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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쿡 Aug 25. 2024

학군단에서의 고난과 설움, 혼술의 시작

S대 입학 전 10년 간의 방황 (3)



ROTC 1년 차 생활은 ROTC 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그만큼 폐쇄적인 집단이 학군단이라는 조직이다.


우리 학교 학군단에 존재했던 악, 폐습을 기억나는 대로만 정리하면 이렇다.


- 벨소리 다섯 번 울리기 전 선배 전화받기

- 단복 입고 등 기대기 금지

- 모자 착용 금지

- 반바지 착용 금지

- 티셔츠 착용 금지

- 뒷문 금지, 뒷길 진입 금지

- 흙길, 숲길 진입 금지

- 여자친구와 스킨십 금지

- 친구 차 탑승 금지

- 차량, 오토바이 운행 금지

- 운동복 금지

- 슬리퍼 금지

- 운동장 들어갈 시 허가받기

- 술집 금지, 야외 술 금지


한 블로그에서 언급된 예비역 장교 얼차려 인식, 선배들이 이러했는데, 후배들이 따라갈 수밖에.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금지 규율들이 존재했고, 단복을 입을 때는 어떻게 걸어야 하며, 충성은 어떻게 해야 하고, 전화를 받을 때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다.


아마 이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런 악, 폐습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 2년 후배기수 때부터 이미 악, 폐습을 없애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3학년 1학기는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나의 껄렁함, 과시 기질, 방탕함 등을 한 번에 날려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선배들을 마주치면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건물 4층에서 나를 봤는데, 나는 선배를 못 봤다고 얼차려를 받았다고 상상해 보면 왜 내가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적나라한 표현으로 3학년 후보생은 사람이 아니라 미어캣에 가깝다.


*우연히도 구글링을 하다가 아주 거친 표현으로 글을 써놓은 분이 있어서 공유한다. 근데, 왠지 우리 학교 출신 같다. 너무 똑같은 내용이라...


다시 돌아와서 악폐습 중 하나였던 술 금지는 나에겐 과한 처사였다. 술집에 가는 것이 금지되었고, 혹여나 술을 몰래 먹다 갑자기 집합이라도 하는 날엔 나 때문에 동기들이 크게 혼날 수도 있는, 연좌제라고 불리는 악폐습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혼술이었다.


하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 내가 알코올 중독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혼술을 하기 때문인데, 이때부터 시작된 버릇이다. 힘들 때면 술을 찾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 당시 학군단 생활은 억압과 통제로 얼룩져 있었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고, 혼자서 술을 먹는 빈도가 크게 늘어났다.


돈이 없는 불쌍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매일 5,900원짜리 부어치킨에 소맥을 마셨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흥청망청 돈을 쓴 축에 속하는 것 같다. 그래도 그때는 온갖 힘든 척을 다하면서 술을 먹었던 것 같다.


내가 불쌍해 보였던 동기들과 친한 후배들은 거의 매일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한 손에는 부어치킨을 들고서 말이다.


부어라 마셔라 해서 부어치킨인지 알았다.


3학년 1학기를 그렇게 두문불출하고서 2학기가 시작되자 선배들이 조금씩 억압했던 부분들 중 일부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씩만 기강을 잡았다. 선배들과 술을 먹는 자리도 생기기 시작했고, 웃으며 농담도 하는 동기도 생겼다.


하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그리고 3학년 2학기에도 여전히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왜?


다시 한번 중대장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우리 동기들은 앞서서 말했듯이 첫 번째 동계 훈련에서 109개 학군단 중에 107등을 했다. 소수 정예 학군단이자, 군기가 센 걸로 유명한 학교였는데 우리가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면서 선배들은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를 입었다.


보통 훈련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오면 2주 간의 짧은 방학이 주어진다. 하지만, 우리 동기들은 방학이 없었다. 바로 다음 하계 훈련 준비에 돌입한 것이었다.


당연히 군기 교육도 그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새벽에는 체력 운동, 낮에는 군사 훈련, 밤에는 얼차려를 받았다. 3학년 1학기가 시작되었지만, 그칠 줄을 몰랐다. 낮에는 학과 수업 때문에 군사 훈련이 없는 정도였다.


혹시 헬스장이나 요가, 필라테스 등을 할 때 땀을 많이 흘려서 본인의 수건으로 닦아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동기들은 매일 밤 얼차려로 흘린 땀을 손수 닦았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비참했다. 맞는 것도 서러운데, 뒷정리까지 하는 꼴이었으니까.


돈이라도 받았으면 덜 억울했을 것 같다.


그렇게 혹독한 1학기를 보내고 두 번째 하계 입영 훈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 동생은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동생이 가는데 전화 한 통도 못하고 훈련소에 있는 것이 너무 서러웠다.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훈육관님을 찾아갔고, 전화 한 통만 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런 나에게 훈육관님은 특급전사, 그러니까 체력 특급, 사격 특급을 맞아오면 전화를 하게 해 준다고 하셨다. 미웠지만 할 수 없었다.*


*개인 집안 사정을 말했는데, 오로지 눈에 학군단 성적만 보였던 훈육관님과 우리 바로 위 선배들은 전혀 달라 보이지 않았다.


나는 파리올림픽 김예지 선수에 빙의된 듯 초집중했고, 20발 중 19발을 맞추어 특급전사를 땄다. 3학년 때 특급전사를 따면 흰색 특급전사 배지를 줬는데, 그걸 갖고 싶어 하는 후보생들이 많았다. 나는 당당하게 배지도 따고, 전화 통화도 무사히 할 수 있었다.


이 배지는 우수 후보생의 상징과도 같았다.


잠깐 옆길로 샜는데, 사격은 입영 훈련 성적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과목이었다. 그런 사격에서 특급을 맞았으니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될법했다. 나는 자신감에 찼고,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그 결과, 첫 동계 훈련에서 4,800명 중 2,000 등 이하의 성적이었던 것이 100위 안쪽으로 들어왔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최상위권의 성적이었다.


우리 동기들도 최선을 다했던지, 아니면 맞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19명 안에 훈련 성적 전체 6등, 19등, 30등이 포진할 정도로 매우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고, 전체 종합 1위 학군단에 선정되었다.*


*전체 1위는 선배들도 한 적 없는 성과였다. 여담인데, 전남에 있는 한 대학교는 우리 학교와 호각을 다퉜는데, 그들은 생수통을 막대기 좌, 우측에 묶어서 입에 무는 얼차려를 당했다고 한다. 악폐습도 학교 이름 따라 가나보다 싶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입에 물었을까.


그동안 겪은 갖은 고초와 노력이 맺은 결실이었다.


성적이 우수했던 나는 당연히 중대장 후보로 추천되었고, 훈육관님과 동기들의 투표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중대장이 되었다.


다행히 2학기 중대장이었던 터라 동기들을 관리할 필요도 많이 없었고, 선배들이 집합을 거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무사히 임기를 보낸 나는 4학년 1학기에 ‘정보작전장교’라는 직함을 달고 후배들의 예절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직함을 끝으로 나는 학군단에서 벗어나 군대를 준비하는 입장이 되었고, 빠르게 단기 복무를 하고서 사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에 1 지망에 그나마 쉬워 보이는 ‘병참’, 그러니까 물자 관리 직책을 적었다.


비전투 부대지만 병참은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리고선 방학 때 친구 집에서 살면서 공장에서 돈을 벌고 있었다. 부모님께 TV를 사드리고 싶었다. 내 손으로 큰돈을 벌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그 공장은 건물 외벽에 씌워서 단열, 방수 등의 역할을 하는 압착 고무를 생산하는 공장이었고, 부가적으로 목재를 가공해서 납품하는 회사였다. 쉽게 말해 막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각 2병씩 먹어갈 때쯤 부대 발표가 났다. 나는 인천에 있는 군수사령부의 병참 보직이었고, 친구는 대구에 있는 50사단이었다. 둘 다 전방에 비하면 편하디 편한 보직을 받은 셈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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