그 상징들이 대개 직유로 짜여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인 소통의 부재와 오해를 드러내기 위해 파출부, 집배원, 흑인 등이 동원되지만 어딘가 전형적이고 작위적인 데가 있다. 게다가 왜 파출부는 이민자 출신이어야 하는지, 요리사는 왜 흑인이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전형성으로 인해 이 작품이 연극으로 공연된다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미셸 우엘벡의 『투쟁 영역의 확장』에 이어 두 권째 읽는 블루컬렉션인데 두 권 모두 현대사회의 병폐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하고 있어 놀랐다. 다른 시리즈들도 이러한 주제 의식 하에 묶여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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