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의 자서전

by 김뭉치

삶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지루함이고 지루함을 피하는 것이 인생의 과업이다.




형용사란 무엇인가? 명사는 세상을 이름 짓는다. 동사는 이름을 움직이게 한다. 형용사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다. 형용사(adjective, 그리스어로는 epitheton)는 그 자체가 '위에 놓인', '덧붙여진', '부가된', '수입된', '이질적인'이라는 형용적 의미이다. 형용사는 그저 부가물에 지나지 않는 듯하지만 다시 잘 보라. 이 수입된 작은 메커니즘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특정성 속에서 제자리에 머무르게 한다. 형용사는 존재의 걸쇠다.

물론 존재하는 것에는 몇 가지 상이한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호메로스 서사시의 세계에서는 존재가 안정적이고 특정성이 전통 속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다. 호메로스가 피를 언급할 때 피는 검다. 여자들이 등장할 때 여자들의 발목은 단아하거나 반짝거린다. 포세이돈은 늘 포세이돈의 푸른 눈썹을 지녔다. 신의 웃음은 억누를 수 없다. 인간의 다리는 빠르다. 바다는 지칠 줄 모른다. 죽음은 나쁘다. 겁쟁이의 간은 희다. 호메로스의 형용사구에서 용어의 선택은 고정적이다. 호메로스는 세상 만물에 그것의 가장 적절한 속성을 나타내는 고정적인 형용사를 붙여 서사적 소비를 한다. 호메로스적 방식에는 열정이 있는데, 어떤 종류의 열정인가?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말했다. "소비는 실체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기호에 대한 열정이다."

스테시코로스는 이 기호의 잔잔한 표면 아래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그 표면을 쉼 없이 연구했다. 표면은 그에게서 멀리 기울어졌다. 그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 표면이 멈췄다. '실체에 대한 열정'이 그 순간에 대한 훌륭한 묘사인 듯하다.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스테시로코스는 그 걸쇠들을 벗기기 시작했다.


- 앤 카슨, 『빨강의 자서전』, 민승남 옮김, 한겨레출판, 2016, pp.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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