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한중록을 통해 본 혜경궁 홍 씨의 삶
자녀로서의 삶①
[출처] 영화 '역린'
[사가시절]
혜경궁 홍 씨는 가족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 비록 여자아이지만 보통 아이와는 다르다며 할아버지 정헌공은 물론 증조모 이 씨에게까지 사랑을 받았다. 혜경궁은 유년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어렸을 때 형제가 있어 부모께서 두 개의 구슬같이 귀엽게 여기셨는데, 형이 일찍 죽어 내가 끝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독차지한 것이 天倫의 뜻밖이었다.
(「한중록」, 혜원출판, 2004, p.7)
이러한 사랑을 받고 자라난 탓인지 작자는 평생을 부모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와 애정을 드러낸다.
작자의 아버지 홍봉한의 태몽이 맞았는지 혜경궁은 왕세자비로 재간택 된다. 어린 혜경궁은 그날부터 부모님이 자신에게 말씀을 고쳐 존대를 하고, 일가 어른들도 공경하여 대해주는 것이 불안하고 슬펐다고 한다. 어린 날에 부모님 곁을 떠날 일이 두려운 평범한 어린 소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11월 13일 삼간택의 날짜가 점점 가까워지자 어린 혜경궁은 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삼간택은 11월 13일로 잡혔는데, 남은 날이 점점 줄어들수록 마음이 갑갑하고 슬퍼서 밤이면 어머니 품에서 잤다. (「한중록」, p.16)
어쩌면 이제 9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품이 왕세자비의 자리보다 더 좋은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작자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생각이 깊고 조숙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일화는 옷에 관련된 것인데 다음과 같다.
내 가까운 친척 중에 나와 나이가 같은 여자애가 있었는데, 그 집이 부유하여 귀한 딸로 자란 까닭에 고운 옷과 단장하는 기구를 안 가진 것이 없었지만, 나는 부러워하지 않았다. 하루는 그 아이가 다홍색 깨끼 치마를 입고 우리 집에 왔는데, 매우 고왔다. 어머니게서 보시고 나에게 저런 옷이 입고 싶으냐고 물으시기에 내가 대답하였다.
“저런 옷이 있다면 안 입지는 않겠지만 새로 장만해서 입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탄식하시며 말씀하셨다.
“너는 가난한 집 딸이니 어찌하랴. 네가 혼인할 때 고운 치마를 해 주어 오늘 네가 어른처럼 말한 것을 표창하리라.” (「한중록」, p.17)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왕세자비로 재 간택된 후 삼간택 때 정성왕후가 내린 고운 옷을 보고 어린 작자와 그의 어미가 같이 우는 부분에서 그가 나이에 비해 사려가 깊고 매우 조숙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삼간택까지 된 어린 혜경궁은 드디어 정월 초아흐렛날에 세자빈으로 책봉되고 11일에 혼인을 한다. 9살에 부모와 생이별을 하며 세자빈이 된 효녀 혜경궁은 고운 옷 한 벌 제대로 해 줄 수도 없는 어려운 살림살이에다가 아직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아버지를 두고 집을 나서면서 이렇게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꼭 호강시켜드리겠다고. 그리고 꼭 보호해드리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