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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 Sep 10. 2023

아이가 아플 때, 엄마는 일시 '멈춤'

잠시 숨고를 시간이 왔다

요새 열심히 글을 썼다. 무언가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변하고 싶다는 욕망이 불어왔고 지금 당장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마음이 가장 컸다. 알량한 자존심도 구겨 넣고, 쓸데없는 두려움도 접어 뒀다. 스스로 부족함을 알기에 '내가 무슨 글을 쓰냐'라는 생각이 발목을 잡을 때도 많았다. 그냥 썼다. 지금은 어설프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쏟아내다 보면 되겠다 싶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는 더 다듬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잃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진리지 않는가.


뿌듯했다. 내가 무언가 간절히 하려는 의지를 가진 것이 얼마만이 던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게 '생기'란 게 생겼으니까. 브런치에 글을 쓰고, 내 글을 누군가 읽어 주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라이킷'하나에도 마냥 설레어했으니까. 내 어설픈 이야기를 누군가 공감해 주고 댓글이라도 남겨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요즘 브런치 알림이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식일 정도였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 놓고 운동, 청소 시간을 빼고는 열심히 썼다. 이렇게 글쓰기가 즐거운 일이었다니. 브런치에 감사할 따름이다. 내 이야기를 쓰고,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정말 즐거웠다.


최근에는 육퇴의 시간이 항상 무료했다. 아이를 재워 놓고 맞이하는 꿀 같은 시간에 무료하다니 이상했다.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며 넷플릭스를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었는 데 말이다. 요즘은 육퇴의 시간에 노트북을 킨다. 하얀 화면에 글자를 하나하나 새기는 일이 가슴을 뛰게 한다. 생각을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이 너무도 즐거웠다. 이토록 가슴 뛰는 일이 38세 아줌마에게도 생기다니. 생각해 보면 난 고작 서른여덟인데 인생이 끝나기라도 한 듯 우울해했다. 그래도 요즘 나는 '시작'이라는 것을 했고 조금이라도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좋다.


여느 때와 같이 육퇴 후 글쓰기에 몰두하다 보니 새벽 2시다. 내일 육아를 위해서는 더 가면 안 된다 싶어 서둘러 정리를 했다. 침실로 가서는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꼭 안았다. 이게 웬걸. 아이 몸이 불덩이다. 급히 체온계를 가져와 열을 재보니 어김없이 '빨간 불'이 뜬다. 하아, 망했다. 40도에 육박하는 아이 몸 군데군데를 살핀다. 축 늘어진 아이를 보니 '뇌정지'가 온다. 하필이면 남편도 당직이라 집에 혼자였다. 엄마가 된 지 몇 년 차인 데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면 그렇게 겁이 난다. 생각보다 아이들 몸상태는 급격하게 안 좋아지기 때문이다. 급하게 해열제를 먹이고 열보초를 서기 시작했다. 혹시나 응급실에 갈 수도 있으니 채비를 해놓으면서 쏟아지던 잠도 어느새 사라졌다. '제발, 아이 열만 내리게 해 주세요. 하나님.' 교인도 아닌 데 이럴 때만 하나님을 찾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다행히도 밤새 열경련이나 탈수증세 없이 지나갔다. 이만해도 감사하다. 여전히 고열에 시달렸기에 가까운 소아과 오픈을 기다려 병원으로 향했다. 대한민국에서 소아과 오픈런은 생각보다 치열하다. 오픈 전에 도착했음에도 아픈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 아빠들이 상당하다. 떡진 머리를 감추느라 모자를 푹 눌러쓴 추레한 모습들이 하나같이 묘한 동지애를 느끼게 해 준다. 축 쳐진 아이를 안고 있으니 힘에 부친다. 30킬로에 육박하는 아이가 늘어져 있으니 느껴지는 무게가 상당하다. 우리 아들이 그 사이 이렇게나 컸구나. 엄마, 아빠 닮아서 또래보다 월등한 체격을 가진 아이가 이럴 때는 좀 야속하다. 하지만 우리 순번이 될 때까지 오매불망 병원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J 들어오세요."


 정말 지칠 때쯤이면 우리 순번이 불린다. 부랴부랴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진료는 5분 컷. 전반적으로 아이 몸상태를 살피신다.


"수족구입니다."


제발 아니길 바란 것 중 하나였는 데.


"최소 일주일 이상은 유치원 등원 안되고요, 사람들하고 섞이면 안 됩니다. 전염력이 강한 상태예요. 엄마도 아플 수 있을 거예요. 지금 구토, 고열, 설사 있다고 하셨죠? 더 심해질 겁니다. 약 잘 챙겨드시고 3일 후 다시 와보세요."


여태껏 감기, 장염, 코로나 등 많은 질병들이 아이와 함께 했지만 나의 아이는 유독 '수족구'를 힘들어했다. 일단 입안에 수포가 가득해지니 밥을 못 먹기 때문이다. 사람이 못 먹는 고통은 생각보다 크다. 아이들은 특히나 더 힘들어한다. 식탐 많은 우리 아들이 벌써 걱정이다. 맙소사, 병원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속도 슥거린다. 설마 기분 탓이겠지. 야속하게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도 구토가 시작된다. 하아, 나도 시작이구나. 아이가 아픈데 엄마도 아프다니 정말 최악이다.


이번 수족구는 생각보다 여파가 컸다. 아이는 며칠을 고열에 시달렸고, 먹는 것을 많이 힘들어했다. 설상가상으로 나에게도 바이러스가 옮겨 와 총제적 난국이었다. 나도 아팠지만 나에겐 아플 자격이 없다. 엄마니까. 희한하게 아프면 아무것도 못하던 나였는 데, 열이 펄펄 끓어도 아이가 먹을 죽은 정성 들여 끓이고 있다. 이럴 땐 '나도 정말 엄마가 됐다' 싶다. 전염성이 강한 질환이라 유치원 등원도 못하고 양심상 집안에서 셀프 격리가 시작됐다. 사실 하루종일 아이와 놀아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이를 많이 사랑하더라도 말이다. 내 경험상 그렇다. 아침부터 레고, 블록, 그림 놀이 등 온갖 필살기를 꺼내 봐도 시계를 보면 오전 11시다. 지독하다. 누군가가 그랬다. 육아에서 귀찮음을 이겨내면 정말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그 '귀찮음'을 이겨내는 것이 제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시간은 갔다.


아팠던 덕에(?) 오랜만에 많은 시간 아이와 시간도 보내니 즐거움도 컸다. 그럼에도 일상은 내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해 적지 않은 스트레스도 받는 다. 세어보니 아이가 아픈 지 열흘 째다. 시간이 안 간다 싶었는 데 빨리도 갔구나. 열흘동안 이제 막 열정이 생겼던 글쓰기도 못하고, 운동도 못했다. 하루하루 잠들기에 바빴다. 아이가 아플 때면 엄마는 어김없이 '일시 멈춤'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곧 건강을 되찾고, 나도 내 일상을 찾는다. 일상이 일시 멈춤이 되면 오히려 깨닫는다. 건강한 몸이 감사하고, 내가 의지대로 하루를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말이다. '일시정지' 상태라면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나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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