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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Dec 04. 2024

지난 노력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이번 연말은, 과거를 추억하지 맙시다!

올해 마지막 한 달. 마침내 12월 1일이 되니 이미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처럼 조급해진다. 오랜만에 집에서 캔맥주 2캔을 땄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이 거의 없는데, 11월 30일 늦은 저녁, 유난스럽게 씁쓸함이 몰려오는 바람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한 해를 보내는 것이 나만의 유별난 행사는 아니다. TV에서는 올해를 결산하는 시상식이 일찍이 시작되었고, SNS에는 ‘올해의 OO'라는 콘텐츠와 포스팅이 이미 넘쳐난다. 각자의 삶을 연간 보고서처럼 정리한 듯한 콘텐츠를 보다 보면 괜히 더 움츠러든다. ‘나는 올해 뭐 했지?’ ‘이 사람들은 뭘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가보고 하면서 한 해를 꽉꽉 채운 거지?’ 개인적 기록이라는 포장지 안에 숨겨진 자기 가시화에 진위를 따져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 세상 아닌가.


매년 연말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이런 콘텐츠들의 공통점은 지나간 것들의 회고를 통해 일말의 공로라도 끄집어내는 것이다. 모두가 잘 버텨냈고, 조금 아쉬워도 괜찮다는 위로와 함께. 그러니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12월은 자연스럽게 다들 잠시 뒤를 돌아 지나온 발자국을 따라 추억을 줍는 '감정 유예'의 시간쯤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특정한 시간에 매어 있는 지난한 감정을 풀지 못한다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점점 더 힘들 테니까. 누군가는 '올해의 OO'라는 기록을 하고, 누군가는 술에 기대어 묵혀둔 감정을 쏟아내고, 누군가는 나처럼 비뚤어진 마음으로 과거를 부정하고 있으려나.


지나온 발자국을 아무리 되짚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산다고 해도 인생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을까? 세상만사가 내가 뜻한 바대로 될 것 같았던 20대에도 내면은 불안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가진 것보다 부족한 게 더 많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남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30대가 되면 달라지려나. 드라마 주인공처럼 인생 역전은 아니더라도, 커리어의 괄목한 성과를 이뤄내고 경제적 자유를 얻어 원하는 것을 다 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허무맹랑한 기대감 없었더라면 버틸 수 있었을까? 최선의 선택과 노력은 언젠가 최고의 결과를 보장할 것이라는 신념을 감히 외면할 수 있었을까?


삼십 대의 끝자락까지 밀려오고 나서야 깨달은 게 있다. 그동안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는 것과 모든 노력이 좋은 결과를 보상하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이다. 사십 대의 문턱에서 내가 느끼는 어떤 허무함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아쉬움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다. 뒤늦은 현실 자각으로 그동안 나를 지탱해 온 순진한 신념과 노력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수록 일과 삶이 점점 더 버겁게 느껴지는 건 나 자신에 대한 높은 기준이 갈수록 더 많은 에너지와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노력을 할수록 약점은 끝도 없이 발견되는 법. 스스로 정한 높은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고 전전긍긍하는 삶은 점점 더 결과에 고립시켰다. 결국 지나온 노력들을 무의미하게 짓밟은 건 스스로를 외면하고 타인의 기준치에 나를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해 온 나 자신이었다는 걸 나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마치 고지점에 다다른 것처럼 마음의 긴장이 풀리고, 곧 시끌벅적한 캐럴과 폭죽과 덕담이 오가는 어수선한 연말연초 행사가 이어질 것이다. 두 번째 맥주캔을 비워갈 때쯤에 문득, 남은 한 달을 연말이 아닌 연초처럼 미리 시작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적당한 음주는 생각의 전환을 불러오네요!). 삼십 대의 끝자락이 아닌 사십 대의 출발을 앞둔 준비 기간으로, 올해는 '올해의 OO'를 끄집어내는 등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마흔을 준비하는 워밍업 기간으로 남은 12월을 보내려 한다. 이제는 완벽하지 않아도 만족하는 법을 익혀야 하고, 나의 약점과 실수를 직면하면서 덜 괴로워할 줄 알아야 한다. 확고하지 못한 욕망과 신념으로 자기부정에 빠지는 대신 나 자신과 원만한 합의점을 찾기로 한다. 무의미한 노력에 대한 의구심을 떨구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천천히 나아가는 인내심을 기를 때. 몸에도 마음에도, 40대에는 지금보다 더욱 많은 근육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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