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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 Dec 24. 2020

보온도시락

추억이 아닌 일상

도시락 세대라고 하면 왠지 꼰대 세대에 포함될 듯하다. 급식이 일상화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말이다.


나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도시락'이라는 세 글자가 존재한다. 아주 어릴 때는 엄마가 너무 바빠 육개장 컵라면으로 도시락을 대체할 때가 잦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컵라면이 흔하지 않던 때라 별미로 여긴 친구들이 부러워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도시락은 나의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다. 엄마가 반찬 하나하나를 공들여 만들고 하루의 2 끼니를 도시락으로 모두 싸 주셨으니 말이다. 고3 때의 도시락은 선식이었다. 건강 문제로 여러 곡물과 해초류를 갈아서 만든 주문 의뢰한 선식과 보온병이 나의 모든 끼니를 책임지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도시락은 늘 따라다녔다. 업무가 너무 많아 힘들 때가 아니면 일 년의 반 정도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 듯하다. 그것 또한 버거우며 햇반을 대량 구매하고 탕비실 냉장고에 일주일치 반찬을 쟁여 놓고 끼니마다 꺼내 먹기도 했다.


집에서는 늘 끼니때마다 밥을 짓는다. 전기밥솥을 사용할 때도 있고, 한때는 돌솥에, 가마솥에 밥을 지었다. 그리고 일본 이중 뚜껑 솥에 빠져서 자주 밥을 지었는데 이 솥으로 만드는 밥 맛이 최고였던 듯하다. 가스 대신 인덕션을 사용하면서 더 이상 흙으로 빚은 솥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되자 다시 가마솥으로 되돌아왔다. 2 끼니 정도를 한꺼번에 밥을 짓고 그것을 끼니때마다 나누어 먹는다.


따스하게 갓 지은 밥이 좋아 끼니때마다 밥을 지었는데 건강에는 식은 밥이 더 낫다는 말에 당질이 염려되어 밥을 소분해 두고 나누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남은 밥을 보온 도시락에 담아 두었다가 먹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싱크대를 뒤져보니 예전에 사용하던 보온 도시락이 그대로 있었다. 깨끗이 씻어서 말리고 밥을 담아 보았다. 꽤 오랫동안 따스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솥에 둔 식은 밥과는 그 결이 다르다. 조금 더 부드럽다고 해야 할까. 보온 도시락에 담아 둔 밥이 식어도 훨씬 더 맛있게 느껴졌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사용하던 정말 골동품 같은 보온 도시락이 이렇게 빛을 발휘하다니. 전기밥솥의 보온 기능을 선호하지 않는 나로서는 꽤, 좋은 방법을 찾은 듯하다.

여름에는 소분해 둔 밥이 쉽게 상하지 않도록 냉장고에 넣어 두다 보니 그것을 끼니마다 데워야 하는 - 매번 찜기를 사용함 -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보온 도시락은 그 시간을 덜어 주는 것 같다. 그리고 보온 도시락 자체로 식사를 하니 왠지, 집이 아닌 또 다른 공간에 있는 듯한 신선함도 있어서 끼니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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