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선물이 반가워지다니

12월 14일

by 이도

어릴 땐 옆집 아줌마가 주는 배추나 상추 같은 풀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벌레 먹은걸 보니 무농약으로 농사지었나 봐요. 이 귀한걸. 잘 먹을게요."


정말 배추의 겉잎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마트에서 파는 것과 비교해보면 크기도 작고 속도 꽉 차 있지 않은 배추를 받고 이렇게 좋아할 수가 있나 생각했다. 그날 저녁은 어김없이 배춧국이 상에 올랐다.


결혼을 하고 풀 선물을 직접 받는 일이 생겼다.

처음에는 받은 그대로 냉장고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가 냉장고 청소할 때 버렸다. 언제가 부터는 아까운 마음이 들어 받자마자 엄마에게 갖다 주었다. 이번 달 들어 여기저기서 배추를 받을 일이 많았다. 처음에는 계속 엄마에게 넘겼는데, 일주일 전 엄마가 준 배추 두 포기는 냉장고로 들어갔다.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장보는 타이밍을 놓쳐 '뭐 먹을 게 없나' 하고 냉장고 청소를 하다가 배추를 발견했다. 버려야 하나 해서 꺼내봤는데, 잘 싸여있었던 건지 싱싱했다. 이대로 두면 절대 안 먹을 거 같아 밑동을 잘라 다듬고 한 잎씩 씻어 큰 밀폐용기에 전부 담았다. 이제 고민은 '이걸 어떻게 먹지'로 이어졌다.


잘 모르겠으면 기름 두르고 볶기. 가위로 큼직하게 잘라 한 움큼 볶았더니 '오, 맛있는데.' 이번 배추는 버리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풀 선물이 반가워질 것 같다. 시간이 흐르더니 정말 어른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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