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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Dec 27. 2020

최고의 사치를 부려야 하는 최적의 순간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면 20분의 시간이 애매하게 남곤 한다.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부족한 잠을 청하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동료들과 함께 카페에 간다. 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회사에 출근해서 점심시간에 가는 카페는 조금 불편할 때가 있다.


동료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카페에 가는 수순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동료들을 따라 나도 '그냥' 아메리카노를 사 마시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커피를 먹고 나면 꼭 한두 시간 정도 뱃속이 불편했다. 집에서 먹는 식사 양보다 더 많이 먹거나 외부 환경에 예민한 체질이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지, 밥을 먹자마자 커피를 마시면 배가 아픈 체질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냥 마시던 아메리카노가 장 트러블의 원인이라는 것을 안 후부터는 동료들을 따라 카페에 가면 뒤편에 서서 동료들이 주문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동료들은 그런 나를 마치 점심이라도 건너뛰는 사람처럼 의아해했고 본인들이 사줄 테니 어서 주문하라고 했다. 이것도 직장인끼리 느끼는 하나의 동질감인데, 나만 음료를 사지 않는 게 좀 무안한 일인가 싶어 아메리카노가 아닌 다른 음료를 구매한 적도 많았다. 그러면 하루 종일 반도 못 마시고 버리기 일쑤였고 그 비싼 음료를 하수구로 쏟아낼 때마다 가슴이 쓰라렸다.


하지만 나에게도 회사 근무  가장 맛있게 카페 음료를 마실  있는 시간이 있는데, 바로 오후  4시쯤이다. 점심이 어느 정도 소화가 되었으면서도 한참 오후 근무를 하고 당이 떨어지는 시간. 그때쯤이면 달달한 바닐라라떼가 간절해지는데  시간대에 마시는 음료는 마지막  방울까지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실 수도 있다. 같은 음료라도 언제 마시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최고의 사치가  수도 있는 것이다.


최고의 사치를 부려야 하는 최적의 순간은 언제일까? 내 평생 최고의 사치는 올해 구한 작은 원룸이자 작업실인데, 만약 이 작업실을 작년이나 내년에 구했더라면 지금만큼의 행복을 누리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작년이었다면 차를 구매한 시기와 겹쳐 경제적으로 부담감과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고, 내년이었다면 코로나19로 인해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는 내가 이 사치를 누리기에 가장 준비된 시간이었므로 오후 4시대에 마시는 커피처럼 행복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하루 8시간의 근무 중 어떤 시간이 내 최적의 커피 타임인지는 여러 날의 출근이 쌓이면서 문득 알아차리게 된다. 기왕 5,000원 짜리의 커피를 나에게 선물함으로써 오늘도 수고 많구나,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보아주고 싶다면 최적의 순간에 선물하면 더 좋지 아니하겠는가. 최고의 사치를 부려야 하는 최적의 순간은 내가 그 선물을 받을 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할 것 같은 시간이다. 그 순간을 위해 오늘도 또 열심히 일하고, 나를 돌보는 것이 직장인의 책임이겠지.

 

스타벅스가 코앞에 있지만 작업실에선 처음 마시는 스타벅스 그린티 프라푸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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