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을 통해 본 '여인 혜경궁'
올해 1월 1일, 2022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종방한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 2022년 신년은 그야말로 이산 열풍이 불었다. 필자도 열혈 팬이었는데, 내면에 많은 슬픔과 분노가 있음에도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솔직한 이산(이준호 분) 때문에 ‘산이 앓이’를 했었다.
“네가 나에게 휘둘렸느냐 아니면 내가 너에게 휘둘렸느냐...”
드라마에서 직진 멜로남으로 불린 2PM 출신 배우 이준호는 이 드라마로 ‘대세’ 배우가 되었고, 연말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연기파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올랐다.
이산, 정조에 관한 사극은 지난 2007년 드라마 ‘이산’을 통해 자세히 다룬 적이 있었다. 최고 시청률 35.5%를 찍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 ‘이산’ 때문에 한동안 정조, 하면 이산 역을 맡았던 배우 이서진이 떠오르곤 했다. 그런데 올해 초 방송을 마친 ‘옷소매 붉은 끝동’의 열풍으로 이제 정조, 하면 배우 이준호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15년 만에 정조의 자리가 세대교체된 것이다.
사실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나, 드라마 ‘이산’ 전에도 많은 사극들이 이 시기의 드라마를 다뤘었다. 그 주인공은 정조의 아버지이자 조선 최대의 비운의 세자, 사도세자였다. 무수한 드라마에서 이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그 사실 자체가 매우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른도 안 된 젊은 나이에 뒤주에 갇혀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비운의 세자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 찡한 비극이다.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죽음을 당한 일을 가리켜 임오화변이라고 하는데 이 임 오화 변을 상세하게 다룬 책은 실록 외에 그의 아내이자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 씨가 지은 한중록이 있다. 읍혈록이라고도 하는 이 한중록에서 혜경궁 홍 씨는 자신의 한 많은 인생을 구구절절 기록하고 있다. 9살에 궁에 들어와서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갖은 위기 끝에 자신의 아들, 정조가 보위에 오르는 기쁨을 맞았으나 그 아들의 의해 자신의 친정이 몰락하고야 마는 비극의 비극을 경험한 혜경궁 홍 씨. 그래서 사람들은 한중록을 보면서 혜경궁 홍 씨의 삶에 강한 연민을 느끼고 동정한다. 하지만 사학자 이덕일 씨 등은 혜경궁 홍 씨를 남편을 버리고 아들을 택한 노회한 정객이라고 명명한다. 한중록을 기록할 당시,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목도한 비련의 여인이 아니라 영조, 정조, 그리고 순조 세 임금의 치세 60~70여 년을 지켜본 70대의 노회한 정객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시각이 옳은 것일까? 혜경궁 홍 씨는 한 많은 삶을 살다 간 연민의 대상일까, 아니면 노회한 정객일까?
필자는 올해 6살이 된 ‘이산’의 엄마이다. 한자는 다르지만 아들 이름이 이산이다. 이 이름을 지은 배경에 정조 대왕의 이름인 이산인 이유도 있었다. 그만큼 존경받는 왕인 정조이므로.
우연의 일치일까? 대학 시절, 고전문학을 전공한 필자는 이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 씨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도 간간이 혜경궁 홍 씨(강말금 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그리고 무언가 쓸쓸한 내면을 잘 표현해냈다. 이 글에서는 한중록을 통해 인간 혜경궁 홍 씨의 삶의 모습을 보다 면밀하게 추측해보고자 한다. 한 사람의 딸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그녀의 삶을 한중록 텍스트 속에서 생생하게 꺼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