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이
훌륭했어요.
개인적으로 만난 적 없지만
몇 십 년을 나만 아는 어른.
아는 사람의 죽음은
하던 일의 멈칫과 심장의 찌릿함을 부른다.
사람과 나무는 누워봐야 그 크기를 알 수 있다는
어디선가 본 이 문구는
내가 어떻게 살다가야 할지 알려주는 지침이자
누군가의 삶을 감히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이 되었다.
지금도
내가 살아가며 만난
수많은 어른들..
그중 몇 명의 부고 소식을 상상해 보면
목구멍이 차오른다.
그분은 나에게 좋은 어른임이 틀림없다.
벌써부터 너무나 그립고 슬플 것 같다.
힘들 때 연락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물을 어른이 없다는 것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줄 어른이 없다는 것
떠나보내는 그에게
더 이상 아부가 필요하지 않다.
마음에 없는 말은 사라진다.
그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때는
죽음을 맞이한 때가 아닐까.
안성기 배우의 죽음
그리고 그의 죽음에 따른 이 말
그냥.. 사람이
훌륭했어요.
숙연해졌다.
존경스러웠다.
부러웠다.
내 부모가 저런 평가를 받는다면
더 세상을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나는 어떻게 평가받을까
내 자식은
나에 대한 어떤 평가의 말을 듣게 될까?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 자신이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의 내가 보내는 시간들은
조금씩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조금씩 더 따뜻하게 말하고
조금씩 더 너그럽게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내가 떠나며 들려지는 나에 대한 평가는
내가 자식에게 남기는 유산이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