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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Apr 09. 2020

나를 왜 뽑았냐고 대표님께 여쭤봤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 홍보 담당자로 커리어를 전환할 때, 관련 경력도 없고 지금까지 해온 일과 완전히 다른 분야였기 때문에 면접에 가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곳에 이직해 3년 여 일했을 무렵, 대표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조심스럽게 질문 하나를 꺼냈다. 늘 궁금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그 질문.


"그때, 왜 저를 뽑으셨어요?"

"글을 잘 쓰면 다른 것도 잘하실 것 같아서요."


내 생각에 글을 잘 쓴다는 건, 딴길로 새지 않는 능력이다. 글을 쓰다보면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버릴 때가 많은데 그러면 논지가 흐려지고 글의 목적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지기 일쑤다. 따라서 글을 쓰는 사람은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계속해서 글의 흐름을 살펴야 하는데, 회사 업무도 똑같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기면 우리가 왜 이 마케팅 캠페인을 기획했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곤 한다. 갑자기 이 팀원 저 팀원 사공이 늘어나면 배는 산으로 가다 뒤집힌다. 일의 목표가 흔들리지 않도록 업무의 중심을 잡는 것은 좋은 글을 쓰는 일과도 비슷하다.


또한 글을 잘 쓴다는 건,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보통 한 편의 글을 기깔나게 잘 썼다고해서 글을 잘 쓴다는 평을 받진 않는다. 드라마 작가들이 다음화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처럼,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그 다음 글을 궁금하게 만든다. "작가님,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라는 말보다 더 극찬이 있을까. 일 잘하기로 소문난 선배는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동시에 그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사람들에게서 우리 서비스가 잊히지 않도록.


이처럼 글을 잘 쓴다는 건, 일을 잘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내가 대표님의 예상에 맞는 인재였을진 모르겠지만 대표님이 그렇게 대답하신 이유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글을 잘 쓰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으로서, 나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안심이 됐다. 내가 의미있는 일에 힘을 쓰고 있는 것 같아서.


만약 언젠가 내가 사장이 된다면, 나 역시 글을 잘 쓰는 사람을 채용할 것 같다. 자신의 색깔을 문체로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은 말로만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사람보다 깊이가 남다른 사람일 테니. 글에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은 협업과 소통이 잘 될 테니. 오타를 '단순한 실수'라고 치부하는 사람보다 작은 오타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린다는 경각심을 가진 사람이 책임감이 더 강할 테니. 뭐, 나에겐 아직 한~참 먼 이야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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