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연말 평가 기간입니다
이직한 직장에서 온보딩 기간을 보내며 몇 차례 중간 리뷰와 피드백을 받았다. 적응하고 있는지, 회사의 핵심 가치(드라마앤컴퍼니는 'DRAMA WAY'라고 부른다)에 부합하게 일하고 있는지 등 서로의 fit을 확인하기 위한 대화들이다. 어쩌다 보니 나는 온보딩 기간의 최종 평가와 연말 평가가 겹쳤는데 피플팀에서 보낸 Annual Review 관련 메일을 받고 두 가지를 깨달았다. 벌써 연말 평가 시즌이구나 그리고 또 한 살을 먹는구나.
전 직장에서 처음으로 연말 평가라는 것을 경험했었다. 동료와 리더를 상호 평가하는 것인데, 평가 시트를 켜놓고 깜빡이는 커서를 따라 눈만 껌뻑이며 몇 시간을 보냈다. 동료의 훌륭한 점을 쓰는 거야 쉽지만, 다소 아쉽다고 느꼈던 부분을 어떻게 써야 팩트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사람 일이라는 것이 무 자르듯 명확하지만은 않으니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논문 대신 제출한 졸업 소설도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쓰진 않았던 것 같다.
얼마 후 평가 결과가 나왔다. 마치 어른들의 성적표 같았다. 나는 생각보다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부족한 나를 예쁘게 봐주셨구나 하며 자만하던 중, '매우 그렇지 않다'가 딱 한 개가 눈에 띄었다. 시무룩한 내게 지인은 "딱 하나 나쁘게 나온 거 가지고 뭘 그래. 남들은 더 많을 텐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나는 그 하나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단순히 나쁜 평가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익명 평가라 누군진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이 왜 나를 그렇게 평가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찝찝했지만 풀리지 않는 문제였고, 그렇게 평가는 마무리되었다.
그 후로 4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평가는 어렵다. 드라마앤컴퍼니의 연말 평가는 역량 평가와 성과 평가로 나뉘는데, 그중 역량 평가는 DRAMA WAY의 각 항목에 따라 셀프 리뷰를 진행한다. 팀원의 경우 크게 'Problem-solving', 'Passion', 'Speed', 'Detail', 'Teamwork' 이 다섯 가지의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평가한다. '우수'를 주자니 ‘보통’보다 후한 점수 같고, '개선 필요'를 주자니 ‘보통’보다 서운했다. 리뷰를 마치고도 여러 번 다시 파일을 열어 수정했다.
동료 평가의 경우 모두 기명으로 진행된다. 기명으로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는 건강한 문화를 만들기 위함이다. 나 역시 이름이 떡하니 쓰인 피드백을 받았고, 그것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그 사람이 나를 왜 그렇게 평가했는지는 비교적 명확했지만, 그 평가에 대해 내가 어떻게 적용해나갈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 평가가 평가로 끝나지 않는 것처럼 내년은 또 오고 끝은 시작을 부른다. 아, 그나저나 또 한 살을 먹는 게 평가만큼이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