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암기법으로 무장했지만 여전히 까먹는 이야기
또 까먹었어요. 어제 분명히 외웠던 단어들이 오늘 아침에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더라고요. "magnificent"가 뭐였더라? "웅장한"이었나 "우아한"이었나? 아, 정말 짜증 나는 거예요. 분명히 열심히 외웠는데 왜 자꾸 까먹을까요?
그러다가 웹서핑에서 발견한 게 있어요. "에빙하우스 망각 곡선으로 영어 단어 완전 정복!" 이런 제목의 공부법이었거든요. 에빙하우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망각 곡선"이라는 말이 뭔가 과학적이고 신뢰할 만해 보였어요.
영상을 보니까, 독일의 심리학자 에빙하우스라는 사람이 발견한 이론이더라고요. 사람이 뭔가를 외우면, 시간이 지날수록 일정한 패턴으로 잊어버린다는 거예요. 1시간 후에 56%, 하루 후에 74%, 일주일 후에 77%를 잊어버린다고 하더라고요.
여러분도 아시죠? 그 기분. 뭔가 과학적인 근거를 찾았을 때의 그 희열감. 마치 보물지도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아, 내가 까먹는 게 당연한 거였구나!"
그런데 더 신기한 건, 망각하기 전에 복습하면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는 거였어요. 복습 타이밍이 중요한데, 1일 후, 3일 후, 7일 후, 14일 후, 한 달 후... 이런 식으로 간격을 늘려가면서 복습하면 된다는 거죠.
"이거다!" 싶어서 바로 계획을 세웠어요. 에빙하우스 망각 곡선을 활용한 과학적 영어 단어 암기법이요. 엑셀로 복습 스케줄표도 만들고, 단어카드도 준비하고... 정말 체계적으로 준비했거든요.
제 머릿속은 그때 마치 군사 작전을 계획하는 참모본부 같았어요. "1일차에 20개 단어 암기, 2일차에 전날 단어 복습 + 새로운 20개 단어 암기..." 이런 식으로 정밀하게 계획을 세웠죠.
첫 번째 단어 리스트를 정했어요. "abandon - 포기하다"부터 시작해서 20개였죠. 각 단어마다 카드를 만들고, 앞면에는 영어 단어, 뒷면에는 한국어 뜻을 썼어요. 심지어 예문까지 써놨거든요.
1일차에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abandon, abandon, 어밴던... 포기하다!"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20개를 다 외웠어요. 시간은 좀 걸렸지만, 마지막에 테스트해보니 다 맞더라고요. "오, 이번엔 진짜 제대로 외웠네!"
2일차가 중요한 시점이었어요. 에빙하우스 이론에 따르면, 하루 후에 74%를 잊어버린다고 했으니까, 복습하면 기억이 강화될 거라고 했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외웠던 단어들을 테스트해봤어요. "abandon"은 기억나는데... "abundant"가 뭐였더라? "풍부한"이었나 "명백한"이었나? 어? 벌써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진짜였어요. 물론 지금 생각하면 예상 가능한 일이었지만요. 저는 정말로 하루 만에 절반 정도를 까먹고 있었거든요. 에빙하우스 이론이 맞더라고요.
복습을 했어요. 틀린 단어들을 다시 보면서 "아, 맞다 맞다"를 연발했죠. 그리고 새로운 20개 단어도 외웠어요. 이제 총 40개 단어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3일차가 되니까 복잡해지기 시작했어요. 1일차 단어들은 3일 후 복습이고, 2일차 단어들은 1일 후 복습이고... 머릿속이 스케줄표로 가득 찼어요. 아무도 나한테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었는데, 나는 굳이 완벽하게 체계적으로 하려고 했어요. 왜냐고요? 나니까요.
일주일 정도 하니까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요. 처음에 외웠던 단어들이 정말로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 거예요. "abandon"은 이제 보자마자 "포기하다"가 튀어나왔어요. 복습 효과가 진짜 있더라고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어요. 관리해야 할 단어가 너무 많아진 거예요. 매일 새로운 단어 20개를 외우면서, 동시에 예전 단어들을 복습 스케줄에 맞춰서 계속 봐야 하니까... 하루에 복습해야 할 단어가 100개가 넘어가더라고요.
그 순간, 제 뇌 속 '복습 조종사'는 이미 조종간을 놓고 도망쳤고, 대신 혼란본능 원숭이가 탑승한 상태였죠. "오늘 복습할 단어가... 어? 뭐가 뭐였지?"
엑셀 스케줄표가 점점 복잡해졌어요. 빨간색은 1일 후 복습, 파란색은 3일 후 복습, 초록색은 7일 후 복습...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색깔 천국이 되어버린 거죠.
2주 정도 지나니까 지쳤어요. 매일 아침마다 "오늘 복습할 단어가 몇 개지?"를 계산하는 것부터 스트레스였거든요. 그리고 복습할 때마다 "이거 몇 번째 복습이었지? 다음 복습은 언제였지?"를 체크하는 것도 피곤했고요.
더 큰 문제는, 에빙하우스 이론대로 복습해도 여전히 까먹는 단어들이 있다는 거였어요. 특히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은 계속 헷갈렸어요. "magnificent"와 "splendid"는 둘 다 "훌륭한"인데, 어떤 게 어떤 건지 구분이 안 되는 거예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완벽하게 계획대로 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한계에 부딪혔죠. 이론은 완벽했지만, 실제로는 너무 복잡하고 번거로웠어요.
그래서 좀 더 단순하게 바꿨어요. 에빙하우스 이론의 핵심만 가져온 거죠. "복습이 중요하다"는 것과 "간격을 두고 복습하는 게 효과적이다"는 것만요.
새로운 방법은 이거였어요. 단어를 외우고, 3일 후에 한 번 보고, 일주일 후에 한 번 더 보고, 그 다음에는 가끔씩 봐주기. 정확한 날짜에 얽매이지 말고, 대충 그 정도 간격으로 복습하는 거죠.
이렇게 하니까 훨씬 편해졌어요. 스케줄표도 단순해지고,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암기 효과는 거의 비슷했어요.
내 머릿속은 이제 마치 자동 정리함 같아요. 새로운 단어가 들어오면 일단 받아들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거죠.
요즘에는 에빙하우스 망각 곡선을 완벽하게 따르지는 않지만, 그 원리는 활용하고 있어요. "아, 이 단어 며칠 전에 봤는데 또 까먹었네. 다시 봐야겠다"는 식으로요.
가장 큰 깨달음은, 이론이 아무리 완벽해도 실제 적용할 때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거였어요. 에빙하우스 망각 곡선은 분명히 좋은 이론이지만, 그걸 100%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는 거죠.
친구가 물어봤어요. "에빙하우스 망각 곡선 효과 있어?" 그래서 답했어요. "효과는 있는데, 완벽하게 따라 하려고 하면 오히려 스트레스야. 핵심만 가져다 쓰는 게 좋아."
지금도 단어 암기는 계속하고 있어요. 여전히 까먹기도 하고, 헷갈리기도 하지만... 예전보다는 확실히 오래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까먹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게 되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결국 완벽한 암기법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에빙하우스 망각 곡선은 분명히 도움이 돼요. 하지만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세요. 음... 그냥 지금 며칠 전에 외웠던 단어들이나 다시 한 번 봐야겠네요. 과학적 근거는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