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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코치 Mar 21. 2018

칠판 구석 '왼'이라는 글자

초등학교 1학년

난 왼손잡이야


언제부터 왼손잡이였는지 기억은 없다. 엄마에게 나는 왜 왼손잡이냐고 물으면, 어릴 때 외할머니가 옷을 입히는데, 왼팔부터 넣었다고 한다. 그렇게 줄곧 왼손을 먼저 쓰더니 어느샌가 왼손을 더 자주 쓰고 있더라고.


7살까지 그리 불편한 게 없었다. 집에서도 왼손잡이를 존중해 주었다. 밥도 왼손으로, 글씨도 왼손으로, 운동도 왼팔, 왼발을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너 왼손잡이니?


별 탈 없이 학교 생활을 하던 나에게 선생님은 물으셨다. 딱히 왼손잡이라는 것에 대해 신경을 안 쓰고 살았는데 막상 물으니, 아 내가 왼손잡이구나를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단지 확인을 위해 물은 것이 아니었다. 그날부터 선생님은 나의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꾸겠다며 칠판 한쪽에 나의 이름과 그 옆에 '왼'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셨다.


칠판에는 주로 떠드는 사람의 이름이 적힌다. 칠판에 내 이름이 적히자 무척 신경이 쓰였다.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려고 해도 하루아침에 바뀔 리가 없었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어김없이 선생님은 칠판에 '왼'이라고 글을 남기셨다.


선생님의 혹독한 훈련


칠판에 이름이 적히는 건 안 좋은 거다. 학교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적히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의 머리 속은 복잡했다. 오른손인가, 왼손인가.


그렇게 몇 달을 고생하니 오른손으로 글씨 쓰는 것이 익숙해져 갔다. 밥도 오른손으로 먹게 되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글씨 쓰기와 젓가락질. 이렇게 두 가지를 제외하곤 그림을 그릴 때도 운동을 할 때도 모두 왼손을 사용한다.


볼링을 칠 때는 왼손을 사용하다 보니, 볼링장의 공들은 손가락이 맞지 않다. 신발을 신어도 맞지 않다. 볼링 슈즈는 발바닥 쪽 밑창 모양이 다르게 되어 있는데, 주로 마지막 스텝 때 왼발을 사용하는 사람들, 즉 오른손잡이 위주로 신발이 갖추어져 있다.


야구를 할 때도 좌타로, 공을 던져도 왼손으로 던진다. 팔씨름을 해도 왼손 힘이 더 세고, 축구를 할 때도 왼발을 주로 사용한다.


어라, 나 양손잡이야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난 왼손잡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글쓰기와 밥 먹기만 오른손으로 할 뿐, 나는 오리지널 왼손잡이라고 자부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만 아니었도 완벽한 왼손잡이인데, 아. 운명이란. 종종 1학년 때 담임을 원망했었다.


대학생이 되어 사고가 확장되기 전까지는 나는 나의 오른손이 하는 역할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말을 했다. "너 공은 왼손으로 던지고, 글은 오른손으로 쓰냐?"


뭘 던져 달라고 해서 왼손으로 던져 줬는데, 나를 관찰하던 친구가 너 양손잡이냐며 신기하게 쳐다본 것이다.


"응? 나 원래 왼손잡이야."

"야, 왼손 잡인데, 왜 글은 오른손으로 쓰냐?"

"아~ 글 쓰는 거랑 밥 먹는 거만 1학년 때 담임이 고치라고 해서 오른손으로 고쳤어."

"야, 운동할 때 빼면, 글 쓰는 거랑 밥 먹는 게 손 사용의 대부분이지. 너 양손잡이네!"

"으응?"


양손잡이.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를 왜 왼손잡이로 놔두지 않고 고집스럽게 오른손으로 바꾸었을까?'를 생각하며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원망했었는데, 친구의 한마디에 나의 정체성에 큰 변화가 온 것이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내가 양손잡이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종종 왼손으로 글을 써본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글씨가 묻어난다. 왼손으로 글씨 쓰던 그때 생각이 난다. 오른손으로 이빨을 닦아 본다. 왼손만큼 능숙하진 않지만 곧잘 닦는 편이다. 그림은 하도 그린 지가 오래돼서 그런지, 손이 제 마음대로 움직인다. 어떨 때 왼손으로 그리고 있고 어떨 땐 오른손이 그리고 있다.


그래도 '너는 무슨 손 잡이냐?'물으면 '나는 왼손잡입니다.'라고 대답한다. 핸드폰으로 문자 칠 때를 보면, 왼손 엄지가 가장 바쁘게 움직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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