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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 Aug 28. 2020

소설, 쓰는 사람

Vol.2 쓰는 여자


마치 오래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한 사람을 잃고 나니 넘쳐흐르는 시간에 허우적거렸다.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때 누군가 구명조끼를 던져줬다. 나는 간신히 조끼만 입은 채 시간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겼다. 5주 동안 책을 만드는 강의였다. 주로 기술적인 수업이었다. ‘책’의 각 부분을 부르는 용어부터 어떤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책’을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방법. 책을 만들 때 결정해야 하는 일. 인쇄소 의뢰 방법. 어떻게 하면 무형의 데이터가 유형의 책으로 돌아오는지 등의 수업이었다.

기대감만으로 참석한 첫 시간. 다양한 형태의 ‘책’이라 부르는 결과물을 봤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책에 대한 기준이 깨졌다. 작가라는 아득했던 꿈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많던 시간은 나의 첫 소설책을 완성하는 일에 쓰이기 시작했다.


가끔 어떻게 5주 만에 책을 완성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들려줄 이야기는 하나뿐이다. “메모장에 썼던 글을 모으고 덧붙였더니 단편소설 정도의 분량이 나오더라고요. 사실 완성할 수 있을지는 몰랐어요. 다만, 그땐 제정신으로 살던 때가 아니었거든요.”라고. 그렇다고 평소에 내가 메모를 꼼꼼히 하던 사람이냐, 그것도 아니다. 그때는 모든 감각이 열려있었다. 그리고 나는 상실의 이유를 혼자 알아내야만 했다.

내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와 자신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 강아지의 감촉을 밤새 잊지 못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아내고자 했다. 모든 순간에 의도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또 다른 날엔  바지단 안에 쌓여있는 모래 알갱이의 출처를 알아야만 했다. 언제, 어디서 부터 거기 있었던 건지. 혹시 내가 푸는 수수께끼의 단서가 아닐까 하는 이유 었다. 그렇게 일상의 ‘우연’은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다. 그저 ‘우연’이라는 단어로 끝낼 수 없었다. 분명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 혼자 묻고 혼자 답했다. 따지듯 소설을 썼다. 김연수는 자신의 책[시절 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게 소설이든 시든, 어떤 젊은이가 갑자기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면, 그건 지금 그의 내면에서 불길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불은 곧 잦아들 것이다. 그것 역시 불의 속성이다. 순식간에 타오르고, 또 그만큼 빨리 꺼진다. 그러므로 모든 소설가들의 데뷔작은 검정색 이어야 한다. 그건 어떤 불이 타오르고 남은 그을림의 흔적이니까. 하지만 두 번째 책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가에게는 이제 불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필요한데, 예컨대 건강이나 체력 같은 것이다.(중략) 소설가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소설을 쓴다. 소설가는 불꽃이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뒤에도 뭔가를 쓰는 사람이다. 이때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다 타버렸으니까. 이제 그는 아무도 아닌 존재다. 소설을 쓸 때만 그는 소설가가 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그때 나의 내면에서 타오른 불길은 숯도 아닌 재가 되어 그을음만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커먼 흔적만 남아 다시 불을 피울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 실망하고 많이 안도했다. 내가 두 번째 소설을 쓰지 않았기에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첫 소설을 쓸 때 생생했던 감각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그 후, 나와 내 몸은 다시 그때의 감각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두 번째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니 그때만큼의 고통을 기다리는 것 같아 진심으로 바랄 수도 없었다. 뻔히 아는 일을 다시 겪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좋은 핑계가 되기도 했다. 두 번째 책은 언제 나오냐는 질문에 “다시는 그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두 번째 책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라는 대답은 쓸모가 많았다.


그래도 쓰는 삶을 꿈꿨기에 다음번엔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을 시작했다. 행복한 글은 분량이 길어지지 않았다.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겪는 고통은 흔한 것이라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가  거라 생각했다. 생각을 글로 옮기려  봤지만, 말하는데 재능이 없는 탓인지 생각도 툭툭 끊기기 일수였다. 그래서 다시 타오를 불꽃이 타오르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앞에서 작가라기보다는 프로그램 기술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번째는 꽃이 아닌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는 김연수의 말에 안도했다. 나는 여전히 아무도 아닌 존재다. 하지만 소설을  때면 나는 소설가가  것이다.


에디터_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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