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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LE Sep 07. 2022

내 나니 여자라(2)

한중록을 통해 본 '여인 혜경궁'

2장 이산의 어머니, 혜경궁을 주목하다


  [출처=포완카] 2014년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혜경궁 역할을 한 배우 박은빈 일러스트


   그야말로 영조 시대의 정국은 혼돈 자체였다. 이복형제였던 경종을 이어 영조가 왕이 된 것도 노론의 힘이었으며 소론을 중심으로 흘러나온 ‘경종 독살설’이 영조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영조는 자신이 한 당파만의 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탕평책은 말 그대로 공평하게 두 당에게 골고루 임무를 맡긴다는 것인데 이 정책은 정조대까지 이어진다. 한편, 한중록에 기록된 대로 정신병으로 인한 것이었든 이덕일 씨의 주장처럼 당쟁의 희생되었든 간에 사도세자는 영조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 비참하게 죽었고 그의 아들인 ‘산’이 세손에 오른다. 세손은 반대파의 끊임없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영조의 신임을 얻어 영조 사후, 왕에 오르고 왕에 오르자마자 ‘사도세자의 아들’ 임을 천거하면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한 많은 무리들을 제거한다.


   한중록은 영조 38년(1762년) 윤 5월에 일어난 임오화변, 즉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고 7일 만에 굶겨 죽인 사건을 영조의 며느리이며 사도세자의 처인 혜경궁 홍 씨가 임오년의 참변을 중심으로 자신의 기구한 일생을 엮은 자서전적인 글이다. 작자가 <한중록>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한중록>은 홍 씨 가문의 글을 남기고자 하는 친정 조카 수영의 부탁과 손자에게 보일 목적으로 회갑 해로부터 시작하여 10여 년에 걸쳐 쓴 4편의 글을 모아 놓은 것으로 남성 일변도의 사회 상황에서 여류문학으로 작가의 이름이 분명히 밝혀졌으며 <계축일기>, <인현왕후전>과 더불어 궁중 문학의 쌍벽을 이루는 귀중한 자료로 우리 문학사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중록>은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 씨의 작품으로, 여타의 허구적인 창작물과는 달리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노년에 회상하면서 쓴 글이다. 허구적인 작품과는 달리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 ‘기록문학’ 작품인 것이다.


  

   <한중록>은 한 번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4번에 걸쳐 쓴 글들의 모음이다. 첫 번째 파트는 먼저 혜경궁이 회갑 되던 해(1795년 정조 19년)에 친정 조카 홍수영의 청에 따라 지은 것이다. 여기에서는 남편인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는 임오화변으로부터 세도가 홍국영의 몰락, 순조의 탄생에서부터 혜경궁의 회갑연까지 궁중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다음으로 두 번째 파트에서는 작가가 67세(1801년, 순조 원년)때 쓴 것으로 임오화변 후 화완옹주의 이간책, 홍봉한의 세손 외입을 직언하여 세손의 미움을 산 사건, 홍인한이 미움을 받게 된 동기, 홍국영이 자기 누이를 정조의 후궁으로 바치고 세도를 누리려다 좌절된 일, 홍낙임이 화를 당한 일을 밝히면서 손자인 순조에게 은근히 부탁을 하고 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작가가 68세 되던 해(1802, 순조 2년)에 썼다. 두 번째 파트 후반부와 같이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항변하였으나 좀 더 담담한 어조로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파트에서는 작가가 71세 때(1805, 순조 5년) 쓴 마지막 작품으로 ‘주상이 임오화변의 진상을 알고 싶어 하여 순조의 생모인 가순궁이 써내라 하므로 쓴다’고 서문에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서문을 보면 68세 때 세 번째 파트와 함께 초벌로 적어둔 글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주상에게 보이지 못하고 있다가 가순궁의 요청으로 순조에게 보인 것으로 보이며, 이 해는 대왕대비로 있던 정순왕후 김 씨가 승하한 직후임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파트에서는 혜경궁 홍 씨는 정순왕후 생존 시 미처 못했던 말, 즉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임오화변의 원인이 되었던 부자간의 갈등 요인을 밝히기 위해 사도세자의 탄생과 성장과정, 병환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갈등을 심도 있게 묘사하였으며, 사후 세손의 보존에 이르기까지를 집중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제부터 필자는 한중록 텍스트를 통해 혜경궁 홍 씨의 삶의 모습을 추측해보고자 한다. 한중록에 기록된 ‘내 나니 여자라(내가 태어났더니 여자라)’라는 제목으로 여성으로서 살기 힘든 시대에 태어나 한 사람의 딸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또 어미로서 살아온 인간 혜경궁 홍 씨를 만나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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