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유혜연 작가님의 <유쾌한 착각 여왕>을 읽고
'유쾌한, 유머러스한, 유능한, 유순한, 유망한, 유식한, 유려한, 유복한'
우리 동네에는 '유'라는 글자와 찰떡같이 어울리는 '유'씨 성의 여사님이 사신다. 브런치스토리에서 '연글연글'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시는 유혜연 작가님이다. 최근 그녀가 <유쾌한 착각 여왕>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셨다.
연글연글 작가님과 나의 인연은 지난해 온라인 글쓰기 수업에서 시작되었다. 같은 도시, 내가 매일 산책하는 도보 거리에 사시는 유일한 한 분이었다.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내향형인 내게, 가까이에 브런치 작가님이 계시는 것이 '부담'과 '안도감'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연글연글 작가님이 먼저 연락 주셔서 둘만의 만남을 가졌다. 첫 만남에서 런치 뷔페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이 차이는 있어도 결이 맞고 응원해 주고 싶은 동네 언니 한 분이 생긴 느낌이었다. 작가님이 애지중지 9년간 키운 손녀와 큰딸 부부가 미국으로 이민 간 직후였다.
첫 만남 이후 작가님께 유독 마음이 쓰이고,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딸네를 이민 보낸 허전함이 얼마나 크실까?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나도 큰딸이었으며, 첫 손녀를 다이몬드보다 더 귀하게 돌봐주셨던 돌아가신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다음 만남에서 작가님은 여름 동안 카페에서 매일매일 글을 쓰면서 슬픔과 허전함을 다스리며 지내셨고, 마침내 여러 출판사에 투고도 하셨다는 고백을 하셨다. 작가님이 뜨거운 여름을 보낸 그 카페에서 추천해 주신 시그너처 라떼를 마시며 나는 안도했다.
'괜찮으시구나. 정말 씩씩하게 이겨내시는구나.'
투고가 출판으로 연결되기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시무룩한 하소연도, 마침내 고마운 출판사에서 연락을 주어 출간하게 되었다는 기쁨도 함께했기에, 작가님의 출간은 내게도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유쾌한 착각 여왕>은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유쾌한 착각 여왕>은 총 4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님은 이 책에서 은퇴 부부의 생활, 손녀 육아, 가족 드라마, 자기 인생 성장까지 '착각'으로 버티며 웃으며 살아온 날들을, 젊은 할머니의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속내를 가감 없이 써내려 갔다.
'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가볍고, 조금은 뻔뻔한 착각 하나쯤 품어도 괜찮습니다. 때로는 그런 착각이 삶의 큰 파도에서 우리를 둥둥 띄워주는 부표가 되어 주니까요.' -프롤로그-
1장. 은퇴 부부의 동거 일기
사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어떤 매력적인 조건보다도 상대의 말을 버럭거리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참을성과 배려심이 훨씬 더 큰 가치로 다가온다. 그것만 지켜도 부부 사이가 한결 평화로워진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둘만 있으니, 증인도 없는데 서로 내가 옳다고 우겨봐야 답이 없다. 게다가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다 보면 정작 내가 하려던 말을 잊어버릴 것 같아서, 일단 말부터 꺼내고 보는 심보가 올라온다. 결국 말하고 있는 서로의 말을 덮어씌우느라 바쁘기만 하다. 그 지경이니 말한 사람은 있고 들은 사람은 없다.
그 시절, 우리에게 가장 부족했던 건 바로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한 '소통'이었다. p19
장을 보러 가는 길목에서도, 셀프 계산대 앞에서 분업할 때도, 키오스크 앞에서 하나의 렌즈처럼 머리를 모아야 할 때도, 핸드폰 약정 설명을 반씩 나눠 듣고 고개를 끄덕일 때도, 분리배출 요일마다 재활용 쓰레기를 나눠서 들고 나설 때도,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기댄다.
그리고 깨닫는다. 어쩔 수 없이 묶은 줄 알았던 우리의 삶이 실은, 세상에 하나뿐인 완벽한 세트였음을. p56
소통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맞대어 1+1으로 묶여 있어 더 빛나는 시절이 은퇴 이후라니,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멀지 않은 미래를 미리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래오래 1+1으로 묶어 다닐 수 있도록 남편과 나 둘 다 건강하자는 결심으로 주먹을 꼬옥 쥐어 본다.
2장. 손녀랑 할미랑
손녀를 돌보며 다시 딸을 키우는 듯한 마음이 들었고, 딸에게 미처 다 주지 못했던 마음까지 보태어 정성을 다해 하루하루를 대했다.
엄마였던 그 시절보다 더 노력했지만 그렇다고 완벽할 수는 없었다. 역시 육아는 다시 해도 여전히 매웠다. p118
슬픔은 물건을 타고도 찾아온다. 아주 천천히, 조용하게.
손녀의 흔적이 집 안 곳곳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툭하면 눈물이 터지는 나를 보며 눈치 없는 남편은 또 원론적인 소리를 꺼낸다.
"지금까지 애들이랑 그리 가깝게 지낸 게 오히려 드문 경우지. 다들 자식이랑 떨어져 살면서 그리워하잖아. 그동안 운 좋게 오래 같이 있었던 거야."
그걸 몰라서 슬퍼하겠냐고요. 언제 내 감정을 정리해 달랬어요? 그냥 하라방 책상 정리나 잘하시라고요. p115
손녀는 우리 가족의 작은 우주, 그 자체였다.
이제 그들이 꿈을 찾아 떠난 그곳에서 후회 없이 도전하고 가슴 뛰는 경험으로 새로운 삶을 채워가길 바란다.
나 역시, 통째로 주어진 이 시간 앞에서 아직은 낯설지만, 제2의 인생을 계획하며 우리 손녀에게 더 멋진 할미로 서고 싶다.
그리고 벌써부터 그리운 우리 손녀야.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될 날이 오면 기억해 주렴. 비록 사랑 표현은 날것 그대로였지만, 할미의 마음은 언제나 너에게 닿아 있었다는 걸. 그 시절의 웃음도, 눈물도 모두 너로 인해 반짝이던 시간들이었단다. p120
책 표지 한 PD님의 추천사처럼, 왜 이렇게 웃기고 찡한지 모르겠다. 자식을 키웠을 때 초보 엄마여서 후회했던 순간을, 베이비시터 자격증까지 따서 손녀를 잘 키우는 것으로 만회해 보려 했던 작가님. '가족의 작은 우주, 그 자체'였던 사랑스러운 손녀가 주는 행복은 9년간 지속되었고, 손녀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삶, 누군가의 이름 뒤에 서 있는 인생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무언가를 이루는 삶을 <유쾌한 착각 여왕> 이 책으로 이루어 내셨다.
3장. 가족, 내 삶의 합창단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은 내 여동생일 것이다.
그런 동생을 곁에 두었다는 사실은 내게 큰 행운이지만, 한편으로는 늘 동생의 속도에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앞선다. 동생이 있어 내 인생이 훨씬 더 따뜻하다. p172
부모 또한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노년이라는 낯선 계절 앞에서는 길을 잃고 비틀거릴 수 있는 한 사람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 시간을 다그치기보다, 묵묵히 함께 걸어드리는 것이 자식으로서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임을 나는 이제야 아프게 배운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술기운에 기대어 부르시던 그 노래처럼, 가슴 한구석에 지우지 못할 아픔을 품고 사셨던 나의 아버지. 이제는 모든 짐 내려놓으시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들과 만나 편안히 쉬시길 빌어본다. p182
두 딸과 사위, 손녀와의 웃음 가득한 에피소드들을 통해서도 작가님이 얼마나 따듯한 가정을 만들어 나가셨는지 보인다. 존경하는 부모님과 애정하는 동생들과 조카들까지,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의 언급에는 작가님의 애정이 묻어 있다. 가족을 달리 합창단으로 비유했을까?
내게도 내가 철들지 않아도 괜찮은 '언니 같은 동생'이 있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이 뒤늦거라도 하늘에 가 닿기를 바라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한다. 가족은 늘 곁에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 우리를 가장 깊게 울리고, 가장 부드럽게 다독인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완벽'보다 아름다운 것은 '함께'라는 것이며,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 중요한 합창단이다.
4장. 나는 이제 유쾌한 할머니를 꿈꾼다
시간은 조용히 말해준다. 꿈은 한 번 정해 평생 붙드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굽이마다 다시 쓰이고,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그래서 꿈은 과거가 아니라, 늘 '지금'에서 다시 시작된다.
열세 살의 나는 '현모양처'를 꿈꿨고, 중년의 나는 '나는 여기까지'라는 착각을 품고 살았지만, '지금의 나는 '세상과 소통하는 글 쓰는 할머니'를 꿈꾼다. p192
어느새 스무 해가 흘러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나는 손녀의 웃음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었다. 조금 일찍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덕분일까. 그때의 아픔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든 것 같다.
나는 이제 칠렐레 팔렐레를 즐기는 할머니, 그리고 나답게 사는 유쾌한 착각 여왕으로 살아가고 있다.
삶은 무겁게 움켜쥘수록 힘들다.
가볍게, 즐겁게, 칠렐레 팔렐레. p208
40대 어느 날 돌부리에 걸리듯 수술과 회복을 거치며 작가님은 세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첫째,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둘째, '착한 사람'이 되려는 오래된 착각을 벗고 유쾌한 착각 여왕으로 첫발을 내딛고, 셋째, '나를 위해 작은 용기를 내어 빛을 일부러라도 내 삶으로 끌어들였다.'
시련으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시작한 새로운 인생을, 작가님은 단순하고 즐겁게, 더욱 단단하게 채워간다. 유쾌한 착각으로, 칠렐레 팔렐레 정신으로.
유혜연 작가님의 신간 <유쾌한 착각 여왕>에는 슬픔 속에서 유머를 잃지 않고, 삶을 동글동글하게 빚어 내고야 마는 작가님의 진솔한 삶의 태도가 담겨 있다. 아이들에게 독서논술을 가르치며 유쾌하게 노년의 삶을 살아나가는 유능한 작가님의 첫 출간을 축하드리며,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어 보셨으면 좋겠다.
이 책은 은퇴 이후의 부부 생활이 궁금하신 분, 손주들을 키우고 계신 분, 부모님을 이해하고 싶은 분, 가족의 소중함에 공감하시는 분, 새로운 꿈을 꾸고 싶은 분, 삶의 '희로애락'을 책 한 권으로 만나고 싶은 모든 분들께 추천드린다. 무엇보다, '유머러스한' 글맛을 느끼고 싶은 작가들이라면, 후회하지 않으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