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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i May 06. 2020

폴로 셔츠, 우리가 '랄뽕'에 취한 까닭


어느 순간부터 ‘랄뽕’이라는 단어가 20, 30대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랄뽕


실제로 인스타그램에 ‘#랄뽕’이라고 검색해보면 수없이 많은 게시물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미 들어본 분들은 알 수 있겠지만 처음 듣는 분들께는 ‘랄뽕’이라는 단어가 생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올라가 있지 않은 신조어니까요. 


 

   


그럼 ‘랄뽕’ 의미를 유추해보실 수 있게 트렌드 지식 사전에 올라가 있는 ‘랄뽕’과 비슷한 ‘국뽕’이라는 단어의 뜻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필로폰의 일본어)의 합성어입니다. 마치 히로뽕이라는 마약에 취한 것처럼 국가에 도취되어 과도한 애국심을 보이거나 국수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국뽕이라고 부릅니다.   

 

출처 : ralphlauren.com



자, 그럼 이제 쉽게 추측하실 수 있겠죠?


‘랄뽕’은 폴로 랄프 로렌이라는 브랜드에 심취해 이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폴로 랄프 로렌이라는 브랜드에 심취해 이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것


물론 ‘히로뽕’이라는 마약과 관련된 단어를 이렇게 무분별하게 사용해서 되겠냐는 비난을 받고 있긴 하지만 여하튼 20, 30대 사이에서는 일상어가 되었을 정도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른바 ‘랄뽕’을 맞은 사람들은 모든 옷을 폴로 랄프 로렌에서 구입합니다. 셔츠, PK티, 자켓, 니트, 바지, 벨트, 타이, 심지어 양말까지. 그들 사이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폴로로 맞춰 입은 것이 최고의 멋으로 인정받습니다. 1967년에 뉴욕에서 만들어진 이 브랜드가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마니아층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걸까요? 저는 그 이유를 ‘클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래식 (classic)

고전적인, 유행을 안타는,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우리는 보통 클래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은 음악가들의 얼굴과 함께 고전음악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Classical music입니다. Classic의 원래 뜻은 ‘유행을 타지 않는’,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입니다. 폴로 랄프 로렌의 모든 제품들은 클래식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제품들이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입니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폴로 랄프 로렌이 추구하는 패션 철학은 비슷했습니다. 심지어 1972년에 출시된 옷깃이 있는 반팔 폴로셔츠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이 입습니다. 오래된 것, 유행이 지난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까요. 

     

출처 : ralphlauren.com
출처 : ralphlauren.com



I don't design clothes, I design dreams.
  

폴로 랄프 로렌의 창업자인 랄프 로렌이 남긴 이야기 중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I don't design clothes, I design dreams.”라는 문장입니다. 옷을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꿈을 디자인한다. 곱씹어서 읽어봐도 멋진 표현이네요. 랄프 로렌이 디자인하고자 했던 꿈은 무엇일까요?     






랄프 로렌의 꿈클래식     




Every generation laughs at the old fashions, 
but follows religiously the new.

   



‘모든 세대는 예전 유행을 비웃지만, 새로운 유행은 종교처럼 따른다.’ 불멸의 고전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남긴 말입니다.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다보니 6개월만 지나도 어느 샌가 낡은 것이 되어버리는 게 현실입니다. 특히 패션 업계는 더 심하죠. 1년만 지나도 옷이 낡아서가 아니라 유행이 지나서 못 입는 게 되니까요. 그리고 다시 유행하는 것을 찾습니다. 다음 해에는 또 다시 Old fashion이 되어버려서 다른 것을 찾아야 하고요. 하지만 폴로 랄프 로렌은 조금 다릅니다.



이거 입으면 옷잘입

     


제가 대학을 다니던 2000년대에도 폴로 랄프 로렌은 소위 ‘먹어주는’ 브랜드였습니다. 뭐랄까 폴로 랄프 로렌만이 가지고 있는 ‘아이비리그 감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학에서 옷 좀 입는다고 하던 선배들은 죄다 폴로로 도배를 했습니다. 하늘색 폴로 캡에 커다란 옷깃이 달린 폴로 럭비 티나 폴로 옥스퍼드 셔츠, 베이지색 폴로 면바지에 폴로 캔버스 스니커즈. 개강 시즌이었던 3, 4월에 이렇게만 입으면 ‘와, 00선배 옷 잘 입는다.’라는 부러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020년에는 어떨까요? 2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인스타그램에 ‘#랄뽕’을 검색해보면 옥스퍼드 셔츠, 럭비 티, 크리켓 니트, 데님 셔츠, 꽈배기 니트가 나옵니다. 20년 전, ‘와, 00선배 옷 잘 입는다.’ 시절과 거의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이게 요즘 유행하는 오버 핏, 와이드 핏, 보이프렌드 핏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 누구도 폴로 랄프 로렌의 스타일을 낡은 것, 오래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비웃지 않습니다. 오히려 클래식하며 멋지다고 생각하죠.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남긴 말이 폴로 랄프 로렌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랄뽕러들 사이의 잇템, Cricket sweater

 

폴로 랄프 로렌이라는 브랜드를 보며 저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싯다르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페스트와 같은 세계문학작품들을 떠올렸습니다. 이 소설들은 출간 된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활발하게 읽히고 있습니다. 불같이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해도 오랜 시간동안 마니아층들에 의해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죠.


사람들은 이런 문학작품들을 읽으면서 결코 ‘예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쓰인지 오래 되었더라도 시대를 초월해 친숙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사람들이 폴로 랄프 로렌이라는 브랜드를 선호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클래식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랄뽕에 취한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Arnaldo Anaya Lucca w Ralph Lauren


랄프 로렌은 2014년 위클리 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로운 것이 언제나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10년, 20년 전에 샀던 것이라 해도 지금 통용될 수 있어야 한다. 클래식하면서도 구식이 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너무나 트렌디해서 돈 낭비 하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 된다.”   

   

폴로 랄프 로렌은 한국에서 판매되는 가격으로 보자면 결코 저렴한 브랜드가 아닙니다. 중고가의 브랜드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랄뽕’에 빠진 사람들은 가격과 무관하게 폴로 랄프 로렌의 제품들을 구입합니다. 랄프 로렌의 말을 빌리자면 ‘구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구식이 되지 않으려면 너무 유행에 민감해서는 안 됩니다. 무언가가 유행하는 시간은 굉장히 짧으니까요. 일부러 적당히 트렌디하게 브랜드를 가꾸어 온 것.

   

 적당히 트렌디한 것

  

이게 바로 클래식이라는 가치를 지키면서도 6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장수하며 고객들에게 신뢰받는 브랜드를 만들어온 폴로 랄프 로렌의 성공 비결이 아닐까요?       




Reference

위클리 비즈 _ 맨손으로 패션왕국 세운 랄프 로렌을 만나다. 








https://brunch.co.kr/@edoodt/42

https://brunch.co.kr/@edoodt/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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