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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Oct 05. 2021

논란에 휘말릴 글은 쓰고 싶지 않지만

작년 겨울에 쓴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그 남자가 버튼을 안 눌렀다>라는 글을 발행할 때 약간의 고민이 있었다. 한창 여성의 인권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뜨거운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들을 읽었고, 많은 충격을 입었다. 사람 생각은 다양할 수 있지,라고 여기며 가급적 앞으로는 댓글을 읽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내 글을 쓸 때에 달릴 댓글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는 어쩌면 글을 쓰는 내내 조심했을 것이다. 논란거리가 된다면 어떤 논란이 나올지 충분히 예상할 수도 있었다.


예상한 대로, 내가 남자에 대한 혐오 행위를 한 것이라는 댓글이 달렸고 나는 그 댓글이 달린 후 처음으로 댓글 기능을 잠갔다. 이런 댓글이 달리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설명할 의지도 없었다. 내가 왜 그때 그 엘리베이터에서 공포의 감정을 느꼈는지 어떻게 댓글이라는 창구를 통해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는 최소한의 설명을 하고 답변을 끝맺었다.


최근  6주간 구독자가  명이 늘었다.  명이  때마다 알림이 오는데, 모든 알림을 확인한다. 그만큼 구독자가 늘어가는 것이 기쁘고 좋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쌓인다. 그렇지 않아도 글을   자체 검열을 많이 하는 내가,  냉정하고  가혹하게 검열을   분명하니까.


작가는 각자만의 이유로 글을 쓴다. 나는 왜 글을 쓸까 생각해보면, 아주 개인적인 이유와 조금은 사회적인 이유로 글을 쓴다. 아주 개인적인 이유라 함은, 그냥 어딘가에 풀 곳이 필요해서다. 글은 말에 비해 실수할 염려도 적고, 생각이 많은 나의 복잡한 이야기를 털어놓기에 글쓰기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제멋대로 꼬인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이 벅차지만 그래도 말보다는 글이 편하고, 이름 모를 누군가와 이야길 나누는 듯한 묘한 매력이 있다.


조금은 사회적인 이유라 함은, 부끄럽지만 내 글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에 담요를 덮이고, 그 온도가 세상 아니, 아주 작은 마을에라도 전해지길 바란다. 어린 시절에 겪은 내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누군가의 묻어두었던 상처를 꺼내어 치료할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고, 엘리베이터에서 공포를 겪었던 내 이야기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은 특수한 상황에서 밖으로 표현하지 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큰 공포를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하길 바랐다. 또한 세상에 흉흉한 일과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도 많지만, 따뜻한 배려와 진국인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잊지 않길 바랐다. 그러면 서로가 서로를 손톱만큼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결국 내가 살기에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누군가 원치 않는 범죄 영상에 촬영되었다는 기사에 '우리도 한 번 찍어볼까?'라는 댓글이 달렸다. 누군가가 출입금지구역에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에는 ‘쌤통이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어쩌면 논란이 아니라 실체 없는 그들이 만든 세상이 아니었을까. 최근 전 세계를 사로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456명의 목숨을 건 잔인한 게임을 주최한 주최자가 최종 우승자에게 “정말 아직도 사람을 믿나”라고 묻는다. 나는 이 대사가 서로 손을 맞잡을 수도 없는 이 시대에 던지는 질문처럼 들린다. 논란에 휘말릴 글은 쓰고 싶지 않다는 약한 마음이 들수록, 펜을 더욱 힘껏 움켜쥐어 사람이 사람을 믿는 세상을 만드는 데 손을 모으는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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