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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 Oct 21. 2023

이 결혼의 끝을 잡고   

이혼의 문턱에 서서 고군분투 중

결혼 10년 차, 나는 지금 남편과 이혼의 문턱에 서있다. 누구 하나 고약한 성질머리를 누구러 뜨리지 않는 다면, 툭하고 놓아질 인연의 다리를 건너고 있는 중인 거다. 이 결혼의 끝을 부여잡고, 우리 부부는 나름의 애를 쓰고 있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사랑하는 자식이라는 연결고리가 위태로운 우리 사이를 붙잡아 주고 있다.  


기혼자들 사이에서는 '3, 5 ,7... 홀수년도로 결혼 생활의 고비가 세게 온다'라고 하는 속설이 있다. 홀수년도도 아닌 데 나의 결혼 최대위기는 바로 지금이다. 10년간 켜켜이 쌓아온 남편과 나의 균열은 생각보다 컸다. 성격차이, 시댁과의 갈등, 육아가치관 차이 등 수많은 갈등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한 탓에 남편과 나는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언제나 행복하기만 한 결혼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혼만큼은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다. 주변에 하나둘 돌싱친구들이 생겨날 때도 나만은 예외인 줄 알았던 거다. 언제나 그렇듯 불행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그것을 간과한 것은 내 실수다.   


우리 부부의 가장 큰 문제는 '대화단절'이었다. 치열하게 싸우던 시절도 정작 이혼은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싸움을 피하고 싶어 소통하지 않았던 시간이 '이혼' 문턱까지 우리를 안내했다. 나와 남편은 여느 부부와 같이 뜨거운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서로 너무 좋아서 죽고 못살던 시절도 나름 있었다. 소박하게 시작한 결혼이었지만 전혀 부족하다고 느낄 새 없이 사랑이 샘솟았다. 깨 볶던 시절도 연애 2년, 신혼 2년 통합 4년이 지나니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원했지만 잦은 유산과 난임으로 나는 우울해지기 시작했고, 남편과의 갈등이 시작됐다. 아이를 준비하던 시절 남편과 정말 많이 싸웠는데, 그때부터 서로에게 함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는 '누가 더 상처주나' 내기하는 것처럼 싸움의 강도는 세졌다. 이후 10년 결혼을 유지하는 동안 크고 작은 소란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말 우리가 이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했다.


"우리가 아들만 아니면 살 이유가 있을까"


"그러게. 엄마, 아빠 역할이 아니면 우리 사이에 뭐가 남았을까 싶어"


"이렇게 사는 게 지옥 같아. 무엇을 위해 사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살자"


냉전 기간 3달 만에 물꼬를 튼 우리의 대화는 숨이 턱턱 막혔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조차 희미해져 가는 찰 나,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음을 확인했다. 이때 난 우리가 '정말 이혼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싸워도 하루이틀이면 화해하던 게 일주일이 됐다. 그러다 한 달이 되고 두세 달이 됐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자존심이 매우 센 타입이라 화해하는 게 참 어려웠다. 싸운 뒤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봉합하는 게 아니라 얼렁뚱땅 얼버무렸다. 건성으로 화해하다 보니 나중에는 서서히 마음을 닫고 말았다.


남편은 말했다. "어차피 또 싸울 거 화해해서 뭐 하냐"


우리는 그렇게 또 싸울게 무서워 입을 닫고 마음을 닫았다. 남편은 나가서 열심히 돈을 벌고 나는 얌전히 육아와 살림을 했다. 나중에는 그냥 냉전상태가 편해질 정도였다. 우리는 이미 '정서적 이혼상태'에 도달했던 거다.


나도 남편도 우리 결혼의 큰 위기를 인지했다. 그럼에도 수개월의 별거 아닌 별거기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나의 아이는 엄마, 아빠의 불화를 빨리 인지했다. 그리고 많이 고통스러워했다. 아이는 나와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했다. 분리불안은 심해졌고 앓고 있던 틱증상도 악화됐다. 희한하게도 그렇게 사랑하던 아빠는 찾지 않았다.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엄마, 우리 그럼 어디서 살아. 난 이 집 좋은 데 이사 가야 해? 내 장난감은?"


"나 할아버지랑은 살기 싫어."


"우리 돈은 누가 벌어? 우리 돈 있어?"


"나랑 잘 놀아주는 새아빠 만들어줘"


아이는 예상밖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몇 개월을 꾹꾹 참아오던 어느 날, 아이는 '아빠랑 엄마랑 같이 살고 싶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남편과 나는 고통받는 아이에게 죄스러웠고, 다시 한번 살아보기로 했다. 이번만큼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라 제대로 된 화해를 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정말 치열하게 서로에게 집중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후회 없이 살아보고 그래도 안되면 이혼하자는 것에 동의했다. 아이가 있는 만큼 마지막까지 노력해 보자는 생각이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이 싸우고 힘들더라도 서로의 말을 끝까지 경청했다. 듣기  싫고 외면하고 싶은 시간도 같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대화가 아니라 논쟁이었지만 결국 조금씩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아이가 잠든 시간을 활용해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대화조차 힘들었지만 차츰 서로를 보며 웃기도 했다. 나중엔 어색하게 손도 꼭 잡고 따듯하게 안아줬다. 우리는 요즘 마치 연애하듯 살아보고 있다.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중이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여전히 의견차이도 종종 생기고 화나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이제는 대화를 단절시키는 것은 금기하고 있다. 대화단절만큼 관계를 망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노력하다 보니 미워죽겠던 남편에게서 10년 전 세상 둘도 없이 사랑하던 남자의 얼굴이 간혹 보이기도 한다. 나도 이제 내 맘을 알아달라고 슬퍼하기보단 남편도 '나 때문에 많이 힘들겠구나'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혼의 위기를 넘겨가며 깨달은 것은 결혼이란 노력 없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든 결혼할 수  있듯이 누구든 이혼할 수도 있다. 노력 없이 평탄한 결혼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내 오산이었다. 결혼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심과 이해심이 필요하다. 정말 결혼은 미친 짓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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