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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Jul 09. 2020

인생 노잼, 상상이 필요해

브런치에서 ‘실패’를 주제로 <나도 작가다> 2차 공모전이 열렸습니다. 아마 지금도 수많은 작가 분들이 노트북 앞에 앉아 골똘히 자신의 실패 경험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계시겠지요(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저는 딱히 떠오르는 실패 경험이 없어 당황스러웠어요. 그렇다고 성공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닌데 그럴싸한 실패 경험이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니, 어딘가 어불성설이죠.


면접을 보고 다닐 때도 면접관은 매번 제게 실패한 적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크게 교칙을 어긴 적 없이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고 언니가 원서를 넣어준 대학에 들어가 보통의 학점을 받고 졸업했을 뿐인 제 인생에, 그들에게 ‘어필’할 만한 실패 경험이 있을 리 만무했어요. 한참 푹 빠져 살았던 게임에서 끝내 마지막 판을 깨지 못한 것이나 별로 입사하고 싶지도 않았던 회사 면접에서 떨어진 것도 실패라면 실패일 수도 있겠으나 면접 자리에서 말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돈을 떼여보거나 몇 년을 준비한 시험에 낙방하는 정도의 드라마틱한 실패 정도는 되어야 면접관 분들이 원하시는 실패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었죠(물론 그 실패를 어떻게 이겨냈는가를 중점적으로 보시겠지만요).


그러다 최근 강원국 작가님의 신작, <나는 말하듯이 쓴다>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만났습니다.


상상하지 않는 사람은 시도하거나 도전하지 않는다. 당연히 성공도 없다. 어찌 보면 실패하지 않았다는 건 상상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성공하기 싫다는 것이며, 성공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 강원국, <나는 말하듯이 쓴다> 중에서


저에게 딱히 떠오르는 실패 경험이 없는 이유는, 그동안 상상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맞아요. 저는 입버릇처럼 ‘오늘만 산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었어요.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마음 편한 날들이 많았어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겠다는 생각은 허무맹랑한 생각으로 차치하고, 당장 내일 중간고사에서 80점대를 받느냐 90점대를 받느냐에 매달리는 거죠. 그러면 대부분 결과가 나쁘지 않았어요.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당시 80점대를 받지 못하면 반에서 중간도 못 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어떻게든 80점대 이상을 받아서 중간은 넘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결과적으로, 보통의 사람은 되었을지 몰라도 뒤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은 게 많지 않더라고요. 도전도, 실패도, 성공도 없는 딱 보통의 삶.  


그런 제가 서른을 기점으로 조금씩 달라졌어요. 회사에서는 마냥 막내 취급을 받을 나이가 지났고, 밑에 하나둘씩 후배들이 생겨나면서 책임져야 할 일들이 생겨났죠. 그러면서 동시에 마음이 급해졌어요. 하나라도 더 배워야 살아남을 것 같고, 지금의 나이에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을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싶어 졌어요.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친구들과 “진짜 세월 빠르지 않냐?”라고 했던 말들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닌, 궁서체 명언이 되어버린 시점부터 나의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한 거죠.


‘독립을 하면 어떨까? 글을 더 열심히 쓰게 될까? 조용해서 좋은데 무섭진 않을까?’

‘운전을 하면 어떨까? 기분이 안 좋은 날엔 정말로 앞뒤 안 가리고 바다에 갈 수도 있을까?’


서른이 넘어 운전에 도전한 덕분에 저는 ‘실패’를 주제로 글쓰기 공모전에 글을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왜 실패냐. 사고가 났기 때문인데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겁이 많은 제가 올해부터 운전을 시작했고, 평생 써본 돈 중 가장 큰 거금을 들여 차를 샀어요. 그동안 제 소심한 행적을 지켜봐 온 사람들은 저의 이런 용기가 얼마나 큰 용기인지 알고 있습니다. 운전자가 되어보면 어떨까, 라는 작은 상상이 저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거죠. 평생 무사고로 살겠다는 목표는, 작은 사고로 인해 6개월 만에 실패했지만 오히려 이 사고를 계기로 어떻게 사고에 대처하고, 더 큰 사고를 예방하는지를 배웠으니 저에겐 꼭 필요한 '좋은 실패'였다고 생각해요.


"사진이 웃겨서 놀려주고 싶은데 차마 놀리진 못하겠다"


지인들에게 사고 현장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박장대소를 합니다. 차가 도랑에 빠져 뒷바퀴가 들려있는 모습이 제가 봐도 좀 우스꽝스러워요. 하늘을 나는 차라고나 할까요. 현장에 같이 있던 지인도 제가 사고 낸 모습을 보고 처음엔 너무 놀랐지만 나중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당시엔 그야말로 멘붕이었지만 이젠 그 사진을 보면 웃음부터 나와요. 사고도 어쩜 모지란 나답게 났는지.   


"나에게도 실패가 생겼어!"


실패의 경험이 이토록 자랑스럽고 다행스러운 것이었던가요. 이번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쓸 만한 이야깃거리를 발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실패가 있다는 건, 인생을 더 풍요롭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 같아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속초를 향해 달리는 제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공모전에는 발도 못 디뎠겠지요. 저는 앞으로도 실패 없는 노잼 인생보다는 실패를 겪더라도 끊임없이 상상하고 시도하며 성공에 가까워지는 꿀잼 인생을 살고 싶어요. 언젠가 ‘성공’을 주제로 공모전이 열린다면 속초 바다를 향해 시원하게 달리고 그 이야길 써보겠습니다. (가능할까...?)


<나도 작가다> 2차 공모전에 제출한 글 : 평생 무사고를 장담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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