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직도 내게 공무원이 되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밥벌이는 필요하다
"딸, 요즘 어떻게 지내. 통 연락이 없어"
"응 엄마 잘 지내지. 나 요즘 바빠"
"뭐 하길래. 뭔 일 있어?"
"나 요즘 다시 글 써"
"뭐라고? 아이고 무슨 또 글쟁이 타령이야. 니 나이에 무슨 다시 글을 쓴다고 그래"
"그냥 일단 제일 도전해 보고 싶었던 것부터 하다 보면 뭔가 풀리지 않을까 싶어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라니까. 엄마 친구 딸도 마흔 다돼서 공무원 돼가지고 요즘 학교행정실 출근하다더라. 애 키우면서 하기 딱이래. 너도 그런 거나 좀 해봐. 엄마가 계속 공무원 시험공부 준비하라고 그랬잖니"
"응 엄마 말도 맞는 데, 공무원은 아무래도 내 적성이 아닌 것 같아. 평생 생각해 본 적 없어"
"아직도 적성 타령이냐. 누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 애 키우면서 할 만한 일을 찾아야지. 아직도 철이 없어서 원. 답답하다 정말"
오랜만에 한 통화는 엄마의 한숨으로 끝이 났다. 나의 친정엄마는 오래전부터 내가 공무원이 되길 바랐다. 내가 드라마작가가 되겠다고 공부할 때도 끊임없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고 재촉했다. 드라마작가를 포기하고 직장에 다닐 때도, 결혼을 해서도 공무원 공부를 권유했다. 엄마의 뜻은 그랬다. 요즘은 여자들도 능력이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현실적으로 여자들에게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말이다. 엄마가 생각하기에는 공무원 말고는 도통 애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인 거다.
엄마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아이 키우는 엄마들 중에 뒤늦게 공무원 준비를 하는 엄마들이 상당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나마 덜 눈치 보는 환경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공무원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국가에서 시행하는 육아휴직, 아이 돌봄 제도 등을 보장받을 수 있지 않나. 물론 일부지만 월급이 적더라도 워라밸이 보장되는 일부 공무원직군의 경우 3040대 여성들의 응시율이 굉장히 높고, 실제로 뒤늦게 일을 시작한 엄마들이 많다. 현실적으로 엄마들에게는 높은 연봉이나 자신의 커리어를 쭉 성장시켜 나가기보다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된 직업이 필요한 것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애엄마인 내게 여전히 우리 엄마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한다. 이제는 백세시대고 살아가려면 여자든 남자든 안정적인 '밥벌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애 낳고 평생 전업주부로 살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정말 바보였다. 애가 커가니 '돈'도 필요하고, 꽁꽁 숨겨져 있던 내 자아도 꿈틀대기 시작한다. 사람은 일을 해야 했다. 그게 어떤 종류로든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써먹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여자들이 집안에서만 있던 시대는 끝이 보인다. 물론 애가 어리거나 다둥이 가정이라면 정말 집안일만 해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그분들은 상을 줘야 마땅하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제법 커서 환경이 변하기 시작하면 다시 직업 탐색을 하는 엄마들이 많아진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정말 교육비가 어마어마하고, 들어가는 돈이 많기 때문에 외벌이로는 힘에 부치지 시작한다. 하나둘씩 복직을 하거나 파트타임으로라도 일을 하는 엄마들이 많아진다. 또는 각종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하는 이들도 생겨난다.
애석하게도 기혼 여성의 밥벌이에는 분명 제약이 생긴다. 물론 엄청난 능력자에 주변에 애를 봐줄 누군가가 있고, 모든 환경이 받쳐주는 행운아라면 제외다. 그런 슈퍼우먼을 제외하고는 아이를 낳는 순간 포기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 일단 육아조력자가 필요하고, 야근이나 주말근무는 쥐약이다. 아이가 보육시설에 갈 수 있도록 아이가 자주 아파서도 안된다. 연봉이 조금 차이가 나더라도 근무시간이 짧거나 육아휴직, 연가 등에 자유로울 수 있는 직장 환경을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기혼 여성들이 경력단절이 될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살 생각이라면 자신의 밥벌이에 대해서 각오해야 한다. 기혼여성의 경력유지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15~54세 기혼여성 수는 약 810만 명이라고 한다. 이중 경력단절 여성(경단녀)은 약 140만 명으로 17.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한 창 경제활동을 해야 할 30대의 경단녀 비율이 42.9%에 달한다는 것이다. 출산, 육아로 인해 커리어는 중단되는 거다. 아이들이 제법 크고 나서야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점점 출산기피 현상도 두드러진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7명으로 전 세계 꼴찌 수준이라고 한다.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수가 0.7명이란 소리다. 인구절벽이 코앞이다. 많은 이들이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나는 그들을 옹호할 수 없어도 이해할 수는 있다. 나라도 만약 지금 미혼 상태라면 결혼도 출산도 상당히 고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만 봐도 실제로 미혼도 많고, 딩크족도 많다. 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이 환경에서는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도 안되고 육아로 인한 희생을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다는 의견들이 많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정말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딸이 있다면 그 아이가 커서 결혼은 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으라는 말은 못 할 것 같다. 그냥 본인의 선택에 맡길 것 같다. 사실 진짜 속마음은 출산하지 말고 본인 능력을 키우고 하고 싶은 거 하며 자유롭게 살라고 할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업을 확보했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에서라도 움직여야 한다. 아이는 금방 클 테고, 엄마도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개편할 시기가 온다. 구조적인 탓만 하기에는 현실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더 여성들이 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라보고 싶다. 육아, 출산으로 인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조금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