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k Aug 15. 2020

여름 풀냄새

시간과 공간을 적응하는 게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습한 공긴때문인지 골풀 냄새가 더 짙게 감싼다.

길고 길었던 장마가 지나가고 있다. 짙게 장마가 드리우는 순간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된 장마 소식은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인들에게 안부인사를 하며 보내는 정도. 그렇게 지루하기만 했던 기나긴 장마를 지나치며 보내었다.



그리고 다시 찾은 집. 눅눅한 냄새와 기운이 공간 가득 매우고 있었다. 보일러를 켜고 잠시 물러나 본다. 따듯해진 공간 위로 차갑고 습한 기운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


조금 더 넓은 집에서 가족과 멍멍이들과 한 달 정도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번잡스럽고 바쁘기만 해 체력적으로 버겁기도 했다. 매 끼니를 챙겨야 했고 가족일을 돌보면서 틈틈이 약속된 나의 일도 병행해야 했기에 수면시간도 짧아지고 먹는 것, 입는 것 등 모든 흐름이 깨져 버렸다. 그렇게 그곳에서의 시간이 익숙해지려던 순간, 다시 이전의 나의 공간으로 오게 됐다.

maji 의 브이로그를 보며 뒹굴거리는 시간

눅눅한 공간의 기운은 잠시 겪으면 되는 것이었다. 조용한 공간이 편안하게 다가오고 마음껏 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너무 고요하기만 해 멍한 느낌이 엄습했다.


예전의 루틴으로 돌아가 유튜브로 좋아하는 브이로그를 보며 저녁을 맞이하는데 풋풋한 풀내음이 불안한 마음을 다잡아 준다. 장마 끝자락을 뽐내듯 힘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음악 삼아 골풀로 된 러그에 몸을 기대니 러그에서 풋풋한 풀냄새가 나는 것이다. 자연 속에 있는 것만 같은 향. 그것 때문인지 고요한 시간이 편안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유튜브던 여러 방송 채널의 프로그램이던 어떤 것도 보기 힘들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상들을 보다 보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시간에 적응하는 게 인간일까.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둘째 날이 되었다. 완전히 적응했다기엔 여전히 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 약간 낯선 고요한 시간. 향을 피우고 아로마 오일로 잠시 조용한 시간을 찾았다. 컵에 얼음을 담고 커피를 내렸다. 조용히 집을 치우고 하나씩 메모를 정리해 나갔다. 텅 빈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장마에도 끄떡없을 만큼 며칠 동안 먹을 수 있는 먹거리들로 장을 봐 왔다.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고 나니 한 달 이전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공간을 이동한 시간은 적응을 거듭하고 있었다. 오락가락하는 시간과 공간, 그 사이에서 번잡함은 따스함과 친근함의 상징이 되었고 고요함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의 표식이 되었다. 그 어떤 것이 더 낫다고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이런 시간을 또다시 가질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은 남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작지만 소중한 생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