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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May 28. 2020

에어팟을 사지 않았습니다

요즘 주변에 줄 달린 이어폰을 끼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회사 팀원 분들이 왜 에어팟을 쓰지 않냐며 에어팟의 장점이란 모든 장점을 다 말해주었지만 아직도 에어팟을 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분명 한 짝을 잃어버릴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건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나에게 에어팟의 유통 기한은 길어야 한 달이다. 뚜껑 열린 펜을 가방 속에 던져 넣고, 지갑은 1년만 지나도 모서리가 다 헤져버릴 정도로 조심히 다루지 않으니 줄 없는 에어팟이라면 오죽할까. 양쪽 귀가 보이게 찍어야 하는 여권 사진을 세 번이나 다시 찍었을 정도로 귀가 작아 이어폰이 자주 빠지곤 하는데, 에어팟을 꼈다면 지하철이나 엘레베이터 틈으로 백 번 빠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저 갖고 있던 유선 이어폰이 망가지지 않아 계속 쓰고 있었을 뿐인데, 지하철 안의 풍경은 이어폰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빠르게 변화해있었다. 지하철에서 베베 꼬인 선을 풀고 있을 때마다 마치 나혼자 아직까지 가로본능 휴대폰을 쓰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든다. 그렇다고 뻔히 잃어버릴 물건을 살 수도, 딱히 편해보이지도 않는 물건을 사기가 애매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쯤, sns에서 ‘줄 있는 이어폰이 힙하게 느껴진다’는 글을 봤다. ‘힙하다’는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것을 의미하는 말로, 내가 줄 달린 이어폰을 그대로 쓰고 있던 사이 어느새 핫하고 트렌디한 물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LG는 비비드 컬러가 눈에 띄는 ‘LG 벨벳폰’ 을 출시했다. 약 10년 전, 가수 2ne1과 빅뱅이 ‘롤리롤리롤리팝’ 노래를 부르는 광고로 유명했던 ‘롤리팝폰’이 단번에 떠올랐다. 유행이 돌고 돈다는 말보다, 감성이 돌고 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사람들이 열광했던 감성에, 지금의 사람들이 열광하지 말란 법이 없다. 때론 강산이 변하는 10년 주기로 돌아오기도 하고, 사계절을 돌아 1년 주기로 돌아오기도 한다. 지금의 우리가 그때는 잘 몰랐던 양준일 씨에게 열광할 줄 꿈에도 몰랐던 것처럼 예고없이 툭, 감성이 한 바퀴 돌아온다.


글쎄, 만약 지금 쓰고 있는 이어폰이 망가지면 에어팟을 살지 또다시 줄 달린 이어폰을 살지 잘 모르겠지만 옆 사람과 버스에 나란히 앉아 이어폰을 나누어 귀에 꽂던 그날을, 상대방과 이어폰 줄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조심히 유지하며 같은 음악을 공유하던 그 감성을 쉽게 잊지는 못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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