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
무언가를 탐하는 마음을 이미 가져버렸다면 사실, 돌이키는 것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이성을 앞세워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해도, 가지고 싶었던 것을 끝내 움켜지지 못했다는 좌절은 오롯이 남아 치유가 쉽지 않다. 실현되지 못한 욕망은 갈증을 동반한다. (갈증이 심하다고 사랑이 깊었던 것이라 헷갈리진 마시길.)
간절히 원해도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너무나 혹독한 길을 걸어와야 했던 한 남자가 있었다. 상투적이지만, 어느 날 문득 봄바람처럼 가볍고 팔락이는 모습으로 다가온 사랑에 좀체 열리지 않았던 마음의 어느 한 틈이 와르르 무너지며 그는 사랑에 빠졌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굳은 담장이 모두 허물어지며 기분 좋은 웃음과 기분 좋은 설렘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사랑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마음 역시 자연스레 받아들여 질 것이라 추호도 의심하지 않은 건 틀림없이 그 자신의 마음이 ‘순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순수하고 순정한 마음은 한 치 의심도 없이 섣불리 너무도 무모한 확신을 가져버렸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미 사랑이 있었다. 지금의 생에서도 그 후의 생에서도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할 거라는 그녀와 그녀의 남자. 그래서 남자가 혼자 품고 있던 사랑은 너무도 어이없이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녀의 남자는 처음엔 그녀를 제대로 알아봐 주지도 못했었다. 그렇게 억지를 쓴다. 자신의 사랑만이 진짜라고. 경쾌하게 팔락이던 마음은 절망하고, 기나긴 겨울로 들어서 얼어붙는다. 자신을 끊임없이 헐떡이게 할 뜨거운 불을 가슴에 품은 채로.
그는 스스로 얼어붙고, 그녀마저 얼려 곁에 두려 필사적이다. 질투와 절망과 후회가 뒤범벅이 되어 점점 자신도 어떤 결말에 이르러야 할지, 혼란만이 더해진다. 혼돈과 혼란만이 가득 찬 시간의 굴레는 좀체 끝이 보이지 않아 더 잔인하고 지긋지긋하다.
이제 사랑은 자신을 짓누르고, 외롭게 하고, 조금씩 피를 말린다. 그럼에도 차마 놓아 버리지 못하고, 어찌하지 못해 욕망했다. 얼마나 따스하고 달보드레하게 찾아왔던가를 잊지 못해 욕망했다. 그래서 그 남자는 어찌 되었던가. 그는 떨쳐 나왔다. 가벼이. 움켜쥐었던 주먹에서 툭- 힘을 뺐을 뿐이다.
한순간, 욕심을 놓았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