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평생 글쓰기와 담 쌓고 살 뻔했다

언어 5등급이 문예창작학과를 간다고?

by 유수진

내가 문예창작학과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으레 하는 질문들이 있었다.


그럼 글 잘 쓰겠네?

책 많이 읽었겠네?

국어는 당연히 잘했겠다?


하하하... 아니라고 말하기도 귀찮아서 대충 그렇다고 얼버무릴 때가 많았지만, 나는 사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글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고, 소설 한 권 읽어본 적도 없고, 심지어 수능 시험에서는 언어 5등급을 맞았다. 수능 당일에 멘탈이 와르르 붕괴되면서 듣기 문제를 통째로 날려버린 탓도 있었지만, 모의고사를 볼 때도 언어 점수가 썩 좋았던 편은 아니었다. 시험지에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쌓인 비문학 문장들을 1분 안에 간파하고, 그 안에 담겨있는 주인공의 심리가 무엇인지 다섯가지 객관식 문항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너무도 어려웠다. 시간에 대한 압박감은 영어나 수학 문제를 풀 때도 똑같이 느꼈지만 특히 언어 시험을 풀 때는 식은땀이 흐르고 더욱 집중을 하기가 힘들었다.


여기까지만 봐도 나는 글쓰기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세계문학전집을 끌어안고 다니는 친구들처럼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진득하게 앉아 제대로 된 글 한 편을 써본 것도 아니고, 심지어 언어 시험에서 5등급을 맞아놓고는 감히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겠다니, 미친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내가 언어 5등급짜리 성적표를 가지고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간다고 말했으면 주변 사람들은 물론 나 역시 나에게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적성과 맞지 않으니 다른 길을 찾아보라며 다독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수시 논술 시험을 통해 대학에 입학했다. 엄마는 글씨가 예뻐서 합격한 게 아니냐고 하시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수시 논술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더라면, 문예창작학과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언어 5등급짜리 성적표는 문예창작학과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 이런저런 글을 써보고,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갖가지 글쓰는 일로 돈을 벌어보니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좋아하는만큼 잘 쓰고자 하며, 그것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문예창작학과에 꽤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걸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고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후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눈에 보이는 기준이나 편견이 나를 판단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언어 5등급'을 통해 배웠으니까. 겨우 그것 때문에 하마터면 평생 글쓰기와 담을 쌓고 살 뻔했다니 정말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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