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
독서모임을 언제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2년 동안 멈춰있던 모임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많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임을 많이 하는데 너는 안 하니?"
"여보, 책샘 포기했어?"
"코로나도 끝났는데 독서모임 언제 해?"
"모임 장소로 이용하던 어머니 카페의 작은 수입을 위해서"
"운영하던 게 아까우니까"
"코로나 전에는 잘 되던 중이었으니까"
많은 이유 중에 내것은 없었다.
2018년 모임을 '그냥 하고 싶어서'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건 더 이상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간단하게나마 모임 포스터를 만들고, 공간을 예약하고, 신청서 폼을 만들고, 공지를 가능한 모든 곳에 올린 뒤 신청을 받고 모임 진행을 고민하고, 다음 모임 책을 고민하는 반복이다.
이 '반복'을 하는데 '책임감' 100이 필요하다면 50까지는 어떻게든 채웠다. 나머지 반이 도무지 채워지지 않았는데 책 [마이너 필링스]가 순식간에 채웠다.
지면에서 한 인종 전체의 대변자로서 우리도 고통을 느끼는 인간임을 믿어달라고 호소하는 내가 아닌 그저 나 개인일 뿐인 채로 얘기를 하는 미래가 과연 찾아올까? (마이너 필링스 중에서)
인종화된 현실을 부정하는 미국식 긍정성을 강요당해 인지 부조화를 겪을 때 소수적 감정이 발동된다. 나는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구조적 차별은 그들이 착각하는 현실과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보기에 우리의 감정은 과잉반응이다.
그녀가 쓴 글에서 '인종' '문화'같은 단어가 내게는 '여성'으로 치환되어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