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캡처하기]
작가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메시지 캡처하기]
내 휴대폰 사진 앨범에는 사진만큼 많이 저장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카톡 메시지 캡처 화면인데요. 섬뜩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상대방과 나눈 대화 중 기억에 남거나, 다시 생각해보고 싶거나, 좋았던 부분은 캡처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습니다. 카톡 대화방에서 그 부분을 다시 찾기가 쉽지 않으니 캡처해두고 보는 것이지요.
아무리 사랑스러운 대화도 며칠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심심할 때 사진 앨범을 쭉 올려서 오래 전 카톡 메시지를 보다보면 그 대화가 가진 사랑스러움을 두 배, 세 배 더 즐길 수 있어요. 오늘은 미운 말만 하는 친구가 예전에는 힘이 되는 말도 해줬었구나, 하며 고마움을 상기시키기도 하고요.
회사 메신저나 이메일을 통해 나눈 대화도 캡처해둡니다. 회사에서 각 사업부의 보고 내용을 기록해 대표님께 전달드리는 꽤 어려운 업무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몇 시간 동안 보고서를 살핀 다음, 떨리는 손으로 전송 버튼을 눌렀어요. 그리고 몇 시간 뒤, 생각지도 못한 답장을 받았습니다. 수고했다고. 잘한다고. 당연히 캡처감이었죠.
반면 이해가 잘 되지 않거나 찝찝한 대화도 캡처해둡니다. 별 일 아닌 듯 지나쳐버리면 언젠가 큰 문제로 번질 테니까요. 그렇게 보고 또 보다보면 상대방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의도가 파악이 되기도 하고,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내 기준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니 깔끔하게 포기하게 되지요.
나는 하루동안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눌까요? 그 많은 대화들 중, 캡처할 만한 대화는 얼마나 될까요? 확실한 것은, 대화는 생각을 확장시키고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대화를 하면서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내 생각과 행동의 근원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에겐 하찮고 쓸데없는 대화가 없으며, 그 중에서 캡처할 만한 대화를 발견하면 길가다 돈이라도 주운듯 설레고 긴장됩니다.
캡처할 만한 대화가 많다는 것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 휴대폰에 저장된 당신과의 대화는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 또 다른 형태의 대화로 나오겠지요.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은 내가 우리의 대화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이유, 당신과 더 깊고 솔직한 대화를 나눠야만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