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를 고민하는 즐거움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을 만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을 한다.
이건 의례
어른들끼리 나누는 인사말로
"식사하셨어요?"같은 거였겠지.
아이들이 어떤 대답을 하든
하하 그래 웃으시곤
"공부 열심히 해"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한층 더 가까운 친척들은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보다는
"요즘은 공무원이 최고지."
"우리 집에 법조인 한 명 나오면 좋겠다."
라는 말을 심심찮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말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까?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을까?
그렇다면 언제? 언제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을까?
대학 면접 중
"저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의 꿈을 꾸었으며, 학창 시절 장래희망란에 한 번도 빠짐없이 '교사'라고 적혀있..."
자랑스러운 이 오래된 장래희망을 정말 나 스스로 정했나?
직업을 가지고 10년이 더 훌쩍 지나고 나서야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엄마가 나에게 너 하고 싶은 일을 찾아봐.'라고 했다면?
음,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고, 찾는 시간과 그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는 나에게 사치였다.
엄마도 나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혼자 힘으로 키우는 딸이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어엿한 직업을 가졌으면 했을 거다.
그 당시 엄마를 난 충분히 이해한다.
당시 오빠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대학을 포기했다. 학비에 대한 부담으로 그 당시 더 선호되었던 공대를 선택했다.
오빠도 그러한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고, 고르고, 또 그것을 얻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 본다는 건 그런 선택지는 나에게 없었다.
물론 어려움은 있지만
내 직업을 사랑하고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게 됨에 감사한 마음도 크다.
그러나
나에게 "너 커서 무슨 일 하고 싶어? 시간이 많으니까 세상을 살펴보면서 천천히 고민해 봐."
라고 물어봐준다면-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고민해 보는 즐거움을 몰랐다.
내가 고민으로 선택한 일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들은 어떤 느낌일까?
-엄마가 실망하는 게 두려워서,
-이거 아니면 안 되니까.
이게 아닌 다른 느낌은 무엇일까?
내 아이가
세상을 살펴보며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관찰하고
자기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운 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두 가지를 노력할 것이다.
하나는
나는 아이에게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다. 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는
아이가 자신의 꿈과 진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공부량과 질로 어려움을 겪거나 하지 않았음에 후회하지 않도록 공부를 시키는 것이다.
공부는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다?
공부는 본인이 하려고 할 때 그때 부모가 도와주면 된다?
나는 이 부분을 매우 동의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다소 늦게 깨닫는다.
스스로 꿈이 생겼을 때,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고 허석 대며 뛰어가며 눈물 흘리는 아이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그래서 공부는 시키며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도와주고 격려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의 양과 질을 쌓아가다 보면 진로 고민의 폭이 더 넓어지는 여유도 생길 것이다.
아마
많은 부모들이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진로를 고민하는 즐거움'을 주고 싶어 공부시키고 뒷바라지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아이들은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다.
그게 얼마나 행복한 고민인지를.
(이 고민의 가치는 어떻게 하면 게임을 더 많이 할 수 있을까? 와 비교가 안될 텐데...)