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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쿡 Jul 03. 2024

아궁이와 푸세식 화장실, 그리고 이사

MZ가 들려주는 MZ는 모르는 집성촌 이야기 (1)

'S대 출신 알코올 중독자 K이야기'를 사랑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께 사랑받은 덕분에 포털 사이트 다음에 메인으로도 노출되었고, 브런치 앱에서는 요즘 뜨는 브런치북에 선정되어 계속 1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마다 연재하는 것으로 계획했던 것을 수정하여 주 2회로 연재 횟수를 늘리려고 합니다. 관심 가져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전 프롤로그를 보실 분들은 아래 첨부된 글을 따라서 이동하시어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길었던 프롤로그가 끝난 진짜 인생 이야기입니다.


프롤로그에서 들려드렸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며, 프롤로그가 너무 길어서 지루하셨다면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집성촌으로부터 시작해서 직장 생활까지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제가 어떻게 알코올 중독이 되었고, 공황 장애를 겪게 되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 풀어드리려고 합니다.


웃고, 즐기고, 신기한 그러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글로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나서 집성촌으로 가다.

우리 아버지는 수학교육과, 어머니는 영어교육과를 나오셨다. 교생 실습에서 만나신 두 분은 사랑에 빠졌고, 인물이 출중했던 아버지를 어머니가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에 골인했다. 


왜 서울에서 직장을 잡으셨는지 모르겠는데, 모종의 이유로(?) 선생님이 되길 포기한 두 분은 광명과 구로구 부근에서 서울살이를 시작하셨고, 나도 그러한 이유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태어났다고는 하는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1로 시작하는 걸로 봐서는 어디 경기도 굴다리에서 주워 왔나 싶다. 부모님과는 딴 판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 참고로 뒷자리가 1로 시작하면 남자고, 2면 여자다. 그리고 그다음 자리가 0이면 서울, 1이면 경기도다. 


이듬해 연년생인 내 여동생까지 태어나자 부모님은 뭐라도 더 해서 자식을 키워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안경 회사로 이직하셨고, 어머니는 내 이름을 딴 비디오방을 운영하셨다. 


그 당시 아버지는 판매왕에 오르기도 하셨다는데, 자식 생각하는 부모 마음이 얼마나 거룩한지 이제야 깨닫는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의 성격은 대쪽 같으셔서 부러질지언정 굽히지는 않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 어머니는 비디오방에 있는 비디오란 비디오는 다 보셨다고 한다.


내가 4살이 되던 무렵 부산에서 쌀장사를 하시던 할아버지의 사업이 망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심장판막증 때문에 원래 장애가 있으셨다. 그래서 더 이상 서울에서 살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신 부모님은 낙향을 결정했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내가 30대가 되고 나서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아버지는 이혼 후 나와 여동생, 어머니를 외가 쪽으로 보내고 혼자 촌으로 내려오려고 하셨단다.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렇게 집성촌으로 낙향한 우리 네 식구는 조부모님 집 옆에 시멘트로 된 단칸방이라고 할까? 그런 작은 집을 하나 만들어서 정착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집. 지금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개조했다. 이 사진은 개조할 당시의 사진이다.


당시 부모님은 어린 자식을 위해서 그 후미진 촌 동네에서도 2층 침대를 구입해 주셨고 나는 2층을, 여동생은 1층을 사용했다. 그리고 야광 별 스티커*로 천장을 꾸미기도 했다.


*고향에 내려가면 아직도 방에 스티커가 붙어 있는데, 신기하게도 야광이 살아있다. 도대체 그 시절 제품들은 왜 하나같이 내구성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옷이며 가구며 모든 게 30년은 쓰는 것 같다.



의식주 해결은 바깥에서

우리 집은 4명이 들어갈 방만 시멘트로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방 안에는 화장실도, 싱크대도, 수도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생활했을까.


먼저 밥은 할머니 집 주방에서 차려서 조부모님과 함께 먹었다. 할머니가 반신 마비로 인해 거동이 불편하셨기 때문에 어머니가 오롯이 할머니의 수발을 들었다. 손발톱도 깎아드리고, 옷도 입혀 드리고, 요강도 가져다 드리고, 밥도 해드렸다.


화장실은 집 바깥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했다. 소변을 보는 통이 있었고, 쭈그리고 대변을 볼 수 있는 작은 칸이 2개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 옆에는 똥바가지가 있었다. (긴 막대에 빨갛고 동그란 대야가 끝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줌통이 다 차면 비우고, 똥이 가득 차면 똥차를 불렀다. (이번에 검색해서 알았는데, ‘분뇨 수거차’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있더라.) 똥바가지까지 쓰기에는 우리 집이 제법 현대화되어 있었던 것 같다.


빨간색 통이 오줌통이고, 막대기가 똥바가지다. 좌측 뒤에 있는 것은 용도를 모르겠다.


뜨거운 물이 안 나왔기 때문에 농사일을 하고서 돌와와 씻을 때면 찬 물을 받아서 아궁이에서 불을 때서 물을 끓였다. 그 물과 찬물을 섞어서 미지근하게 만든 다음 씻었다. 겨울에 샤워를 해야 할 때면...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여름에는 시원했다. 등목 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던 아궁이. 지금은 쓰지 않는다.


내가 지금 영화 ‘허삼관*’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나는 정말로 이런 집성촌에서 살았고, 아무런 이상함도 느끼지 못했다. 주변이 모두 그랬으니까. 우리 집이 특별하게 못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촌이라 그랬다.


*하정우 배우가 감독과 주연을 모두 맡은 영화로 피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중국 장편소설 원작의 영화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는 하루에 5대 남짓이었고, 마을에는 ‘범죄 없는 마을’이라고 크게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구판장이라고 해서 구멍가게 하나가 있었는데, 동네 어르신이 과자를 쭉 늘어놓고 파셨다.


이런 느낌의 비석이었는데, 더 오래되었다. 물론 정치인들은 더더욱 없었고.


할아버지댁에서 50m 위로 이사 가다.

이런 생활을 지속하던 중 내가 6학년이 되던 해에 우리 집은 푸세식 생활을 끝내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뭐야, 집성촌 이야기라더니 벌써 이사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봐 말하자면, 우리 가족이 이사 간 집은 조부모님 집에서 약 50m 위에 있는 산에 직접 지은 집이었다.


아니, 지금 우리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여기가 집인지 모른다. 그 당시 버섯 농사를 하고 있어서 버섯 동사와 비슷한 형태로 반원형으로 집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파란색 우레탄으로 단열 효과를 냈다. 당연히 집 내부의 틀은 시멘트였다.


파란색 버섯집의 외관이다.


스머프 마을에 있는 버섯처럼 생긴 집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거기에 집 색깔마저도 파란색이라 생각하면 딱 떠오를 것이다. 지금도 우리 집으로 우편을 보낼 때면 나는 수령인에 이렇게 적는다.


감 작목반 뒤 파란색 버섯집


이건 동심이라도 있는데, 우리는 현실이었다.


또, 우리 집 뒤에는 무덤이 100개가 있다고 해서 ‘백마또’라고 불리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박 씨 가문 묘라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서 어릴 적 우리 동네 형들과 나, 동생은 겨울이면 거기서 눈썰매를 탔다. 기가 막힌 썰매장이었다. (박 씨 가문에게는 이 기회를 빌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여름에는 연못에서 수영을 했고, 겨울에는 눈썰매장과 함께 언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스케이트는 아버지께서 나무 판에 철사를 박아서 만들었고, 동그란 나무에 세로로 철사를 박아서 얼음을 찍을 수 있는 도구도 만들어 주셨다. 


이것과 정확히 똑같이 생긴 스케이트를 만들어 주셨었다.


나는 나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인 'MZ 세대'가 경험하기엔 다소 무리일법한 것들을 어린 나이에 경험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 역시 그 생활에 점차 녹아들며, 즐기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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