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몽상록

8월 셋째 주

by 김뭉치

2020년 8월 10일 월요일

새벽 세 시부터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일어나야 할 시간은 새벽 다섯 시였다. 두 시간 남짓 나는 뒤척였고 아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꿈도 없었지만 잠도 없었던, 곤혹스러운 한 주의 시작이었다.


2020년 8월 11일 화요일

침대에 누워 우리 세 사람은 잠이 들어 있었다. 제일 먼저 일어난 건 엄마였다. 엄마는 우르르 쏟아지는 빗줄기의 소리 가운데에서도 어떤 부스럭거림을 감지했다. 뒤이어 눈을 뜬 건 나였다. 왼쪽에 누운 엄마를 쳐다보았더니 엄마가 큰 눈을 감았다 떴다. 엄마의 겁에 질린 표정을 보고 무언가 감지한 나는 베란다를 쳐다봤다. 세상이 끝날 것처럼 내리는 폭우, 그 세찬 소리 가운데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와중에도 이러다 집이 무너지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상의는 탈의하고 사각팬티만 입은 남자가 살금살금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오른쪽에 누워 있는 남편을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하며 툭툭 쳤다. 남편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고 침입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나는 겁에 질려 나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소리쳤다.

- …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왼편에 누워 있던 남편이 놀라 일어났다. 침입의 꿈이었다. 내 목소리는 실제로도 발화되고 있었다. 누군가 들었다면 우리 집에 와 줄까. 밖에서 실제로 거세게 비가 내리치고 있었다. 새벽 네 시였다. 누군가 빗속을 뚫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서워서 호우 경보 뉴스를 찾아봤다. 출근할 수 있을까. 출근해야 할까. 꿈에서 처음 본 그 남자는 실제로 존재할까.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훑듯이 지나갔고 생각들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혔다. 나는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눈으로 다섯 시를 맞았다. 출근 준비를 시작할 시각이었다. 악몽의 끝과 시작. 뫼비우스 띠처럼. 되풀이. 반복의 노래. 빗소리.


2020년 8월 12일 수요일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을 봤다. 검은 화면에 텍스트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가끔 흑백의 인스타툰도 나왔다. 행복을 전시하는 피드는 아니었다. 오히려 다크한 본인의 감정을 내밀하게 파헤치는 쪽이었다. 텍스트들 사이의 여백이 크게 와 박혔다.


2020년 8월 13일 목요일

투명한 글라스가 빛나고 있었다. 쪼르르, 와인을 따랐다. 적색의 와인이 투명한 글라스의 3분의 1 정도를 채우고 있었다. 마셔 보니 깔끔했다. 투명한 글라스에 빛이 어룽져 크리스털처럼 빛났다.


2020년 8월 14일 금요일

서점엘 가서 책을 골랐다. 그곳은 마치 또 다른 세계, 또 다른 공간 같았다. 오래 서 있지 못하는 나이지만 그곳에서만큼은 언제까지고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선 채로 책장을 넘겼다. 글자들이 머릿속에 콕콕 박히는 듯했다.


2020년 8월 15일 토요일

글방에 참여했다. 시작 전, 참석자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야 한다고 했다. 내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손가락이 마음대로 숫자를 썼다. 결국 전혀 다른 휴대전화 번호를 적고 말았다. 잘못 적었어요, 라고 다시 적을 수 있을까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입은 떼지지 않았고 잘못 적은 휴대전화 번호만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2020년 8월 16일 일요일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복도식 아파트였다. 언젠가 본 영화 <불신지옥>의 아파트와 구조가 비슷했다. 현관문을 열면 왼쪽에 보이는 방에 작은 상 하나를 두고 우리는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의 남편이 와서 친구에게 왜 손님맞이를 이렇게 하냐고 웃으며 말했다. 큰방을 놔두고 작은방에서 왜 이러냐, 하며 친구의 남편은 이것저것 음식을 내 오고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친구와 친구 남편은 결혼 초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그만 안심이 돼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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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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