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수준이 나보다 높아지는 게 두렵다.
"아까 감동이(태명)가 전화 왔더라. 엄마랑 싸웠다고. 왜 애랑 싸우노-"
"나랑 싸웠다고 해요?"
친정 엄마의 전화에 벙벙해진다.
난 너랑 싸운 적이 없는데.
물론 아침에 내가 너한테 한 소리를 했지.
그리고 너도 고분 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지.
그게 싸운 거니?
네가 대든 거지.
그리고
내가 왜 너랑 싸우니
초등 자녀와 싸운다니
싸움은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의견의 마찰로 갈등이 일어나는 거 아닌가.
어디 보자. 싸움의 뜻이 뭐지.
*싸움: 말이나 힘으로 이기려고 상대방과 다툼.(고려대한국어대사전)
싸우다. 다투다.
내가 너랑 다퉜다고 하면
내가 자존심이 상하는데.
난 너랑 싸운 게 아니라 조금 격양되어 가르친 건데..
그런데 오전의 그 시간이 이렇게 큰 여파를 주다니.
앞으로 아이는 더 자라고 몸도 생각도 커질 텐데
난 점점 타격감이 많아진다.
내가 불리해짐을 느낀다.
이제 이 방법은 효과가 없을 것 같다.
오후, 아들이 있는 학원 밑에 있는 카페에 갔다.
'엄마 1층 벤티에 있어. 잠시 내려와.'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이 얼굴도 편해 보이지 않는다. 오묘하게 불편하다.
"엄마가 마음이 불편해. 그런데 오늘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 아닌 것 같아.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 같아. 우리 오늘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 감정적으로 말고, 진짜 무엇이든 숨기지 말고 불만이나 상대방에게 바라는 걸 이야기해 보자. 너부터 이야기해 봐. "
"내 행동이 엄마를 화나게 하거나 짜증 나게 만들어도 부드럽게 말해주세요."
(뜨끔. 뭐지 이 살짝 기분 나쁨은)
"음. 그런데 엄마는 네가 어떤 행동을 해도 감정을 다스리고 부드럽게 말해야 하는 거니?"
"저도 고치려고 노력할 건데 엄마가 화를 내면 더 고치기가 싫어요."
"그래, 알겠어. 엄마도 노력할게. 그리고 화가 난 상태에서 말을 하면 실수를 할 수 있으니 너랑 같은 공간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괜찮은 것 같아. 그땐 너도 엄마를 따라오지 말고 기다려줘."
"네."
"그리고 당연하다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엄마가 그랬잖아요. 당연한 건 없다고. 그 말이 싫어요."
"그래, 알겠어."
"엄마랑 아빠랑만 포옹하지 마세요. 셋이서 같이 해요."
"아들아 너는 엄마 아빠가 사이좋은 게 좋지 않아?"
"그래도 둘이서 포옹하는 건 내가 왕따 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싫어요."
"음.. 그래, 알겠어."
"또? 공부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 힘든 거든 뭐든."
(공부나 학습량에 대한 스트레스가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가 솔직히 말해주길 바랐다. 공부 때문이라면 이참에 조절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헤어드라이기 다 쓰고 나면 코드 뽑아주세요. 이건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말했던 거잖아요. 근데 오늘 아침에도 엄마 드라이기 쓰고 코드 안 뽑았어요."
(드라이기??)
"아니, 드라이기는 또 쓸 수 있으니 꽂아놓은 거지."
"그래도 당장 안 쓸 거면 뽑아달라고 했잖아요."
"핸드폰 충전기도 늘 꽂아두잖아. 왜 드라이기에 민감한 건데?"
"드라이기가 전기를 많이 먹는대요. 그리고 내가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달라고 했는데 왜 엄마는 안 지켜요? 코드가 꽂혀있는 걸 볼 때마다 내 말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요."
이거다.
엄마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면서 엄마는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한다.
엄마는 나를 무시하면서
내가 엄마의 말을 존중해야 하나?
나는 너보다 우위라고 생각했는데
왜- 내가 나이도 많고, 내가 엄마니까.
난 니 말을 진심으로 듣고 행동하지 않았구나.
맞아, 드라이기 다 쓰면 코드 뽑아달라고 여러 번 말했어.
내가 뽑지 않은 코드를 네가 뽑으며 네가 화도 냈었는데 엄마가 진심으로 듣지 않았어.
그때마다 넌 정말 화나고 엄마가 싫었겠다.
"그래, 알겠어. 엄마가 진짜 이건 노력하는 게 아니라 꼭 실천할게. 널 무시해서 그랬던 건 아니야.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아니에요. 저도 버릇없게 행동한 거 죄송해요."
그날 이후
드라이기를 쓰고 나면
즉시, 반드시 코드를 뽑는다. 그리고 한 번 더 뽑혔는지 확인하고 방을 나온다.
꽂혀 있는 코드를 보고 아이가 또 무시당한다는 기분을 느낄까 겁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날 오후,
'내가 먼저 연락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엄마 죄송해요]라고 아이가 먼저 연락해야지. 엄마한테 버릇없게 행동한 녀석에게 먼저 손 내밀면 안 돼.'라고 생각했던 그마음은 내가 아이랑 수준이 같았던거 아닐까.
그렇다면 난 아이랑 싸운 게 맞겠다.
아들, 너 진짜 대나무처럼 자라고 있구나.
엄마가 마음이 급해진다.
네가 자라는 속도보다 엄마가 더 자라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