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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코치 Mar 19. 2018

대학 선택과 인생 - 광고홍보학과

응? 관광 뭐라고?

대학 선택과 인생


광고홍보학과는 고등학생들의 로망이었다. (요즘은 교육청이 돌아가면서 수능 모의고사를 진행하지만) 예전에는 교육청 모의고사라는 것이 없어서 대성, 중앙, 종로 등 사설 교육기관의 모의고사를 봤었다. 당시에는 희망하는 학교와 학과를 쓰면 전국 경쟁률과 순위 등을 성적표에 표기해 줬다. 문과와 이과 선호 대학 및 학과 순위도 발표가 되곤 했는데, 그 시절 중앙대 광고홍보학과는 문과생들이 선호하는 학과 TOP10 중 하나였다.


당시, 많은 학생들이 신방과(신문방송학과의 줄임말)와 광보과(광고홍보학과의 줄임말이나 중앙대만 고집스럽게 광보과라 하며, 대다수의 학교는 광홍이라고 함)를 선호했었다. 드라마 <허준>의 영향으로 경희대 한의예과가 서울대 의예과와 맞먹으려 하던 시절의 이야기인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꽤 먼 이야기가 되겠다.


고등학교 때 방송부였던 나는 모의고사에서 줄곧 성균관대 영상학과를 지원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의 시야는 그리 넓지 못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장래 희망을 찾곤 하는데, 게임에 노출되면 많은 아이들이 한 번쯤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쇼미더머니의 영향인지 요즘은 래퍼가 되려는 아이들이 많다. 옛날보다 요즘 아이들은 확실히 돈에 민감한 구석이 있는데, 무턱대고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선택할 거라는 아이들도 많다. 친구 아버지가 제약회사 영업직인데 연봉이 높다며 자기도 커서 제약회사 영업을 하겠다는 아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사, 변호사, 공무원, 교사 등 전통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여겨져 온 직업을 선택하는 아이들도 있다. 부모님의 영향뿐만 아니라 조부모님의 영향도 크다. 어릴 때부터 이런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시시 때때 강조한다.


나는 고3 때 성적이 대폭 오른 대표적인 케이스다. 덕분에 <고3 수능 100점 올리기>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은 yes24 고등학생 분야에서 월간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고3 때 성적이 오르자, 고민이 생겼다. 원래 목표였던 성균관대 영상학과는 내가 갈 수 없는 학과, 단지 희망하는 학과였는데, 이제는 원서를 쓰고 넘치는 점수가 된 것이다. 나의 눈은 더 높은 곳으로 향했다.


당시, 중앙대 광고홍보학과는 리즈시절이었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도 마찬가지였지만) 전국에서 상위 1.5% 정도 되는 학생들이 지원을 했는데, 대부분의 합격생들은 연고대를 지원하지 않고 중앙대 광고홍보학과를 지원한 학생들이었다. 중앙대 인문계열 전체 수석도 광고홍보학과 차지였다. 4년 장학금을 받고 들어온 친구들도 꽤 많았다. 그런 학과에 입학을 했다는 것. 운이 좋았다는 말 말고 특별히 떠오르는 표현이 없다. 내가 광고홍보학과를 지원할 무렵, 광고홍보학과는 학부제가 되었고, 학부로 신입생을 뽑은 덕에 커트라인은 예전보다 다소 내려갔다. 나도 그 덕에 합격을 했으니, 운이 좋았다는 말 말고 어떤 말이 있겠는가.

출처 : www.iadpr.org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전국의 많은 아이들이 선호하는 대학에 왔지만, 현실은 달랐다. 어디 대학 갔냐며 친척들이 물으면, 당당하게 "광고홍보학과요"라고 대답했지만, "응? 어디라고? 관광 뭐라고?" 이런 대답이 돌아오기 일수였다. 부산 사투리로 말해서 발음이 잘못되었나 생각하여 또박또박 말을 해도, 광고홍보라는 단어 자체가 어른들에게는 생소한 용어였다. 그래서 설명을 드릴 때마다 TV를 가리켰다. "TV광고 있잖아, 저런데 나오는 광고요. 광고홍보학과 다녀요."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그다음은 말이 없으셨다. 원래대로 라면, "그래, 열심히 다녀." "좋은 학과 갔네. 고생했네." 이런 말이 나와야 하는데... 현실은 냉혹했다.


대학을 다니면 다닐수록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무턱대고 광고홍보학과를 쓴 것이다. 광고홍보학과에서 뭘 배우고 뭘 익힐 수 있는지도 모르고, 남들이 선호하는 학과라고 하니, 남의 로망이 나의 로망인 양 착각하고 만 것이다.


대학 2년을 마치고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다. 학점은 바닥이었다. 캐나다에서도 목적성 없이 어영부영 보냈다. 오히려 영어 실력은 캐나다를 다녀온 이후 등록했던 어학 학원의 <통번역대학원 준비반>에서 키워졌다. 세상에 한국에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요즘도 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어 고민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통번역대학원 준비반>을 추천한다. 국내에서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하면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애초에 통번역대학원을 가려는 목적보다 나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하고 유지하려는 목적이 강했는데, 웬걸, 그들의 영어 실력에 기가 죽어 겨우겨우 몇 달을 다닌 기억이 있다. 덕분에 퍼뜩 세상 무서움에 정신을 차렸고-세상에 이렇게나 실력자들, 숨은 고수들이 많구나- 그렇게라도 영어 공부에 몰입한 결과, 번역능력인정시험에 합격하여 한국번역가협회의 회원이 될 수 있었다. 언어라는 것은 사용하지 않으면 금방 잊힌다. 15년이 지난 지금의 영어 실력은... 굳이 설명을 안 해도 잘 아시리라.


대학교 3, 4학년 시절, 학교 수업도 영어 관련 수업을 많이 들었다. 영어교육학과 수업도 가서 들어 보고, 영어영문학과 수업도 신청해서 들었다. 광고홍보학과 전공 수업은 그렇게 많이 듣지는 않았던 것 같다. 민속학과 수업도 들었고 청소년학과 수업도 들었다. 다른 학과 전공 수업이었지만 가서 들어보고 싶었다. 광고홍보학과 외에 다른 수업들은 어떤지 궁금했다. 나의 진로와 적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출처 : www.iadpr.org


광고홍보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웠나


그렇다고 광고홍보학과 수업에 소홀했던 건 아니다. 사진 수업도 들었고, 카피라이팅 수업도 들었다. 마케팅, 소비자행동론, IMC, CRM, 사보 제작 실습, 매체기획론 등 광고/홍보를 위한 수업은 다 들었다.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며 어설프게나마 사진도 찍으러 다녔고, 영상광고를 만들어 광고전람회에 출품도 했다. 후배들과 함께 참가한 <제일기획 광고공모전>에서는 기획서 부문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렇게 4년을 보낸 나는 대학원을 진학하게 된다. 광고홍보학을 배우면 배울수록 스스로에 대해 창의적이거나 독창적인 인간은 아니라고 규정을 하게 되었다. 주변에 크리에이티브(creative)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열정적으로 광고를 기획하거나 카피를 쓰는 친구들에 비해 나는 몰입도가 떨어져 보였다. 그래서 고민 끝에 광고를 제작하는 제작자가 아닌, 이론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대학원 생활도 잠시, 졸업을 하지 않은 채 1년을 마친 시점에서 나는 공군 장교 시험에 응시했다. 군 복무를 해결해야 했다. 공군 장교 출신인 두 형의 영향으로 '나도 군 복무는 공군 장교로 해야지'라는 생각이 어릴 때부터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번의 낙방 끝에 공군 장교 시험에 합격을 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방공무기통제사>라는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특기를 부여받고 군 복무를 하던 나에게 <공군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는 <공군 브랜드 TF팀>에 합류하라는 명령이 운명처럼 날아든다.


세상살이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군에서 확실히 느꼈다. 당시, 군에서는 <강한 친구, 육군>, <대양 해군> 등 브랜드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군인들에게 브랜드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다. 나는 공군 장교 중 유일하게 <광고홍보학과> 출신이었다. 공군본부의 브랜드팀에 소속되어 공군 슬로건 및 심벌 제작, 이미지 강화 전략 등 많은 임무에 참여를 하게 되는데, 이때가 살면서 가장 열심히 일을 했던 순간이다. 군에 있으면서 <공군도 쇼(show)하라 - IMC 전략>으로 공군참모총장상을 수상했고, 브랜드팀이 출품한 <공군 이미지 강화 프로젝트>는 '한국 PR대상'에서 공공기관 최초로 대상을 수상했다. 그 공로로 나는 참모총장 공로표창을 받게 된다. 우리팀은 그 해 <공군을 빛낸 인물>로 선정되었다.


광고홍보학과를 나오지 않았다면 나에게 이런 인생이 펼쳐졌을까? 이런 운명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광고홍보학과를 다니면서 무엇을 배웠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운명을 개척하는 힘을 배웠다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힘을 배웠다고.


다소 농담 같은 위의 대답 말고, 진짜로 무엇을 배웠냐고 묻는다면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배웠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말로는 광고홍보학과이지만, 우리가 배우는 것들을 외국에서는 Marketing Communication, Public Relations이라고 한다. 마케팅(marketing)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며, 마케팅 커뮤니케이션(marketing communication)은 특히 시장에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혀진다. PR(Public Relations)은 어떤가? 공공과 관계 맺기다. 기업이든 관공서든 공공의 대중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 것이며 소통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마컴(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줄임말)이든 PR이든 핵심은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광고홍보학과를 다니면서 나는 소통을 배웠다. 공급자 중심의 사고가 아닌 소비자 중심의 사고방식을 배웠다. 인사이트(insight)에 대해 배웠다. 아직도 인사이트를 정확하게 한국말로 번역을 못하겠지만, 고객 혹은 소비자의 인사이트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배웠다.


나의 직업인 코칭에서도 이런 습관은 유용하게 작용한다. 코칭이든 상담이든 상대에 대한 경청이 기본인데, 나도 모르게 나는 상대의 말을 듣게 되고 인사이트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출처 : www.iadpr.org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커뮤니케이터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를 지향한다. 전공은 확실히 배우되, 시야는 넓게 가지라고 당부하고 싶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려면 마케팅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한 가지 답은 나왔다. 마케팅은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 마케팅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마케팅은 어디서 파생되는가? 기업 경영이다. 또 한 가지 답이 나왔다. 기업 경영 일반, 기업 경영과 마케팅의 관계 및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PR, 홍보 또한 마찬가지다. 광고나 홍보의 입장에서 기업 경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영의 입장에서 광고나 홍보를 바라볼 때, 뛰어난 직원, 뛰어난 팀원이 될 수 있다. 장차 CCO(chief of communication officer)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커뮤니케이션, 소통을 제대로 배워 둔다면, 무슨 일을 하든 윤활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경제든 정치든 교육이든 세상 일은 다를 것이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고객 중심, 상대방 중심의 소통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그 쓰임이 있을 것이다.


마무리


나는 광고홍보학과를 나왔다. 여전히 어른들은 무슨 학과인지 한번 더 묻는다. 이 학과가 나에게 적합한 학과가 맞는지 고민할 때도 있었다. 수많은 수업들을 통해 이론적으로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단지 어떤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학 생활을 통틀어 나도 모르게 커뮤니케이션, 소통을 배웠다는 것, 시나브로 커뮤니케이터가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세상의 다양한 일 중에 소통 없는 일이 있겠는가. 커뮤니케이터로서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다. 적어도 한 번 배우고 없어지는 능력이 아니라 평생 활용이 가능한 능력을 배운 것 아닌가.


앞으로 나에게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광고홍보학과에서 배운 소통 능력은 항상 쓰일 거라 생각한다. 나를 비롯한 광고홍보학과를 희망하는 학생, 혹은 재학생, 졸업생 모두가 세상의 작은 밀알이 되었으면 한다.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되길 기대한다.


출처 : www.iadp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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